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하고픈 일을 다하고, 또 가고 싶은 곳을 다 다니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어느 누구든 자신에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바뀌기도 하고 순간의 선택이 우리에 행·불행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런 기회는 우리가 깊은 절망에 빠져 있을 때도 주어진다. 세속의 말로 우리에게는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흔히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말을 곧잘 한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가 아니라 “기회를 버렸다”라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생에 세 번의 좋은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니라 기회는 얼마든지 우리 주위에 있었는데, 그 주어진 기회를 그냥 흘려버리고, 그 기회가 지나간 후에 기회를 놓쳤다고 안타까워 하며 후회하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그래서 본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일단 놓친 기회, 버린 기회를 다시 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괴로워하고 안타까워하며 후회의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것 같다.

어쩜 이것이 인간만이 갖는 현실 상황이 아닌가 싶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접어든 나로서도 그 삶만큼 많은 기회가 오기도 했고, 또 그 기회를 버리기도 했다는 것 부인 할 수 는 없다.

무수히 스치고 지나쳤을 기회들을 생각하며 이제껏 걸어온 나의 뒷모습을 돌이켜보았다. 그런 뒷모습은 속일 수도 없고 또 거짓일 수도 없다. 그래서 너무 정직하고 선명한 내 뒷모습이 슬퍼지기까지 한다.

오래 전 난 시시한 미술대학이라고 모 대학을 지원하지 않은 것부터 시작해 한의과 대학에 입학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순수예술인이 되겠다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미대생' '의대생'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흘려버렸다.

그리고 철없는 시절, 세상을 원망하며 속세를 떠난다는 차원에서 많은 이들의 만류에도 '공수부대 간부후보생'을 지원했으나 불의의 사고로 그 기회마저 놓치기도 했다. 또 신학교의 경우 선택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놓쳤다. 또 모 방송국에서 8.15특집으로 단역이긴 하지만 '김구' 선생으로 출연할 기회가 있었으나 불발 되었고 그 덕분에 MBC 창사특집인 '허준' 드라마에 자문위원이 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그런 내게 의료계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가 우연하게 찾아왔다. 한국화(동양화)를 하던 내가 전공도 아닌 목각을 해보겠다며 통나무를 안전톱으로 켜다 그만 안전 부주의로 인해 왼쪽 팔목과 하복부를 심하게 다친 것이다.

1년 반 동안 병원 생활을 하면서 무려 8번을 수술하고 4곳의 병원을 옮겨다니던 내게 그런 기회가 왔다. 마지막 4번째 병원에서다. 이 병원은 종합병원이 아니고 '의원'이었다.

종합병원과는 달리 입원실을 혼자 쓰고 조용해서 좋았지만 장기 입원환자가 되다보니 가족조차 발길이 끊어진 채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외로운 환자가 되어 버렸다. 덕분에 간호사들이 틈틈이 내 방을 찾아주기도 하면서 친구가 되어 외로움을 달래주기도 했고, 나 역시 틈만 나면 진료실로 나와 간호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느 정도 상처가 아물면서 소일꺼리로 내원 환자들의 붕대를 풀어주거나 상처부위에 약을 발라 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당시는 간호사들도 정식 간호사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일을 하던 시절이었기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 그러다보니 이대에 다니는 원장의 둘째 딸을 치료하게 되었고 그런 인연으로 그 딸이 저녁이면 내 방을 찾는 가까운 사이가 됐다. 이로 인해 병실 출입을 자제 해달라는 간호사와 다

나중에는 원장 딸과 나 사이의 관계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될 정도가 되었는데 하루는 원장님이 저녁식사에 초청, 날 더러 '의료기사' 시험을 보란다. 지금은 대학에서 전공을 이수하고 자격시험을 보지만 그 당시는 병·의원에서 일정기간 근무한 사람에게 원장의 추천서만 있으면 자격시험을 볼 수 있는 특전이 부여되었고, 또 시험을 보면 90% 이상이 합격을 하던 때다.

'의료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자기와 함께 병원에서 일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사위를 삼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 때도 난 화가(畵家)가 되고픈 꿈을 저버릴 수가 없어 정중하게 거절하며 그 좋은 기회를 스스로 거부했다.

또한 군(軍) 생활을 끝낼 무렵 인근 지역주민들이 땅도 주고, 장가도 보내주겠으니 이 지역에서 함께 살자고 했을 때도 난 그 기회를 버렸다. 그리고 몇해 전 '안경사' 자격시험이 처음 실시될 때도 응시자격을 부여 받을 수가 있었는데도 난 그 기회마저 외면 했다.

이처럼 많은 기회가 찾아왔지만 난 모든 기회를 스스로 버린 것이다. 학교 같지도 않다던 미대에 입학했던 후배가 이제는 중학교 교장이 되었고, 내가 무시했던 그 학교는 유명대학교와 합병한 예술대학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또 의료기사 자격을 취득한 지우는 필리핀 대학에 진학, 오랜 역경 끝에 약사고시에 합격 현재는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가 되었고, 검안사 시험에 합격한 지우는 서울에서 안경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 군대 생활을 하던 지역의 땅 값은 서울 땅 값보다 몇 십 배가 더 오른 황금의 땅의 되어 버렸다.

그러나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나뭇잎' 같은 명작을 남기는 화가가 되고자 했던 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난 지금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기회는 늘 내 곁을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미 가 버린 기회, 찾을 수 없는 기회라면 굳이 연연할 필요는 없다. 그런 마음이 있다면 또 다시 찾아오는 기회를 잡으면 된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그 잃어버린 기회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로 인해 난 또 다른 인생의 삶을 살게된 것에 감사한다. 그 많은 여자들 중에 지금의 아내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감사와 더불어 행복하다. 또 그런 기회를 버렸기에 언론인을 거쳐 목회자이자 시인으로 거듭나는 삶을 살며 27개국을 다닐 수 있는 기회와 행운을 얻지 않았는가.

오늘 이시간에도 난 내 마음의 화폭에 먹물을 듬뿍 찍어 구름을 그린다. 뭉개구름. 새털구름.기암 같은 구름을 그린다.

기회를 버리거나 잡는 것에 대한 책임은 '남'에게 있는 게 아니다. 자기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대신 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기회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곁에 있다. 그런 기회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잡아야 한다. 기회는 잡을 때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회는 횟수가 없다.

[시인.수필가.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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