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사랑과 화합’을 호소했던 이 시대의 ‘어른’ 인 김수환 추기경이 ‘명동의 기적’을 남겨놓고 결국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 영면에 들어갔다.

평소에도 늘 입버릇처럼 “서로 밥이 되어주십시오.”하시던 김 추기경. 성자(聖者)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김 추기경님이 남기고 간 ‘사랑하세요.’ 란 그 말씀은 성당을 찾은 40만 인파를 넘어 4000만의 마음에 사랑의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그 말 한마디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가치들이 아직 우리 맘속에 있음을 재확인 시켜주었다.

바람이 있다면 김 추기경의 선종을 계기로 그 분의 사랑과 희생, 봉사와 화해의 메시지가 우리 사회 어두운 구석까지 퍼져나가 경제위기 속에서 좌절에 빠진 이들과 고통을 받고 신음하는 소외된 계층이 희망과 용기를 갖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따뜻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특히 갈등과 균열을 치유하는데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야 할 정치인과 종교지도자와 사회지도층인사들이 이를 계기로 화해와 협력의 마음이 되어 이 사회를 맑고 밝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실 누구든 자신이 가진 것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그래서 하나라도 잃고 싶지 않아 소유한 모든 것들을 영원히 갖고 있을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잔뜩 움켜쥐고 놓을 줄 모른다. 그러나 내 것 중 일부를 떼어 남에게 베풀었을 때 그들에게는 그것이 선물이 되고 생의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베푼 이는 거기에서 기쁨과 만족을 채우는 소박한 삶의 법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는 게

언젠가는 때에 이르면 그 거추장스러운 육신마저 놓고 가야하는 인생인데 무엇이 그리 필요한 게 많고 과욕을 해야만 하는지. 그러니 우리가 갖고 있는 것에 너무 집착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가진 것이 과연 무엇이고 내가 가질 수 있고 또 가질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보자. 어쩜 해답은 그 물음 안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빈 마음, 그것은 무심(無心)이라고도 한다. 빈 마음이 있어야 울림이 있고 그런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가 있다고 법정스님은 말한다.

불가(佛家)에서는 내 것이라고는 영혼과 업보뿐이라고 했다. 또 욕심을 버리고 베풀며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그대로 놓아두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이 나의 빈 마음에 가득 채워지게 된다고도 했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 그 자체이다. 또 제한 된 내 삶을 그 누구도 대신 해줄 수도 없고 또 영원하지도 않다.

흔히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 하면 무소유를 먼저 생각하는데 사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가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드려야 한다. 비우고 내려놓는다는 것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일례로 장기와 바둑을 보자. 장기는 계급이 있고 반드시 가는 길이 있다. 그러나 일단 왕(王)이 잡히면 아무리 알이 많아도 진다. 바둑의 경우는 장기와는 달리 어디든지 맘대로 갈수 있지만 한 집이라도 없으면 아무리 길어도 죽을 수밖에 없다. 특히 장기나 바둑을 둘 때 대전하는 사람보다 하수 일지라도 관전하는 사람이 더 넓게 보고 죽고 사는 길을 더 잘 알고 잘 보이는 것은 그만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세상 진리는 우리가 내려놓으면 모두 잃게 된다고 유혹하지만 하늘 진리는 우리가 내려놓을 때 온전한 우리 것이 된다고 약속한다. 우리 인생에는 ‘분명한 내 것’ 처럼 보이지만 남김없이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 힘겹게 쌓아올린 명예, 꼭 움켜쥔 재물, 미래에 대한 불안과 생명의 위험까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을 때 진정한 쉼과 참된 평안을 체험할 수 있다.

누구나 자기 삶에 보태고 싶은 것이 있다면 꿈, 미소, 사랑, 봉사, 나눔, 그리고 마음의 온기다. 그런가 하면 빼버리고 싶은 것은 비판, 불편, 나태, 부정적 생각, 그리고 차가운 마음이다. 어떤 것을 빼고 보태느냐에 따라 삶의 모양과 마음의 빛깔이 바뀌며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인생에 대한 정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중 ‘B to D' 라는 말이 있다. B는 Birth (태어남) 이고 D는 Death(죽음) 이다. 즉 인생은 태어났다가 죽는 것.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B 와 D 사이에는 또 무엇인가 하나가 끼어있는데 그것이 바로 Choice(선택)이다.

이를 정리하자면 인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선택에서 얻어진다는 말이다.

이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의 빛깔이 바뀌며 달라질 수 있다. “여러분들이 잘 해주셔서 이승 살 때 많은 복을 주시는 바람에 지옥가게 됐다. 왜냐면 천국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가기 때문이다.” 고(故) 김 추기경의 말씀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묵주와 녹슨 안경 다섯 개, 그리고 약간의 돈이 남아있는 저금통장을 남기고 떠난 김 추기경님. 그 분이 선종하기까지 우리에게 늘 바라신 것은 이 땅에서의 ‘용서와 화해와 일치’ 이었다. 그 자체가 추기경이 우리에게 준 값진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제 비록 그 분을 떠나보냈지만 대신 그분을 우리 가슴속에 묻어두고 그 분의 가르침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그 정신을 하나씩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 혹독하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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