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말 며칠 사이 고향 친구를 비롯한 지우(知友) 세 명이 이 세상을 떠났다. 모두가 심장마비로 밤사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을 준비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마지막 말 한마디 없이 허무하게 떠난 것이다.

살아생전 그렇게 호탕하게 웃으며 떠들어대던 친구는 전혀 말이 없고 조용하기만 한데 상가(喪家)는 온통 시장바닥처럼 시끄럽기만 하다. 모두가 고인의 생전이야기들 뿐이다. 환갑이 갓 지난 그의 죽음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하며 애도의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물끄러미 문상객을 맞이하는 고인의 영정을 보면서 먼 훗날 내게도 다가올 그 날의 나를 생각해 본다. 벌써부터 사후(死後)에 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지만 우울해진다.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우선 첫째,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다. 좀 더 베풀고 나누면서 살아도 될 것을 이렇게 모진 마음으로 악착같이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면서 긁어모으고 움켜쥐고 있었어도 정작 떠날 때 내가 갖고 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란다.

둘째는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다. 그 때 내가 좀 더 말을 아끼며 조금만 참았더라면 상대 가슴에 깊은 상처를 주지 않고,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내 인생도 역시 달라질 수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통한의 후회다. 얼마든지 여유를 갖고 가족과 함께 기쁘고 즐겁게 살 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탐심으로 늘 빡빡한 일정에서 재미없게 살며 신경질이나 내고 짜증을 부리며 바쁘게만 살다가 떠난다는 게 허무한 것이다. 후회해도 다 소용없지만 그 같은 탐심은 우리를 언제나 후안무치한 사람이 되게 하고 습관화된 탐심은 마치 당연한 삶의 철학인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그래서 라인홀드 니버 박사는 “탐심은 인간 본성이 아니다. 탐심은 본성에서 파생된 영혼의 질병이다” 라고 지적한다. 그에 말대로 겨울에 얼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만큼 여름에는 부패하지 않기 위해서도 각별히 조심하듯 탐욕의 마음은 언제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영혼의 질병이다.

묘비 뒤를 보면 예외 없이 망자의 출생과 죽은 때를 알려주는 연도가 써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연도를 자세히 보면 태어난 날과 죽은 날 사이에는 반드시 대시(-)표시가 되어있다. 아무생각 없이 보았다면 아무것도 아닌 대시다. 그러나 다시 한번 그 대시를 생각해보면 그 짧은 대시가 망자의 일생동안의 삶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그런 삶을 압축한 대시는 날마다 한 점 한 점씩 찍어지면서 한 생을 말해준다. 그 점(點)들이 이어지고 이어지면서 일생의 삶을 정리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점 같은 일초 일초가 흘러감에 따라 우리의 삶도 그렇게 흘러가며 지워지는 것이다.

어느 시인이 이 세상 떠난 부인에게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래도 옷 한 벌 얻어 입었잖소’ 라는 시를 써서 일약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결국 육신마저 남겨두고 이승을 떠나는 마당에 그 옷 한 벌이 무슨 큰 위안이 되겠는가.

90년대 초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1년간 인턴으로 임상목회를 할 때다. 당시 암 병동을 맡아 폐암 말기로 임종 직전에 있는 환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흰 종이처럼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그래도 구면의 사이가 된 나를 반색하며 맞이했다. 그는 오래 살면 모아놓은 돈으로 사회사업도 하고 세상에 좋은 일도 하려고 했는데 무슨 죄가 그리 많아 못된 병에 걸려 죽게 되어 억울하다고 했다.

악착같이 모은 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 게 억울하다고 까지 했다. 죽음도 살 수만 있다면 사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시집 못 간 딸을 남겨두고 가는 게 한스럽다고 하며 눈물을 흘렸다. 나와 더불어 살갑게 살아온 친척이 내 손을 꼭 잡고 마지막 당부처럼 느껴져 순간적으로 마치 내가 친척의 임종을 지켜보며 유언을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며 가슴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분에게 죽음은 결코 무서운 게 아니라며 하나님이 계신 또 다른 세상은 아름답고 편한 세상이라는 형식적인 말을 하고 병실을 나오면서도 왜 그런 고통스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제 모든 것을 받아드리고 죽음을 기다리는 그 분에게 나 자신도 확신이 없는 그런 말을 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까지 느끼며 괴로워한 적도 있었다.

누구든지 삶에서의 마지막인 임종 때가 되면 지극히 평범해진다. 임종을 앞둔 부처의 모습도 극히 평범하고 인간적이었다. 제자 아난다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부처가 병들어 앓고 있는 것을 보고 슬퍼하자 세상이 덧없고 무상함을 설법하고 임종하면서 게으르지 말고 스스로 노력해 자기 자신을 구하도록 하라는 말을 남겼다.

유행경에서는 부처가 큰 가사를 네 단으로 접어 오른 쪽 옆구리에 고이고 마치 사자처럼 다리를 포개고 누었으며 얼굴은 서쪽을 향하고 머리는 북쪽으로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불교계는 지금 부처가 열반한 열반재일을 준비하느라 바쁜 때다. 기독교계 역시 지금은 사순절 고난주간으로 다음 주 부활절 준비에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필자는 이 세상을 살다간 많은 사람들의 마지막 말씀을 떠올려본다. 메마른 땅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봄비와도 같은 말씀들. 창 밖 넘어 가득 핀 진달래, 개나리, 목련화의 그윽한 향기와 빛깔 같은 주옥같은 말씀들을. 어쩜 너무 평범해서 살아있는 우리가 자꾸 잊게 되는 마지막 말씀.

오래 전 아버님이 임종 직전 내 손을 부여잡고 나직하게 하신 말씀이 머릿속에 맴돈다. “절대로 남에게 폐를 끼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항상 모두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 아울러 “나는 너희 형제자매들이 우애 있게 지내는 것을 보면 제일 행복하기만 하다”던 그 말씀이 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프기만 하다.

독일의 유명한 설교가이자 신학자이기도 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히틀러에 저항하다가 나치가 패망하기 1주일 전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이것이 내 인생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을 남겼다.

꼭 본회퍼의 말이 아니라도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서 태아로 있을 때 지금의 세상을 생각하지 못했듯이 우리가 현세에서 생각하지 못한 또 다른 부활의 세상이 있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면 그리 두렵게 맞이할 죽음은 아닌 것 같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는 마지막 세상 떠나기 전 제자들에게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 하셨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유월절의 음식으로 미리 예표 되었던 바로 그 분이시다. 그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에서 떡을 떼어 나누시면서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 이니라.” 하고 포도주 잔을 들어 “마셔라 이것은 내 피니라” 고 마지막 말씀을 우리에

누구나 겪는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인 죽음의 순간을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담대함이 필요한 때다. 고통과 어둠이 우리 삶을 단축시킬지라도 죽음조차 이기신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이 절실한 때 인 것 같다. 후회는 누구에게든 있다. 다만 덜 후회하는 삶을 살다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사순절 고난의 주간을 보내면서 느끼는 심정이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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