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려서 받아보니 지우(知友)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 궁금하던 차 전화가 온 것이다. 그동안 벌려 놓은 사업을 확장하느라 중국에도 다녀오고 지방에서 바쁘게 일을 하다 보니 가족하고도 헤어져 있었다고 한다. 전화를 하는 시간에도 부산에 있다며 4월초쯤 한 번 만나자고했다.

그 지우처럼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항상 바쁘다며, 시간이 없다는 말로 분주한 하루를 보낸다.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쁘게 일을 하며 심지어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일까. 모두가 열심히 뛰며 사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바보 같이 살고 있다.

가만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위해 지나치면 그만인 것까지도 우리는 시간과 마음을 다 쏟아 붓고 살다가 죽음에 임박해서야 지나간 세월을 후회한다.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그 말 한마디 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아야 했고, 왜 용서 할 수 있는 아량을 베풀 수 없을 정도로 삭막한 가슴으로 살아야만 했을까. 왜 내게 있는 것을 나누지 못하고 베풀지도 못하면서 움 꾸리고 있었

결국 사랑, 미움, 그리고 아픔까지, 심지어는 육신까지 모두를 남겨놓고 떠나야 할 ‘나’ 인데.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는 순간 그때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고, 들리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그런 순간, 순간이 내 마지막이라는 마음을 일찍 깨닫게 된다면 아마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고 훈훈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이 사회는 밝고 맑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사람이 사는 세상,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해야 하는데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함께 동행하자는 말을 할 수 없는 각박하고 인정이 메마른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사는 것 같다.

‘더하기 인생’과 ‘곱하기 인생’이다. 그런데 필자의 소견으로는 ‘더하기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1=2, 2+2=4, 3+3=6, 10+10=20. 그저 덧셈 인생을 산다. 더하기만 하면 배로 는다. 어떻게 보면 이 같은 덧셈은 내가 일한 만큼, 내가 노력 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누가 생각해도 당연하다.

그러나 ‘곱하기 인생’은 다르다. 1×1=1, 얼핏 보면 처음에는 밑지는 장사같이 보인다. 2×2=4 나 2+2=4. 더하나 곱하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음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3+3=6이지만 3×3=9가 되고 10×10=100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하기 인생과 곱하기인생의 삶이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밑지는 것 같아도 나중엔 엄청난 이익을 보는 곱하기인생을 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쉽지만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당장 살기도 힘든데 2+2=4나 2x2=4나 다른 게 뭐냐 하면서 3×3=9, 10×10=100이 되면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부류가 대다수라는 점이다.

그러나 끈기를 갖고 곱하기 인생을 사는 사람은 이처럼 비교도 할 수 없는 부를 누리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이다. 결국 곱하기 인생을 사는 사람은 남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다.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궁핍한 삶이 오히려 소중한 영혼의 가치를 발견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소유한 자만이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월세로 살 곳도 마땅치 않은 60대 할머니가 10년 넘게 이웃에 온정을 펼쳐 재작년에는 500만원을 기부한데 이어 지난해 초에는 300만원을 기부했고, 조실부모하고 노점행상을 하는 분은 생명의고귀함과 이웃의 소중함을 몸소 느끼고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 헌신봉사 한다는 일념으로 남의 집 보모, 옷 장사 등으로 모은 돈을 기탁했고, 또 시각장애3급인 70대 노

이들은 한결 같이 남을 위한 봉사는 내게 있어 보람이라며 그래서 그런 봉사를 할 수 있게 한 이에게 오히려 감사를 드린다며 겸손해 한다. 이 분들이야 말로 곱하기 인생을 사는 분들이다.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그런 삶을 살아야 이 사회가 아름답고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어려울 때 누군가가 내미는 손길은 따뜻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큰 힘이 될 수 있다. 지금은 힘든 때다. 지금 우리는 너나 할 것 없

가진 것 없다며 더하기 인생으로 살기보다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엄청난 부를 누릴 수 있는 곱하기 인생을 사는 지혜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을 풍요롭게 살아가려면 돈, 아파트, 건강, 명예, 지위 같은 것들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 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베푸는 것의 연습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 우리가 소중한 삶, 보람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랑, 평화, 선 같은 덕목들이다.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어야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혼자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고 행복할 수도, 살 수도 없는 사회적 동물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베푸는 시간은 언제나 오늘 바로 지금이어야 한다. 잠시 후, 내일은 결코 내가 가질 수 있는, 보장 받은 시간이 아니다. 베풂이란 하나의 대상으로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므로 그 행함은 내 마음가짐에 있다. 그래서 지금 갖고 있는 것으로 베풀면 되는 것이다.

허둥지둥 살아온 우리네 인생이지만 이제라도 여유 있는, 잠시라도 밤하늘의 빛나는 별을 바라볼 줄 아는 곱하기 인생의 삶을 산다면 그 삶은 더욱 윤택해지지 않을까. 더하기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곱하기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준엄하게 검약한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달란트가 있다. 그것의 십분의 일을 세상에 내놓아 유익하게 쓰며 세상에 돌려주자. “너의 손에 선(善)을 행 할 힘이 있거든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주저하지 말고 선을 행하여라. 네가 가진 것이 있으면서 너의 이웃에게 갔다가 내일 주겠소 말하지 말라” 잠언에 나오는 말이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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