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생산 능력ㆍ품목 판박이…제 살 깎아먹기만 늘어

국내 제약사들의 위기의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까이 한미 FTA라는 장벽을 넘어야 하고, 약값을 인하하려는 정부의 정책은 날이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시기를 맞은 제약사들의 모습은 태연하기만 하다. 다가온 전쟁을 '먼 산 바라보듯'하는 국내 제약사들에게 닥쳐올 위기들을 살펴보고 대안은 없는지 각계의 의견을 들어봤다.

1. 제약업체 인수합병은 먼나라 이야기?
2. 약제비 증가의 원인, 정책에 있나 업계에 있나
3. 제네릭 홍수의 시장, 대안없이 달린다

'돈이 되는 효자' '알짜배기 기업' '증권가 경기방어주'…. 흔히 경제시장에서 국내 제약사들을 부르는 표현이다. 매출규모로 보면 미약하기 그지없지만 그렇다고 손해 볼 것 없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국내 제약사들의 자랑거리이자 함정이다.

이를 반영하듯 노무현 정부는 미국과 자유시장경제를 논하며 제약시장을 미련없이 '버리는 카드'로 썼다. 예상은 했으나 너무나 급작스런 통보에 제약사들은 반발에 나섰다. 그 후 3년 제약기업은 한발도 앞서지 못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전쟁포로처럼 심란한 마음만 공허하게 외쳐대고 있다.

그나마 상황이 나아진 것이 있다면 업계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정계와 재계, 제약업계를 통해 동시 다발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제약산업의 발전방향으로 '특별법' 상정을 제기한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은 "제약사들이 먼저 시대의 요구를 들어야 하고, 변화를 받아야 들여야 한다"며 제약기업 인수에 대해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내 제약사의 영업구조나 운영형태가 '백화점식'이라고 비유하면서 "모두 똑같은 제품을 팔고, 똑같은 제품을 생산함에도 망하지 않는 구조에 있다 보니 제약사들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기업 오너의 높은 프라이드와 동일한 생산구조로 인한 제약사간 인수합병의 어려움, 노조와의 문제 등을 들며 제약기업의 인수합병으로 제약업계의 구조조정이 빠른 시일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제약사 러브콜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 그러나 쉽게 용인되지 않는 기업 오너의 수락과 경영체제의 독특성, 노조와의 문제, 내수시장만 노리는 한계성 등 인수합병이 쉽게 이뤄질 수 없는 구조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다.

국내에서 삼양을 포함한 대다수의 대기업들은 1000억원대 매출 규모룰 가진 대형 제약사의 인수를 노리고 있다. 500억에서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제약사간 인수합병도 종종 눈에 띄지만 OTC 전문기업과 ETC 전문기업의 합병이나, 바이오-제네릭제약사 간의 합병 정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에대해 이재용 삼정KPMG 기업금융본부 이사는 "국내 제약업체 간의 합병으로 덩치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미 여러 중소제약사간 공동출자 사업을 넘어 인수합병설이 오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투자능력이 부족한 회사간의 자발적 구조조정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변화"라고 말했다.

문경태 제약협회 부회장은 "국내 제약사의 재정불투명성, 기업오너의 높은 프라이드가 인수합병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중소제약사들은 그들대로 인수합병에 주력해야 하고,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경쟁부분을 갖춘 제약사의 인수합병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화 시대에는 생산성을 높여 국제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경쟁력을 살리는 가장 현명하고 효율성 있는 것이 인수합병"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 내에서 인수합병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

지난해 인수합병으로 성장 발판을 마련한 한 제약사 담당자는 "제약 기업간 인수합병을 나쁘게 볼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한 토대로 생각한다면 좋을 것 같다"고 업계 전반의 인식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합병하는 사이 노조나 운영체계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도 해결되어 가고 있다"며 "서로 모자른 부분을 보충할 수 있는 제약사간 인수합병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위제약사들의 인수합병 움직임도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종종 언론에도 나오지만 삼양과 웅진 등 제약기업을 인수하겠다는 기업들이 나오고 있고, 물밑으로 인수합병에 대한 의견들이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형제약사의 인수합병이 이뤄지면 업계 내에서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아직 대형제약사의 인수합병에 대한 제약업계 관계자들의 입장은 회의적이다.

국내 대형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대형 제약사의 오너들의 프라이드가 높은데 그걸(인수합병으)로 충족될 만한 '요소'가 없는 한 어려울 것"이라며 "국민의 건강에 일익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제약기업 오너들이 이 사업의 끈을 놓치 못하는 이유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제네릭만 빨리, 잘 만들어도 '장사'가 되는 상황에서 굳이 자신의 기업을 내놓으며 희생할 오너는 없다"며 "매출이 낮은 회사들은 가능할지 몰라도 대형 제약사의 인수합병은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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