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인간관에 영향을 끼친 세 가지 대표적인 견해가 있다. 우선 하나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적인 인간관이다. 그는 우리에게 인간이 고등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동물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본능의 존재라고 정의한다.

다음은 프로이드의 성적(性的)인 인간관을 들 수 있는데 프로이드의 논리는 우리 인간이 철저하게 성적 충동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칼 맑스의 경제적 인간관으로 우리가 경제적 동기에 의해 조작되는 존재로 인식하게 한다.

현실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인가를 믿는 대로 행동하며 매우 망상적으로 과대포장 된 인간관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최근 불교계의 행태를 보면 더욱 더 찰스 다윈의 진화론적인 인간관을 생각하게 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종교 편향적 오해를 부를 만한 정부 조치와 공직자들의 언행에 있었다는 것을 많은 국민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불교계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공무원 복무규정(대통령령)에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종교에 따른 차별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개정안을 통과 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계의 범불교도 대책위원회가 경찰청장 파면과 종교편향 근절 입법조치, 시국관련 국민 대화합 조치를 계속 요구하며 동물적 본능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요구가 억지 수준의 무리라는 것이다.

우선 종교 편향 근절 입법 조치의 경우 현재 여야가 종교차별 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해결 될 사안이다. 그리고 시국 관련 대화합 조치의 경우 불법 촛불 집회 주동자의 수배를 해제하라는 것인데 이것은 범법자를 옹호하는 위법 행위로서 아예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있다.

또한 경찰청장 파면 요구도 그렇다. 파면의 뜻을 알고서도 그런 요구를 하는지 그들의 사고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한 쪽을 두둔하려는 마음은 없지만 얼마 전 우리는 농민 시위자 사망과 관련, 시민 단체 등의 압력에 의해 경찰청장을 여론몰이 희생양으로 경질시킨 전례가 있다. 그 이후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 때도 그렇지만 책임을 묻는다면 최고의 수장인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옳다. 그래서 현직 대통령이 불교계에 유감을 표시하고 법 개정을 하는 등 성의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각없는 행동을 하며 불가능한 요구로 정부를 괴롭히는 것은 불교계의 과욕이자 월권이다.

조계사의 한 관계자는 “불교계에서 존경을 받는 어른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검문을 한 것은 불교계를 무시하는데서 비롯됐다”고 하지만 총무원장이 조계종에서나 높은 어른이지 국가 차원에서 볼 때는 국민의 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법 또한 모두에게 평등하다. 그 당시 상황으로 볼 때 범법자인 수배자가 스님의 차량을 이용해서 탈출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분을 무시하기보다 근무자로서의 직무를 수행 한 것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정당한 검문이지 그들이 주장하는 과잉 검문이라고 볼 수 는 없다. 사회 귀감이 되어야 할 수행자들이 세속인과 똑같이 욕심에 가득 찬 행동을 한다면 과연 누가 그런 종교인을 믿고 존경할 수 있겠는가. 내 말 한 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 놓고 그 누군가의 가슴에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지엽적인 문제가 발생 할 때마다 이권 단체들로부터 압력을 받아 문책성 경질이 된다면 책임자들이 눈치를 보느라 국정이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없다. 당연히 업무에 대한 지속성도 없어진다. 궁극적으로 누가 피해자가 되는지를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

특히 야당의 경우 촛불 시위가 국민적 저항의 평화시위인데도 불구하고 경찰이 과잉진압으로 관권을 행사했다며 경찰청장 경질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또 일부 여당 의원들마저 청장의 경질을 당연시하며 일부 정치권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며 부채질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소신보다는 상황에 따라 집단의 눈치를 보며 ‘꿩 먹고 알 먹고 식’의 실익을 추구하려는 것 같아 보인다.

폭력 시위대로 인해 병원에 입원한 전·의경을 한 번 찾아가 봐라. 그들 중 실명위기에 있는 이들도 있고 또 장애가 될 수 있는 젊은이들도 부지기수다. 똑같은 이 나라 국민인데 법질서를 문란케 한 자들은 영웅대접 받고 직무를 충실히 수행한 전·의경은 영·육간에 상처를 입고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하는 이 나라가 과연 온전한 민주국가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일부 종교지도자들이나 정치인들이 폭력시위자들을 건드리지 말고 또 지휘하는 책임자를 경질시키라는 요구를 할 것인가. 위계질서를 파괴하는 이 같은 행위는 국가를 위기에 빠트리는 처사다. 따라서 대통령의 유감을 계기로 더 이상 수배자 문제와 경찰청장 파면 같은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쉬운 점은 경찰청장이 지관 스님을 찾아가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일부 스님들에게 저지를 당하는 등 냉대를 받았다. 한 나라 경찰 총수를 이렇게 대접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난 일은 아닌지 묻고 싶다. 총무원장 스님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대접을 받으려면 남에게도 대접을 해야 하는 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불교계 큰 어른이신 분이라면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

필자가 아는 불교는 자비를 바탕으로 중생의 구제와 더불어 스스로의 깨달음을 위한 정진을 통해 자아(自我)를 찾는 종교로 알고 있다. 정치권이나 종교계가 말로는 국민의 소리 운운하지만 정작 침묵하며 사태를 걱정하는 다수에 국민의 소리도 들을 줄 아는 귀를 갖기를 바란다. 정말로 국가 안익을 생각했다면 ‘금강산 피격사건’과 ‘여간첩 체포 사건’에 대해서도 촛불시위를 했어야 했지만 그 때

이제는 불교계의 목소리를 충분히 냈다고 본다. 많은 국민들도 알았다. 그리고 대통령의 사과도 받아냈다. 얻을 것은 얻었으니 절(寺刹)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미움은 자신을 태우는 불’ 이라는 부처님의 말씀도 있지 않은가. 미움과 원망보다는 용서와 자비를 베푸는 대승적 태도를 보여 주며 세상사람 들에게까지 언행일치로 포교를 한다면 삶의 가르침을 주신 부처님도 극락에서 기쁜 눈물을 흘리실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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