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또 잘 하는 것이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유명한 가수가 되고도 싶고 또 어떤 때는 탤런트도 되고 싶고, 운동선수도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

때로는 펀드나 주식, 부동산 투자로 손쉽게 수십 억대의 돈을 벌고도 싶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내가 그런 것을 잘 해낼 수가 있을까, 내 적성에 어느 정도 맞는가, 노력을 한다면 가능 한 것인지, 그 결과를 놓고 심사숙고 하면서 가능성에 대해 결정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벌려놓고 보자는 식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데 문제가 있다. 물론 ‘하고 싶은 것’ 과 ‘잘 할 수 있는 것’ 이 하나로 일치한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일치하지 않아도 잘 할 수 있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하고 싶었던 것을 취미로 삼는다면 이 사람 역시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체질도 안 맞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을 한다면 그런 사람은 행복과 먼 삶을 사는 불행한 사람이다. 특히 잘 하지도 못하면서, 자격도 없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은 물론이지만 다른 사람까지도 불행하게 만들

오래 전 필자가 의학전문기자로서 의료계를 출입 할 때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한방병원을 탐방취재하면서 만나게 된 한의사가 있었다. 병원을 개원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매스컴 덕분에 복도에 외래 환자가 꽤나 앉아있는 잘 나가는 병원이다. 그런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의사가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진료를 그만두고 어느 날 개업 초청장을 보내왔다.

그는 자기가 한의사 체질은 아닌데 고등학교 시절 공부 좀 했다고 진로를 선택할 때 학교에서도 그랬고 부모님 역시 의대를 추천, 자기 뜻과는 달리 의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적성검사를 받아보아도 자기는 가만히 앉아 있는 체질이 아니란다. 자기는 돌아다니며 사업을 할 체질이란다. 그래서 더 늦기 전 용단을 내렸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남은 인생, 돈을 떠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

성격이 낙천적이고 활동적인 체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은 이 같은 행동에 대해 잘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어쩜 그가 하고 싶은 것과 잘 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 진정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라 할지라도 아무 준비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고 무조건 어느 날 갑자기 하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에 두고 염원해오던 일은 자기가 염원하던 그 능력과 노력이 맞닿는 외부 조건과 같이 맞아 떨어질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울러 '잘 하는 것' 역시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결코 좋은 결실을 보기가 어렵다.

진정 '하고 싶은 것'과 '잘 하는 것'이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하고 싶거나 잘 하는 것이라도 능력도 없고 경륜도 없으면서 공익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강태공은 “천하는 천하의 것이지 한 개인의 천하가 아니다”고 했다. 아무리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해서 국가가 되었든 어떤 단체가 되었던 자기 맘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특히 사회지도자는 더 더욱 그렇다. 모두에게 좋은 것을 하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측근의 소리가 아닌 천하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줄 알아야 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까지 잘 듣는 귀가 있어야 한다. 또 그런 지도자라면 모른 것과, 아닌 것을 구별 할 줄도 알아야 하는 데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아 아쉽다.

잘 하는 것도 모르고, 아닌 것도 구별할 줄 모르고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부류가 더러 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굳이 사례를 든다면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토록 하고 싶어 안달을 하며 선거철만 되면 정당 공천 받으려고 돈 다발 싸들고 실세들을 찾아다니다 금배지를 단 사람들, 과연 그들이 정치는 잘 하는 건지? 지금 나라꼴을 한 번 생각해보자. 국민은 10여 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경제 상황이 더 어려워 허리띠를 졸라매며 추위에 마냥 떨고 있는데도 다수의 한국 국회의

민생법안은 여전히 쌓여있는데 내년 예산안도 처리하지 않고 관심은 딴 데 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정부가 ‘실제위기 상황’ 이라고 떠들어대도 마이동풍 격이다. 더구나 기가 막히는 건 국회에서 민생의 문제를 다루어야 할 시간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시위를 하면서 높은 세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촛불 시위도 그렇고 용산 철거민 참사사건도 마찬가지다. 국회 의사당 안에서 앞으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 대비책을 강구하여야 함에도 불구,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하자면 어찌 하겠다는 말인가? 자신들이 부도덕 하거나 무능력한 줄은 모르면서, 법질서를 강조하는 의원님들이 밖에서 상대 흠집 내기를 하면서 힘겨루기를 한다면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 국민들에게 무슨 추태를 보이

얼굴은 철판이상으로 두껍고 시야는 손바닥 보다 더 좁으며 오직 나 하나만의 영달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 이런 사람들. 바로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체질이 아닌지 묻고 싶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해박한 법 지식도 없고, 잘 하는 것도 없고 모른 것과 아닌 것조차 구별 못하면서도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국회의원들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 세금을 내고 싶지도 않다. 국회의원도 반 이상

이제 입춘이 문턱에 왔다. 하지만 그 어느 때 보다 추워 목을 잔뜩 움추린 겨울이다. 적어도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부탁인데 제발 하고 싶은 것이 탐욕에 있지 않다는 것을 국민들이 느낄 수 있게 흉내라도 냈으면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혈세를 낸다는 분(憤)이라도 삭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들을 보면서 ‘과실이 있으면서도 남에게 충고를 받기를 싫어한다’는 뜻의 ‘호질기의’(護疾忌醫 : 병이 있지만 의사한테 보여 치료 받기를 꺼림)의 성어가 떠오른다. 국회의원 뿐만 아니라 사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무능력은 전혀 생각치 않고 무조건 하고 싶다는 욕심만으로 과욕을 부리면서 질서를 무너트리는 경향이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내가 작은 이익만을 위해,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큰 내려놓음’ 이라고도 한다. 오늘 내가 나눈 좋은 마음은 공생의 마음이라는 파장으로 온 우주에 퍼져 나가서 다시 그 사람에게로 좋은 보답이 되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어쩜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보이지 않는 법칙, 질서인지도 모른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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