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 생활을 할 때 큰아들이 고관에게 청탁해서 아버지를 해배(解配)시키고 싶다는 서신을 보낸 적이 있다.

이때 다산은 ‘옳고 그름(是非)’과 ‘이로움과 해로움(利害)’의 저울에 좋으면 네 가지 등급이 생기게 되는데, 첫째는 ‘옳은 일을 해서 이롭게 되는 것’이고, 둘째는 ‘옳은 것을 지키다 손해를 보는 것’이며, 셋째는 ‘그릇됨을 따라가서 이로움을 얻는 것’이고, 넷째는 ‘그른 일을 하다가 해를 입는 것’이라 했다.

다산은 이어 지금 아들이 하고자 하는 일은 셋째인 '그릇됨을 따라가서 이로움을 얻는 것'인데 결국 그릇된 일을 하다가 해를 입는 넷째로 추락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청탁을 하지 말라는 답신을 보냈다고 한다.

요즘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이 구속되고 비자금 리스트 수사로 전 국회의장 등 유명인사들의 이름이 거명되면서 그 여파가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고 있다. 박 회장과 연루된 정ㆍ관계 인사들이 일대 수난을 겪고 있다.

그 같은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돈 받은 사실을 인정하는 사과문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그는 자기 부인이 미처 갚지 못한 빚이 있어 그 돈을 받아 사용했다며 검찰조사에도 응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도덕성을 최대무기로 내세웠던 그였지만 측근들과 부인에게는 약발이 안 먹혀든 것 같다. 그러니 친노는 폐족(廢族 : 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을 못하게 된 자손)이라며 친노의 재기를 다짐하던, 최측근인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이 지난 정부 때 옥고를 치르고도 이번에도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게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다시 수사선상에 오르는 등 친노 측근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됐거나 체포, 또는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침묵만 지키던 노 전 대통령이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이 검찰조사를 받게되면서 무거운 입을 열어 자신의 부인이 돈을 받아썼다고 실토했다.

현재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지난해 국가 기록물 유출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대상이다. 그리고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유족들이 낸 명예훼손 고소사건에서도 피고소인 신분 인것으로 알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침묵을 깨고 파장을 불러올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올린 저의가 무엇일까? 왜 그랬을까?

덕분에 지금 대검중수부가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노 전 대통령의 소환시기 검토에 들어갔지만 사법처리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비록 부인이 수 억원을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났어도, 대통령 부인이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죄로 보느냐에 따라 공범이 될지언정 사법처리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해답 또한 노 전 대통령에 달렸다고 본다. 변호사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 말을 하느냐에 따라 자신도, 부인도 도덕성에 있어서는 비난을 받아도 법적으로는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전직 대통령 K, K 부인들의 경우도 구설수에 올라 곤욕을 치렀지만 사법처리는 되지 않았다. 다만 아들들이 ‘부패의 고리’에 얽혀 끝내는 ‘영어’의 몸이 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일제치하에서 해방된 이후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下野)’를 시작으로 불행한 대통령을 뽑으면서 전직 대통령 모두가 불행한 대통령으로서의 오점을 남겼다. 특이한 것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하나 같이 부인과 자식들까지도 부패ㆍ비리의 고리에 얽혀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독재자로 불렸던 故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유품이 초라할 정도였다. 또한, 부인인 육영수 여사는 만인에게 추앙을 받을 만큼 훌륭한 분이었다는 것이 다소 위안이 된다.

다행히 경영자 출신인 현직 대통령이 수 백억에 달하는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내놓겠다고 했다. 불운의 역대 대통령들과는 달리 신선함을 준 것 같다.

노 전 대통령도 빚진 이유가 있을 것이고, 할 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 수반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家長)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되 변명의 논리로 국민들을 설득시키려는 생각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사과문은 올렸어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다.

여러 말로 변론을 했지만 문제는 현직 대통령의 부인이 돈을 빌렸다면 순수한 마음에서 내놓았을까 하는 점이고 또 대통령의 조카사위가 아니라면 그런 엄청난 돈을 쉽게 내놓았을까 하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도덕성을 유난히 강조한 분이다. 더구나 이권이나 청탁에 개입할 경우 패가망신 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한 사람이다. 그래서 국민이 느끼는 충격과 배신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역대 대통령들과 다른 게 없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이후 딜레마에 빠진 측근들의 움직임이 바빠진 것 같다. 그런 모습에서 ‘죄수의 딜레마’가 떠오른다. 「두 죄수를 분리 신문하면서 침묵 아니면 자백을 선택하게 한다. 둘 다 침묵하면 1년, 둘 다 자백하면 5년형을 받는다. 한 명만 자백하면 그는 풀려나지만 한 사람은 10년형을 받게 된다. 죄수들은 결국 상대를 불신하게 되면서 모든 것을 폭로하고 5년형을 받는다.」

윌리엄 파운드스톤은 ‘죄수의 딜레마’에서 “완벽한 의사소통과 완벽한 정직성이 있는 세계는 죄수의 딜레마가 없는 세계다. 그러나 그 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니다”라고 썼다. 갈등과 불신, 이기심이 만연한 곳에는 늘 딜레마의 고충이 있다는 뜻이다.

딜레마에 빠진 건 그들만이 아니다. 유권자이기도 한 국민도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뽑기는 해야겠는데 맘 가는 후보는 없고 불분명한 상태에서 차선 아닌 어쩔 수 없는 차악의 선택을 강요받으며, 그것도 차악인지, 최악인지 조차 분별하지 못한 상황에서 투표를 하든 안하든 누군가는 당선된다는 사실에 국민들의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의롭고 양심적으로 청빈의 길을 걸으며 존경을 받아야 할 정ㆍ관계 사람들이 정경유착으로 비리를 저지르며 겉으로는 청빈한 척 자신의 양심마저 속이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측은해 보인다. 청빈한 사람이 꼭 훌륭한 정치인이나 관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의 지도자라면 탐욕을 버리고 깨끗해야 하지 않겠는가.

모두가 money. power로 상징되는 명예와 부(富)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목전의 영리에 어두운 나머지 그릇된 일을 택했다가 낭패를 보게되는 것이다. 다산의 기준으로 보면 셋째를 얻으려다 넷째로 추락한 꼴이 되고 말았다.

대선 후보시절 장인의 전력 때문에 곤욕을 치룰 때도 “그렇다고 아내를 버리라는 것이냐”고 했던 노 전 대통령이다. 이번 경우에도 그런 마음이 될 줄 믿는다. J, N 전직 대통령에 이어 사법처리가 될지언정 자신의 모든 것에 책임을 질 줄 아는, 더 이상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않는,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아는 분이 되었으면 한다.

누구 탓도 아니다. 그런 대통령을 뽑은 국민이 불쌍하고 불행한 것이지.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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