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耳順)의 나이에 접어들다 보니 이제야 인생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산천(山川)이 변하고 온 세상이 변하는데도 아직도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게 있다. 그게 바로 정치꾼들이 즐기는 '중상모략'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3김(三金)이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으며 국민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더니 이번에는 新 3金(김대업, 김경준, 김용철)이 이 나라를 온통 쑥대밭을 만들고 있다.

검찰이 '대선의 마지막 뇌관'으로 꼽히는 BBK 사건에 대한 수사 발표를 한 직후 느낌이다. 우려했던 대로 한나라당을 제외한 대선 후보들과 일부 단체가 검찰 발표에 강한 불만을 품고 촛불시위를 주도하면서 검찰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범국민 저항운동'에 들어가 수사팀 교체를 요구하며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항의 방문한데 이어 '대규모 규탄대회'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검찰의 발표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측은 검찰이 '이명박 후보 무혐의' 발표가 '이명박 봐주기 수사'라고 항변하지만 반대로 '의혹이 있다'로 발표될 경우 다른 측에서 보면 검찰이 범여측 압박에 밀렸다'는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다.

검찰의 고유 권한에 대해 명백하게 월권하는 행위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또 법에 대한 권위를 인정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돌출행동은 납득할 수 없다.

스스로 법을 불신하면서 자기 실속만 차리겠다는 의도로 비춰질 소지가 있다. 상대를 비방하고 헐뜯으면서 얼마나 시너지 효과를 거둘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표를 깎아 먹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상대방의 약점을 들춰내며 짓누르고 자신이 그 위에 올라서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체성과 장점을 확실히 밝혀 누가 미래의 지도자로서 국정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지를 국민이 선택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번 BBK 사건 발표를 보면서 며칠 전 충북 청원의 한 채석장에서 일어난 휴대전화 배터리 폭발 소동이 떠오른다.

사고 운전자의 거짓말이 증폭되며 해당 휴대전화 회사의 주식 가격까지 떨어지고 온 국민을 소동으로 몰아 넣은 사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 진실이 38시간만에 드러난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2002년에는 김대업 사건으로 이 나라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고 민생을 어지럽게 했는지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런 까닭에 이번 재미교포 김경준 사건을 대선과 연결시켜 후보들이 사투를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이고 힘의 낭비다.

분명 이명박 후보는 이 사건과는 무관하고 그에 대해선 대통령이 되고 나서라도 책임지겠다고 했다. 다소 의혹이 있더라도 지금은 법의 판결을 믿을 수밖에 없다.

추후라도 이 후보가, 만에 하나라도 거짓이 드러나면 책임을 져야 한다. 아무리 정(情)이 많은 국민이라도 국민을 기만하고 농락한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검찰이 발표한 내용이 김경준의 사기극이 분명한데도 정치권에서 이 사건을 계속 정치적으로 이용, 국민을 우롱한다면 정치권, 특히 대통합민주신당도 응분의 책임을 지고 국민 앞에서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최근의 광고문구를 보면 더 더욱 중상모략으로 비춰지는 건 필자만의 생각이기를 바란다.

말로는 2만불 소득의 경제국이라고 하지만 지금 200만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고 정치부재와 경제 실책(失策)으로 온 국민이 먹고 살기도 힘들어 정치권이 물고 늘어지는 'BBK 사건'은 안중에도 없다.

과거로 거슬러 가보면 우리나라 대통령을 지낸 분들을 보면 하나같이 말로(末路)가 좋지 않고 존경받는 대통령이 없다.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야 대통령을 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독립운동을 하시다 초대 대통령이 되셨던 이승만도 그랬고, 5.16군사 혁명을 주도해 경제발전을 이루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도 피살되는 운명의 신세가 되어 버렸다. 또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임기를 끝낸 후 범법자로 전락하는 불운의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도 하나 같이 자식들을 철창에 보내며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당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역대 대통령들이 이러다 보니 존경할 만한 대통령이 없는 불쌍한 국민이 되어 버렸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속에서 권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남을 비방하고 헐뜯으며 중상모략을 일삼아온 결과에서 얻어진 자업자득이다.

개혁을 앞세워 이씨가 세운 조선의 경우도 5분의 1의 역대왕들이 정적(政敵)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설(說)이 있기도 하다. 이처럼 과거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음직한데 아직도 정치권에서는 남의 험담을 들춰내거나 중상모략을 일삼으며 최고의 권좌에 앉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정의도, 의리도, 진실도 필요없고 국민 또한 안중에도 없다. 그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이다. 여전히 학연, 지연에 얽매여 계파 싸움만 할 뿐 정책다운 정책이 없다.

그렇게 국민을 길들여 오다보니 아직도 국민 앞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어쩌구 저쩌구'하며 남을 탓하는 우매한 전직 대통령들도 있다.

국민 앞에 깊이 반성하고 움켜쥐고 있는 비자금을 다 내놓아도 용서가 될까 말까한 분들이 자기최면에 빠져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참견을 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들 정도다.

해를 거듭할수록 나라가 어수선하고 점점 살기가 힘들어진다. 민주주의는 후퇴하는 것 같고, 도덕과 윤리는 가을 낙엽처럼 땅에 떨어졌다. 생산성도 줄어들고, 소비만 늘고 있다. 북한에 퍼주기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국내에서는 인권을 외치면서도 유엔 결의안에는 북한 눈치를 보며 반대표를 던진 우리다. 어느 하나를 보아도 어둡기만 하고 모두가 침체된 세상이 되어 버렸다. 희망이 빛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겠다고 하는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은 많은데 어찌 하나 같이 남을 헐뜯고 단점을 들춰내는 일에 전념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이 나라가 어떻게 해서 2만불 소득의 경제국이 되었겠는가. 그나마 이렇게 성장한 것은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인력 수출하면서 얻은 차관을 계기로 이 땅에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면서부터다. 그리고 50대 이상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힘들게 피땀을 흘린 댓가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이 땅, 이 민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의식에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002년 보여주었던 국민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어야 한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논리를 갖고 있는 자의 틀을 무참하게 깨부수고 남을 비방하여 중상모략을 하는 악습을 일소해야 한다. 그래서 진실하고 정직한 자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이 나라의 국민이 되자. 늦었지만 이제는 국민이 나설 때인 것 같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박목월의 시 '이별의 노래'가 생각난다. 가을이 떠난 겨울의 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느낀다.

[시인.수필가.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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