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국대학교 신정아 학위 허위사실 논란으로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이 온통 청와대 변양균 전(前) 정책실장 이야기뿐이다. 더구나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대통령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나기보다는 측은한 생각이 든다.

노 대통령은 "깜도 안된다"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언론의 의혹 제기 보도에 대해 이 같은 말을 하며 비아냥거렸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의 386 최측근인 정윤재 전(前) 비서관 역시 직권을 남용하고 많은 비리가 저질러진 사실들이 보도될 때도 노 대통령은 언론을 탓했다.

그렇게 당당했던 대통령이 변 전 실장의 부적절한 여자 관계와 부당한 압력행사, 그리고 정 전 비서관의 직권남용 등이 사실화되면서 기자간담회를 자청, "믿음이 무너졌을 때 얼마나 난감한지 짐작할 것이다. 할말이 없다" "검찰 수사결과 불법행위 있으면 '측근비리' 라고 이름 붙여도 변명 않겠다"며 대국민 사과의 여지도 남길 정도로 곤혹스런 표정이다.

어느 수도원에서의 일이다. 많은 수사들이 있는데 그 중에 '땡땡이 수사'로 불리는 수사가 있어 늘 다른 수사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예배시간도, 심지어는 기도시간도 잘 빼먹기 일쑤고 복장마저 단정치 못했다. 그래서 다른 수사들이 그 수사를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때가 되어 모두가 죽어서 천국에 갔다. 그리고 땅에서 있을 때의 삶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땡땡이 수사가 아주 좋은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

그의 행실을 잘 알고 있던 동료 수사들이 부당하다며 하나님께 항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땡땡이 수사는 수사가 된 이후 의식적으로 남을 비판하고 판단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어쩌다 의견충돌이 있을 때도 그 자리에서 즉시 다른 사람과 화해했다. 특히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나와 귀를 씻었다. 나는 분명히 성경에 '남을 비난하지

프랑스의 작가 뤼시앵 레뇨가 쓴 '내 여인은 광야에서 산다오'라는 책에 나오는 사막 교부들의 이야기 중 한 대목이다.

이제 세 달 남짓 남은 대선을 앞두고 우리는 대선 후보나 예비 후보자들이 할 수 있는대로 상대방의 약점과 헐뜯을 것을 찾느라고 혈안이 되어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들의 행태를 보면 마치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사람들처럼 인신공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기 정체성을 먼저 주장해야 함에도 불구, 상대 약점을 들춰내고 비방만 일삼으며 말을 함부로 내뱉고 있다. 또한 그것도 모자라 인격을 모독하는 비방의 글과 문자들이 인터넷을 점령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의 생각이지만 대선 예비주자들이 지금 이 순간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또 무엇이 시급한 것인지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덱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며 누에고치가 실을 만들어 내고 누에가 그 속에서 살 듯 인간도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에 따라 복(福)과 화(禍)를 누리게 된다고 했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속담을 반대로 생각하면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질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말 한마디로 깊은 곤경에 빠지고 오랫동안 지켜온 우정의 관계가 갈라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말 한마디의 실수로 오랫동안 애쓴 공든 탑이 무너지고 심지어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무심히 지나치는 말의 결과가 얼마나 엄청나고 중요한 것인지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말을 긍정적으로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기란 사실 어렵다. 교만한 사람은 말을 통해서 다른 이에게 커다란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말로써 다른 이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갖게 한다.

누군가가 실패하여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 그를 향해 던진 말 한마디가 그 사람에게 실의를 극복하게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차가운 비판이 아니라 따뜻한 격려와 사랑이다. 특별히 가까이 있는 사람, 누구보다도 나를 더 잘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에게 비난을 받을 경우 그 마음의 상처는 더 크다.

인간은 누구는 실수가 많고 잘못을 저지른다. 자기 자신의 눈에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있는 티만 탓할 수는 없다.

자신의 말처럼 소설같이 이 정권을 이끌어온 대통령. 사려와 지식이 없는 경박함으로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던 대통령이지만 이제는 그를 비난하기보다는 인간적인 면에서 배신을 당한 그의 아픔을 위로하는 넓은 아량을 베풀어 보자.

가능한 남의 험담이나 나쁜 이야기는 한마디라도 하지 말고 오히려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칭찬 한마디를 더 하는 우리가 되자. 정도(正道)를 지키는 수사 보다 차라리 '땡땡이 수사'가 되자.

무심코 한 나의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아울러 살면서 부드럽고 지혜로운 말 한마디가 한 인생을 행복하고 기쁘게 만든다는 것도 생각하자. 그리고 나의 입술은 비판의 입술인가, 격려의 입술인가 생각해 보자.

문득 내가 수첩 앞장에 써놓은 글귀가 떠오른다. '無言忍不忘(무언인불망) 人示禁起念(인시금기념)'(말없이 참는 것을 잊지 말되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을 금하고 일어날 것을 생각하라.)

오늘 하루만이라도 다른 사람을 칭찬만 하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시인.수필가.칼럼리스트]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