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모르는 일이다” “그런 일은 절대 없다” 요즘 세상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최근 정부나 기업체, 정치인, 연예인들이 곧 진실이 드러날 상황임에도 불구, 당당한 모습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분명히 현존하는 것은 있는데 주체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거침없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음해성 비난과 거짓말, 분명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 같은 작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이해할 지 모르겠다. 논리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비난이나 거짓 증거는 도덕적으로는 죄(罪)가 되며 정신 의학적으로는 치료가 필요한 병(病)에 해당된다.

정신의학적으로 보면 남을 비난하거나 자신을 변명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하는 거짓말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이나 처벌을 회피하고 명예를 지키려는 목적으로 이용되는데 이는 정신분석학적으로는 초자아(超自我)가 무너진 상태로 본다.

전문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내면엔 ‘욕구를 추구하는 본능’ ‘이를 견제하고 도덕, 양심, 윤리 등을 지키려는 초자아’ ‘현실에 대한 분별력을 담당하는 자아’ 가 무너진 상태로 본다.

남들의 관심을 끌고자 과장 표현을 일삼는 히스테리성 인격장애, 변덕과 감정 기복이 심한 경계성 인격장애, 자아도취증에 사로잡힌 자기애(自己愛)적 인격장애 등도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거짓말을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이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사회적인 인간이 되면서 본능적으로 치우침의 특성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쉽게 한 쪽 방향으로 결정지으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것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사회적 동물이 되면서 다른 사람을 자신의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하거나 지배하려고 하는 욕구를 끊임없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표출

지금의 현상을 보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 각기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이 파괴와 물리적 힘의 대결로 치달으며 동물적인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정의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이 진리라 고집하며 따라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무리다. 설령 그 주장이 아름답고 이상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보수적인 사고의 도움 없이는 본질과 현실 모두 잃게 된다.

한 사람과 한 무리 속에 모든 걸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이 세상 어디에서나 인간의 갈등으로 인한 문제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음은 하나님께서 부패한 인간에게 주신 ‘조화의 과제’를 잘 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조화를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끊임없이 서로의 필요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인생이 어떻게 보면 부담스러운 선물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인간의 행복을 하나님의 선물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얼마나 그것을 아름답게 만들어 내느냐에 있다 하나님의 크신 선물 중 가장 부담스러운 선물이 바로 사람인 것 같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연유는 가장 큰 행복도, 가장 큰 고통도 바로 사람을 통해서 오기 때문이다.

비방과 흠집 내기를 밥 먹기보다 쉽게 하면서도 남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에 대해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뻔뻔한 사회가 됐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책임 없이 내뱉은 험담과 거짓증언이 상대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된다는 것은 아예 엄두에 두지도 않는 살벌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더구나 이 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라 할 수 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릇됐는지를 알만도 한데 무관심 속에서 침묵을 지킨다는 사실이다. 물론 힘든 삶, 지친 삶 속에서 남의 문제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따라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더불어 살면서 뜻을 같이하는 의미의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와 상대방 모두가 행복한 선물로 가꾸어지기 위해서는 조화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주시면서 이 ‘조화’라는 것을 숙제로 내주셨는지 모른다.

조화로운 인간관계가 되려면 남을 생각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한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열린 마음이다 내 것을 고집하지 않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조화를 이루는 열린 마음인 것이다.

그런 마음이 될 때 나를 낮추게 되는 것이다. 나를 낮추게 되면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으니 누구를 비방하거나 험담하지도 않게 된다. 일반적인 말이지만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 입장이 되는 배려의 언행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화해를 한 다해도 화살에 꽂힌 나무에는 자국이 남는 법이다. 내가 남에게 좋은 평을 받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내 삶에 충실하고 묵묵히 삶에 임하다보면 좋은 평도 얻을 수 있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이제 수확의 계절, 결심의 계절이라는 9월이 벌써 문턱을 넘어섰다. 겉푸름으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속푸름으로 풍요로워지는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인생은 기나긴 여행길과도 같다 그 여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바람이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남(타인)을 내 잣대로 기준해서 비난을 하거나 험담을 늘어놓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거짓증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필자도 며칠 전 필자의 이름까지 거명하며 험담을 늘어놓는 장문의 글을 카페에서 본적이 있다. 생전 처음으로 접하다 보니 처음에는 불쾌감으로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었으나 곧바로 이성을 찾았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기왕 기다리는 거 믿음을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 마음이 되고 보니 명예훼손죄에 적용될 수 있는 그런 글을 올린 용기를 갖고 있는 그 젊은이가 오히려 안쓰럽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로 인해 모처럼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교만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를 무조건 용서하기로 했다.

어차피 인생은 생의 무대에서 인격의 가면(페르소나)을 쓰고 연출하는 연극인이 아니겠는가.

[시인.수필가.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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