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에서 팔리는 루이뷔통 가방의 99%가 짝퉁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또 중국산 제품의 경우도 모두가 가짜라는 뉴스도 접했다.

바야흐로 명품(名品) 세상, 지구촌이 되어버렸다. 여대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젊은 직장 여성들은 계까지 들어가면서 명품이라는 루이뷔통과 구찌 핸드백을 산다.

또, 남자들의 경우도 할부카드를 그어서라도 에르메네질도 제냐나 휴고보스 정장을 사 입어야 기를 피는 남자가 된다.

그 뿐인가. 어찌하다 보니 명품이란 이름이 안 붙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명품 교육에, 명품 아파트, 심지어는 신도시도 명품 신도시가 되는 기막힌 세상이 되어 버렸다. 또 명품을 세일이라도 한다는 소문이 나면 매장이 오픈 되기 무섭게 많은 인파가 몰려 아비귀환이 될 정도가 된다.

흔히 명품을 좇는 것은 졸부(猝富) 취향이요, 허영의 발로요, 속이 빈 사람들이 스스로 그 같은 과시를 통해 자기만족을 위한 욕구 충족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내 돈주고 내가 산다는데야 남이 뭐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자본주의 국가에서 명품을 선호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나쁘다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명품에 대한 뜨거운 열풍은 보통사람이라고 자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고 분명 지나친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명품이라고는 롤렉스 시계와 버버리 코트 정도 밖에 알지 못하고, 먼 나라 이야기로만 알고 살아온 우리 나이든 세대로서는 그 많은 명품의 이름 자체가 아리송한 외국어로 표기되어 있어 혼란스러움과 함께 지적 열등감 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한마디로 아무리 명품이라지만 왜 그리 비싸야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게 유행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아내를 생각하며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마치 나만 이 세상에서 처진 삶을 살고 동화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느 사회이건 명품의 기호 가치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액수와 종류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명품을 구입하며 치장하는 부류도 일부 부유층에 불과하다.

이처럼 명품을 선호하는 것은 과시를 위해서든 추종을 위해서든 남을 의식하고 차별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명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체가 자신을 고상하고 품격 높은 인격체로 격상시켜 행복해질 것이라는 착각을 일으키며 많은 보통사람들이 명품을 하나라도 소유하고 싶어한다.

명품이 의미하는 것은 소유자가 돈이 많다는 것 뿐이다. 흔한 말로 명품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소유자가 높은 품격이나 세련된 취향을 지녔다고 볼 수는 없다.

다소 비약하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는 언제부턴가 눈앞에 보여지는 것, 만져지는 것에만 그 가치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심해졌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는 눈에 보여지는 것들에 의해 점점 밀려나고 있는 현실이다.

오죽하면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조차 그의 내재된 인품보다는 보여지고 느껴지는 경제적 능력을 우선으로 평가하는 서글픈 세상이 되어 버렸겠는가.

오래 전 유럽의 묘지 문화를 취재하기 위해 영국에 잠시 들렀을 때 원정 쇼핑을 즐기고 있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가이드가 한 말이 생각난다.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한 것이지, 그 사람이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신발에, 무슨 핸드백을 들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사람이 명품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런 기억을 더듬다 보니 우리 사회에는 겉모양만 명품 같은 짝퉁의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외형은 명품처럼 번지르르 하지만 알고 보면 짝퉁인 사람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명품을 지녔다고 사람까지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명품처럼 보이는 짝퉁일 뿐이다.

대선을 앞두고 서로 간에 자기는 유일한 명품이고 남은 짝퉁이라고 비난하며 명품인 자기를 뽑아달라는 정치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계절이다.

명품과 짝퉁은 육안으로 쉽게 식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제는 명품 같이 보여지는 짝퉁에 현혹되어 나라가 엉망이 되어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우리의 다음 지도자가 명품인가 짝퉁인가 하는데 있다. 그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많은 보통사람들이 망설임 속에서 얄팍한 지갑을 열어 명품을 사며 뿌듯함에서 행복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손에 쥔 명품에는 그들이 원하는 가치가 담겨 있지는 않을 것이다.

행복함을 느끼는 것도 순간일 뿐이다. 세상이 변해도 언제나 변하지 않고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며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고가(高價)의 명품은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명품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스스로 만들고 지켜나갈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인.수필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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