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승(高僧)에게 비구니가 찾아왔다. 그녀는 삶의 가장 근본적인 이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고 했다. 이에 고승은 아무 말 없이 비구니의 어깨를 가볍게 만졌다. 그러자 그녀는 “스님에게 이런 속물근성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 놀라워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런 모습을 본 고승은 곧장 그 말에 대해 되받아쳤다. “비구니여, 속물근성은 그대가 이미 갖고 있다네.” 이 글은 소주선사의 일화에 나오는 글이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자기 잣대로 타인을 평가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느끼는 건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든 자신이 믿고자하는 것을 무조건 믿으려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믿고 싶지 않기에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 이외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불가(佛家)에서는 ‘나는 누구인가’ 라고 존재를 묻는 순간에 곧 부처가 다가온다고 말을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한다고 했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다. 기독교가 아주 큰 믿음으로 아주 큰 구원을 얻는 것이라면 불교는 물음의 종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역시 아주 큰 물음을 통해 아주 큰 깨달음을 얻는 종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불교수행자는 끊임없이 묻고 끊임없이 의심을 한다고 한다.

그런 까닭인가 봉은사 명진 스님은 깨달음, 중생들에게 설법을 할 때도 힘을 주지 말고 오히려 힘을 빼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의심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그 이유로 명진 스님은 비가 온 뒤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 지렁이가 어디로 기어가는 지 그리고 왜 기어가는 지 한번쯤 의심을 해 본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더 더욱 중요한 것은 의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 광활한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또 지금 내가 있는 여기가 어디쯤인지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달력에는 오월이라지만 우주력으로 볼 때 정확히 지금이 어느 때인지 어디까지 온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데 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바쁘게 살다보니 정작 중요한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신만이 알 수 있다고 모든 것을 신에게 떠넘긴다. 그러나 그것을 신에게 그냥 떠넘길 일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는 우리 모두가 안고 가야 할 물음이다. 따라서 그 문제는 신이 아닌 인간인 내가 풀어야 할 평생의 과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꾸만 무엇인가 안다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자기 잣대로 풀려고 하지만 해답은 아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앎’을 내려놓으면 ‘알 수 없음’이 뜨면서 그 안에 답이 보인다고 한다.

알 수 없음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일치감이 있을 뿐이란다. 그래서 도(道)가 깊고 수승 할수록 ‘모름’의 자리에서 살게 된다고 말한다.

그 ‘모름’의 자리에 삼라만상이 살아있어 해가 뜨고, 꽃이 지고, 하얀 눈이 내리며 바람이 스쳐간다고 했다. 먹고 살기 힘든 속세에서 그래도 선(禪)을 행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속세냐, 산중이냐는 중요치 않다며 산 속이든 세상이든 깨달음을 쫓는 건 오직 ‘구하는 마음’ 일 뿐이라고 스님은 답한다. 결국 장소가 깨달음을 구하는 데 있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도 없는 그 빈 마음으로

깨달음의 마음이 되려면 우선 절박해야 한다. 점잖게 앉아서 단전호흡이나 하면서 ‘이게 뭐꼬’ 하는 것은 ‘물음’도 아니다. 정말 슬픔에 찬 사람이라면 시(時)도 때도 없이 슬픔이 복받쳐 오는 법이다.

삼배(三拜)를 올리며 참선하는 마음도 이와 같으리라. 고(苦)가 내게 다가옴을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는 고통 없이는 진리를 향해 다가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안거와 동안거를 통해 기도와 수행으로 정진하면서 ‘나’(自我)가 누구인가를 생각해보지만 어찌 하겠는가 부처도 찾지 못한 ‘나’를.

쇠고기 수입 논란, 보험 및 상수도 민영화, 물가 상승, 정치권의 정치부재 등 요즘 같은 시기에 내 안에서 북받쳐 오르는 존재 가치에 대한 물음이 마구 솟구친다. 지금이야말로 사울이 바울이 되고,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고 어거스틴이 새롭게 변화되어 울음을 터뜨리듯 진실한 너와 나의 울음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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