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MM의 시대라고도 일컫는다. 멀티미디어의 시대라는 말이다. 어쩜 이 시대의 현저한 상징은 스피드와 칼라라고 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이 같은 특성을 대표하는 문명의 이기가 TV와 DMB의 스크린 문화 시대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문명의 혜택은 인간의 상상력이 이룩한 문명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문명의 이기로 인해 상대적으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심각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인 것 같다.

문명과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는 편안함에 안주하면서 안타깝게도 기억력이 점점 상실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전직 장관출신인 모 인사가 우스개 소리로 한 말이 생각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치아)를 닦았는지 안 닦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땐 칫솔을 만져보라고 했다. 칫솔이 축축하게 젖어있으면 이를 닦은 것이고 칫솔이 말라 뽀송뽀송하면 안 닦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상상력, 창조력, 추리력은 젊은이들 못지 않게 왕성하지만 아무래도 기억력은 젊은이들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명의 이기에 따라 그런 추세가 달라지는 시대가 된 것 같다.

과거에는 한자 말 한 뜻을 알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옥편을 찾으며 노력했다. 그 결과 그 기억이 가물가물 하면서도 오래 갔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의 경우 그 같은 수고를 하며 많은 시간을 소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창만 치면 모든 정보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원하는 대로 자료가 나온다. 그래서 해당 부분만 복사해서 붙이기만 잘 하면 그럴싸한 논문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쉽게 얻다보니 기억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50대 넘은 사람보다 2~30대 청년들의 기억력이 더 떨어진다는 것을 입증할 수가 있다. 문명의 이기가 사람들이 기억하는 뇌 기능을 점점 퇴화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감이 들 정도로 기억력이 없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 한다.

지난 달 서울역 광장에서 촛불 시위 때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여성들을 생각해보자. 물론 평화적인 집회로 끝난다면 좋다. 그러나 그 집회 성격상 과격한 집회로 인해 진압작전이 이루어질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어린 자식이 탄 유모차를 들이민다는 것은 자신이 한 아이의 엄마임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독립운동을 한다 해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취미로, 재미로 하는 시위도 아니다.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그 여성들이 과연 엄마로서의 자격이 있는 것일까? 무엇이 아이까지 데리고 거리로 나올 만큼 급했던 것인가?

투쟁을 하려면 혼자 나서지 무슨 배짱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 자식까지 경찰의 살수차 앞에 내몰며 그것을 마치 무용담 늘어놓듯 하는지 자못 궁금하다. 엄마라는 것을 기억에서 상실한 그 여성들, 생각해도 오싹하다.

또 민주당이나 민노당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신분을 망각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KBS, MBC를 감싸며 거리로 뛰쳐나올 이유가 없다. 더구나 KBS가 과거 참여 정부의 하수인으로 편파 방송을 할 때는 입을 무겁게 닫고 있더니 이제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외쳐대며 KBS를 지키겠다니.

그리고 국민을 비이성적인 광우병 공황 상태로 몰고 가 경제 혼란까지 초래하게 한 MBC를 지키며 투쟁하겠다니, 더욱 개탄스러운 건 공권, 주권을 무시하며 법질서마저 지키지 않는 일부 극렬노조원들의 횡포에 휘둘리는 양(兩) 방송사와 정치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무슨 명분으로 노조원들과 함께 하며 규탄대회를 하겠다는 건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이는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들을 우롱하는 처사이며 시대착오적 인 발상이다. 자신이 지금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조차 기억에서 지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전교조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 DJ 정부와 노 정부 10년 동안 청와대와 교육부를 비롯한 곳곳에 포진해 교육 정책을 어지럽게 하고 학생들을 내세워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이념 투쟁을 일삼던 일부 전교조원들, 결성초기의 ‘참교육’을 실현하는 교사로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기억력을 회복했으면 싶다.

또 광복절에 대규모 촛불 시위를 한다고 한다. 그동안 MBC의 편파·왜곡오보로 인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수만 명의 군중이 촛불 집회를 하며 정부를 질타했지만 이제 그 사실이 드러났고 방송사에서도 다소 미흡하지만 사과를 한 만큼 이제는 그만 둘 때가 된 것 같다. 이제는 사사로운 감정, 정치적인 야욕을 버리자. 국익을 먼저 생각하자는 거다. 생업에 종사하며 침묵으로 일관하는 대다수의 국민의

절대다수의 국민은 자유 민주주의를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국가의 혼란을 원치 않는다. 과격한 시위도, 과격한 진압도, 원치 않는다. 모두가 다 우리의 형제이고 국민이기 때문이다. 오직 발전된 국가에서 행복하게 살기만을 원한다.

촛불은 자신의 몸을 불살라 주위를 밝게 비친다는 점에서 희생을, 약한 바람에 꺼지면서도 함께 모이면 세상을 채운다는 점에서 결집을, 어둠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새벽을 기다리는 불꽃이 되는 점에서 꿈과 기원을 의미한다. 그런 촛불이다. 그래서 촛불 시위도 그만큼 의미가 깊은 것이다. 가녀린 촛불이 횃불이 되고, 화염병 불꽃이 되는 일이 이 땅에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8월 15일은 일제의 억압에서 우리가 해방된 날이다. 더구나 이 날은 유럽과 아시아를 통 털어서 제 2차 세계대전이 종료 된 글로벌한 가치를 지닌 날이기도 하다. 올해로 건국 60주년이 되었다.

그런 기념일이기에 우리는 이 날만이라도 일본 식민주의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워 온 이유, 해방을 그토록 갈구했던 이유도 다 나라 만들기에 있었음을 상기하자. 나라가 있어야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이적 행위는 하지 말자. 거룩된 날로 보내며 조국을 목숨 바쳐 지킨 영령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내는 시간을 갖자.

물론 정부가 더 반성하고 각성해야 할 일 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 계속해서 질책을 할 수밖에 없지만 신정부가 들어선 이래 미처 못한 대북정책, 균형 발전정책, 인권 정책 등의 일들을 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주어 경제적 역량을 발휘하고 역사적 통찰을 갖게 하는 게 제일 큰 과제다.

DJ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슬그머니 우리 기억에서 사라졌던 10년 동안 잃어버렸던 ‘아침이슬’. 과거 70년대 거리로 뛰쳐나와 어깨를 맞대고 목이 터져라 부르던 그 추억의 금지곡 ‘아침이슬’. “긴 밤 지새우고...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이 노래를 다시 부르며 가슴 아픈 그 때를 회상해본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