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돌아가는 세상사를 보면 미국의 대문학가 마크 트웨인의 충격적인 말이 생각난다. 그는 "굶주린 개를 데려다가 배불리 먹여 보라. 그러면 그 개는 결코 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개와 인간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까마귀를 길러 보라. 그러면 그 까마귀는 너의 두 눈을 쪼아댈 것이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지금 이 세상은 개가 아닌 까마귀를 기르다 두 눈을 쪼인 사람들이 놀라우리만큼 많은 것 같다.

이런 마음을 문학작품으로 그려낸 것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재산을 두 딸이 모두 나누어 차지하고도 노쇠한 아버지 리어왕을 모시기를 거부하고 삭풍이 부는 광야로 내쫓았다.

두 딸에게 배신을 당한 아버지 '리어왕'은 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기른 개에게 내가 물렸구나"라고 절규하지만 모든 것을 다 잃은 후였다.

어디 그런 배신과 아픔을 당하는 사람이 '리어왕' 뿐이겠는가. 지금 이 세상을 보면 이런 개만도 못한 인간 이하의 군상이 비일비재한 것 같다. 특히 정치인들이 그렇다. 이 당, 저 당 옮겨다니며 철새처럼 먹이를 찾아 나선다.

요즘 커다란 이슈로 되고 있는 BBK 사건도 그렇고, '삼성 떡값' 의혹문제도 그렇다. 또 대권(大權)에 도전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모두가 한결같이 자기의 이익을 따져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자기 착각에 빠져 배신을 밥 먹기 보다 쉽게 하고 있다.

신문이나 TV를 보면서 이 세상을 산다는 게 참으로 복잡하고 아슬아슬 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근심, 걱정이 없는 날이 없고 감사함보다는 늘 아쉬움과 부족함을 느끼는 날이 부지기수다.

그리고 어느 하나라도 결정되거나 결심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깝게는 자기 존재의 근원인 부모의 재산을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필리핀에다 내다 버리는 배은망덕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게 이 세상의 진면목인 것처럼 눈과 귀를 혼란스럽게 만들 지경에 이르렀다.

부모를 구타하는 자녀의 수도 심심치 않게 늘고 있고 이혼률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혹자는 지식교육에만 치중하고 윤리, 도덕이 상실되면서 이루어진 자업자득의 결과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모에게 배은망덕하고 영달을 찾아 남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처사는 단순히 가해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급기야 그 가해에 대한 필연적 보상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주를 운영하는 철학이다.

특히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이 바로 그렇다. 교인은 아닐지라도 "뿌린대로 거두리로다"고 한 성경구절을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감사와 감은의 씨를 심은 자는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지만 배은과 배신의 씨를 뿌린 자는 그 결과마저도 자기가 거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사 생활과 배은망덕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이가 들어 늙고 병이 들 때에야 비로소 '아! 이게 아닌데' 하는 한숨으로 후회를 하는 우리일진대, 그런 줄 알면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늘 바쁘게만 살아오는 것 같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 때문에 욕심을 부리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바삐 움직인다. 무엇을 찾는지도 모른 채 분주하기만 하다. 내 자신 속의 또 다른 나를 찾다보니, 내 삶이 아닌 남의 삶을 살려고 하다보니, 고통, 갈등, 미움, 허전함, 과욕 등이 가슴에, 머리에 가득 차다보니 늘 불안하고 남을 믿지 못하고 흔들리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또 다른 내면의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인생의 삶이 달라지면서 행복과 기쁨도 찾아오고 감사함으로 보람의 삶을 누리며 살 수 있다.

그렇게 살려면 자기 능력의 70~80% 정도만 보상받고 살면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120~130%를 보상받으려고 하다보니 남을 불신하게 되고 불안해지면서 정도(正道)를 걷지 못한 채 까마귀 같은 삶을 살며 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화려한 옷, 명품의 옷을 입고 좋은 음식, 좋은 일들이 생기고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도 내 맘에 맞지 않거나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무엇이든지 행복과 감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굳이 조건을 따진다면 나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앞서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나 자신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감사하고 기뻐해야 한다.

나 보다 더 높고 좋은 사람보다, 나 보다 더 힘들고 부족한 사람들을 보면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하기사 즘 상황을 보면 "기쁘고 즐거운 일도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감사하느냐"라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행복을 느끼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 어떤 마음이 되느냐 하는데 달렸다.

지난 11일은 세안에서 흔히 '빼빼로 데이'라고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늘고 길쭉한 과자를 주는 날이다. 물론, 상술이 다분하지만 서로가 주고 받으면서 기쁨을 함께 나누며 감사의 마음이 된다.

필자 역시 그 날을 맞이하면서 250여개의 봉지에 과자를 담아 교인을 비롯한 제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작은 관심이 많은 이들을 기쁘게 했고, 또 내 자신이 그런 모습을 보며 행복해 질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되기도 했다.

이제 본격적인 결실의 가을로 접어들었다. 흔히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이 말이 '하늘에 고약한 짓을 하면 마비가 온다'라는 말로 바뀌었다고 한다.

인간과의 관계가 나쁘면 건강의 마비, 경제의 마비, 양심의 마비, 가정의 마비까지도 올 수 있다.

나만을 생각하고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먼저 사람과의 관계를 좋은 관계로 만들면 이 세상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 수 있다.

[시인.수필가.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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