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음식을 저장해놓고 있다 보면 어떤 음식은 발효가 되는가 하면 또 어떤 음식은 부패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똑같은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발효가 되는 음식은 맛과 향기를 내지만 부패가 되는 음식은 썩어서 악취를 풍긴다.

젖소의 젖은 치즈가 되고 소금에 저린 배추는 군침을 흘리게 하는 신 김치가 되는 반면 고기나 찌개, 생선 같은 음식은 오래 놔두게 되면 부패되어 코를 막을 정도가 된다. 발효된 음식은 오래도록 곁에 두고 먹을 수가 있지만 부패된 음식은 그 악취 때문에 바로 버릴 수밖에 없다. 사람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성품과 행실에 있어 겸손하며 낮은 자세로 성숙되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늘 곁에 두고 싶어 하고 언제나 찾는다. 그러나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비난하거나 미워하며 거짓된 삶을 사는 사람은 이 사회를 부패하게 만들고 어지럽히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차라리 없는 이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데에는 그래서 첫 만남, 첫 인상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머리가 좋다는 평을 받는 경우 좋은 첫 인상을 느끼게 되면 지덕(智德 : 지혜와 덕)을 겸비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지만 나쁜 첫 인상을 느꼈다면 재승박덕(才勝薄德 : 재주는 뛰어나지만 덕이 없다)의 사람으로 평가되고 기억되어진다.

그 만큼 첫 인상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지식과 지혜는 똑같은 것 같아도 뜻은 완전히 다르다. 앎과 슬기의 차이다. 그래서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들어도 행위에 따라 각기 다른 성품으로 평가를 받게 되며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많이 안다는 것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안다는 것은 한문으로 '知(지)'다. 그리고 슬기는 '智(지)'로 표기한다.

정말 머리가 좋은 사람, 인정받는 사람이 되려면 지식과 지혜를 모두 갖고 있어야 한다. 흔히 지혜가 흔들리고 어두워지는 것을 지혼(智昏)이라고 하는데 지혜가 흔들리면 눈앞의 거짓 이익에 홀려 상황의 참 면목을 잃게 되어 신세를 망치는 경우가 생긴다. 중국에 설봉(雪峰)선사가 우주의 크기를 묻는 제자를 크게 꾸짖으며 한 말이 있다. “겨자씨 크기는 잘도 알면서 어찌 우주의 크기는 모른다고 하느냐

선사의 말의 의미는 이 세상의 모든 형상은 수명이 있다는 것이다. 풀도, 나무도, 바위도, 그리고 사람도 매 순간 순간 사라짐을 향해 흘러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이 있는 사람일수록 살아가면서 삶의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이는 사라질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선문답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선봉선사는 그 사라짐의 바닥을 보라고 하는 거다. 물질의 바닥에 무엇이 있나? 형상의 끝 너머에 무엇이 보이는 지, 삼라만상이 몸을 여윈 자리에 과연 무엇이 남아있는 지, 그 곳을 바로 보라는 것이다.

선봉선사는 그 곳에는 ‘본질’이 있다고 묵시적으로 말한다. 그런데 본질 안에는 겨자씨도, 우주도 찾아볼 수 없으며 모두 비어있다. 그러나 그 빈 곳에는 모두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겨자씨 안에 우주가 들어있고 우주 안에 겨자씨가 들어 있다. 텅 빈 내 안에 모든 것들이 가득 들어찬다. 그리고 하나가 되면서 짧은 삶에 대한 허무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지난 30일 148만6000여명의 서울 초·중·고등학교 학생의 교육을 책임질 서울시 교육감이 유권자들의 무관심속에서 치러져 38.3%의 투표율을 보인 주경복 후보를 제치고 40.1%를 얻은 공정택 후보가 아슬아슬하게 1년 10개월짜리 교육감으로 선출되었다. 15.4%에 불과한 투표율로 따지면 대표성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서울 시민에게도 책임이 크다.

이번 선거전에도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6명의 후보들이 자신들의 교육 정책을 제시하기보다는 독기어린 말투로 서로를 헐뜯기에 여념이 없는 것을 보았다. 지식은 많은데 지혜가 부족한 것 같다. 안된 말이지만 대부분의 후보들의 첫 인상이 재승박덕한 사람들 같이 비춰진다. 정치인들도 아니고 교육자라는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제사에는 맘이 없고 젯밥에만 맘이 있는 것’처럼 필살(必殺)의 모습을 보면서 지식에 앞서 지혜가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지식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지혜는 그렇지 않다. 이번 선거비로 들어간 320억 원은 학교 서너 개를 짓거나 3만 명의 어린아이에게 1년간 3000원짜리 무료 점심을 제공 할 수 있는 엄청난 돈이자 국민이 낸 세금이다. 그런 320억 원이 아깝지 않는 교육감을 바

연봉 1억에 차관급 대우, 교육장을 비롯한 교직원에 대한 인사권이 주어지고 6조원의 예산권까지 갖게 되는 자리. 이제 당선자는 후보 때의 마음처럼 ‘섬김의 미학’으로 몸을 낮추며 슬기로움으로 2년 남짓 한 임기 중 학교 선택·수준별 수업으로 평준화를 보완하고 교원평가제를 도입, 교사 질을 높이되 6.25의 역사를 왜곡하고 반정부적인 이념 교육으로 학생들의 사고를 그릇되게 하는 교사들을 색출, 이

중요성에 비춰 서울 시민들이 무관심했던 이번 선거, 생각할 수록 아찔했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진다. 발효되는 음식과 같은 지혜로움으로 마음을 비우고 시민과 약속한 공약을 지키는 교육감이 되기를 실낱 같은 희망으로 기대해본다.

“이익이 지혜를 어둡게 하고 권력이 지혜를 어둡게 한다(利今智昏. 權今智昏)”는 사마천의 말을 깊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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