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할 줄 아는 마음씨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다. 그것은 타고나야 한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마음은 가장 아름다운 예의의 형태다." 영국의 귀족 할리팩스경이 남긴 말이다.

결국 고마워해야 할 입장에서 고마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문화인이 될 수 없다는 말인 것 같다.

11월 셋째주일을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추수감사절'로 지키며 감사의 예배를 드린다. 특히 기독교인들의 경우 성탄절과 추수감사절은 양대 축제로서 함께 모여 찬양과 예배를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미국의 경우 이맘때가 되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자가 수백명씩 생겨난다고 한다. 이는 감사절의 참된 의미와 정신과 믿음을 되찾는 일은 등한시 한 채 칠면조 파티에 즐거움만 앞세우는 그릇된 풍조에서 비롯된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11월을 추수감사절기로 지키는 전통은 1620년 102명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영국을 떠나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타고 63일간의 긴 항해 끝에 미국에 상륙, 신앙의 자유를 확보하고 많은 고생을 하며 농사를 지어 첫 수확을 거두면서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린 것이 계기가 되었다.

특히 그들은 이 절기를 맞이하면서 원주민이기도 한 인디언들을 불러서 함께 잔치를 베풀고 나눔을 통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런 감사의 절기가 기독교 문화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세계 교회가 11월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전통이 200년 동안 이어져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아음다운 마음을 갖고 있는 선조들의 훌륭한 전통과 유산이 퇴색되는 가운데 오직 실용주의만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원망, 불평, 불만으로 가득 찬 반사회적인 사람으로 변질되고 있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의 악순환은 결과적으로 이 세상을 혼돈과 불법 무질서의 도가니로 만들고 말았다.

매일같이 거리로 뛰쳐나온 시위대의 살기등등한 고함소리, 공직자들의 부정비리, 중상모략과 시기, 사랑보다는 미움으로 우리의 삶의 터전을 뒤흔들고 있다.

이는 분명 감사하는 마음의 표출이 아니다. 이는 자기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이기심에서 분출되는 불만, 불평, 원망의 총체적 행동이다.

"내가 가난하게, 힘들게 사는 것은 부자들 때문이고, 내가 못사는 것은 잘사는 사람들 때문이다"라는 생각과 철학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연유에서 계속적으로 '혁명' 또는 '쟁취'를 외치며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고 거리를 뛰쳐 나오는지도 모른다.

오래 전 필자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말끝마다 '부자놈들' '가난한 자'를 구분해서 울분을 토했고, 또 톤의 높낮이도 달랐다.

귀가 닳도록 이런 소리를 듣던 내 아내가 "왜 자신이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은 안하고 가난한 게 무슨 유세라고 부자들을 '놈' '놈' 하면서 욕을 하느냐"고 질타를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실 '놈'이나 '자(者)'나 어휘는 같은 뜻이다. 말만 다를 뿐이다. 아내의 지적이 옳았고,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부자가 있어 감사하는 마음이 되었어야 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진 적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좀 엉뚱한 발상인지는 모르지만 부자가 많아야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이웃을 위해 자선사업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자라고해서 다 나쁘고, 더러운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는 떳떳하지 못한 부자도 있지만, 깨끗한 부자도 많다.

개인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 가족주의에 길들여진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나 두 번째 부자인 워랜 버핏 같은 경우 자신을 위해서는 무서울만큼 검소하면서도 다른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는 자기 평생을 모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 가난과 질병 그리고 전쟁으로부터 고난을 당하는 세계 민족을 상대로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지 않는가.

이들 뿐만 아니라 록 펠러는 또 어떠했는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지만 생전에 평생 모은 재산을 자녀들에게 상속하지 않고 뉴욕 시민들이 50년 동안 마실 수돗물 값으로 내 놓았다. 그래서 지금도 뉴욕 시민들은 록 펠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이들이 이 같이 자선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나눔에 대한 신앙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것은 남을 위해 돈 벌고 남을 위해 일하고 쓰는 성경의 근본사상과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이 세계 여러나라의 민족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도 부강한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워랜 버핏, 록 펠러, 빌 게이츠 등과 같은 깨끗한 부자, 사랑의 실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근간에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부자들이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자식들에게 주식을 증여하는 것 때문에 경찰청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추태를 보이고 있고 한국의 부자로서 온 국민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홀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이웃이 있어 부자가 되었음에 감사하고 나눔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나의 성공이나 승리가 공동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보니 지금 우리 가정이 병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노후에도 결별하는 가정이 급속히 늘어만가고 있다. 가장 작은 조직체인 가정이 무너지면서 사회가 병들고 병든 사회속에서 사람들은 사랑의 결핍으로 짐승같이 포악해지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영국작가 다니엘 디포는 그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주인공을 통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은 무인도에 홀로 남은 사람이 아니라 어디서든지 감사의 조건을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고 했다.

대자연 중에서 사람은 갈대처럼 상하고 꺾이기 쉬운 존재이지만 사고하는 지각이 있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으로 문화를 창조하며 모든 동식물을 지배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결코 비례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용할 양식이 있다는 것' '몸과 마음의 건강' '마음속에 늘 간직하고 있는 희망' 이 세 가지만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된다면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살아있기에 고통을 맛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아내와 남편이 함께함을 감사하고,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에게도, 스승과 벗들에게도, 만나는 모든 사람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

아울러 나 하나가 존재하기 위해 많은 이웃들이 있다는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되자, 모두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때 이 땅에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는 사랑의 꽃이 만발하리라.

[시인.수필가.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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