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거울이다. 그래서 세상은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람의 얼굴을 반영시켜준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누구든 실패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누구 때문이라든지, 어떤 환경의 조건에서만 그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물론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남이 내게 불쾌하게 대할 때는 우선 남을 탓하기 전 분명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빨리 깨달아야만 할 것 같다.

흔한 마음으로 '너' 때문이라든지,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단정지으며, 애써 남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키고 자신을 합리화시키려고 한다.

경우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에 앞서 그 같은 원인이 무엇 때문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울러 자기 자신에 대한 변명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보다는 그로 인한 자기 변화가 우선해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천주교에서 캠페인으로 벌이던 '내 탓이요'란 문구가 떠오른다.

자신을 먼저 돌이켜보며 마음을 닦는 수양의 자세로 노력하는 것만이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빈부를 막론하고 누구나 건강하고 오래 살기를 희망한다. 그런 희망을 갖고 있기에 사람들은 병원에서 아픈 부위를 찾아 조기치료를 하려고 한다.

우리가 의료기관에서 내시경 검사를 하는 이유도 정확한 병을 겉으로는 판단을 할 수 없어 정밀 진단을 하기 위한 한 방법이다.

따라서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스스로에 대해 서로 정확하고 정밀한 진단이 필요한 지도 모른다.

특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이웃에 대한 자신의 교만한 태도의 생활이 과연 올바르기만 한지를 정밀하게 검사를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더 더욱 가관인 것은 상대방의 허물은 내시경을 통해 보듯 속속들이 다 쳐다보고 헐뜯으면서도 정녕 자신의 잘못된 내부는 무조건적 관용을 베풀려고 한다는 것이다.

성 프랜시스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금식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며칠간 계속되는 금식이 너무 힘든 탓인지 제자 중 하나가 주방에서 몰래 죽을 훔쳐먹은 사실이 주방장에게 포착되고 말았다.

주방장은 즉시 이 같은 사실을 동료들에게 알리는 한편, 성 프랜시스에게 달려가 이런 제자는 쫓아내야 한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떠들었고, 다른 동료들 역시 이구동성으로 한 목소리를 내며 범인을 밝혀야 한다고 큰 목소리를 냈다.

이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성 프랜시스는 주방장에게 주방에 가서 남은 죽을 가져오도록 지시했다. 그리고는 "다 함께 나누어 먹자"며 먼저 한 숟가락을 떠먹으려 했다.

돌발적인 그의 행동을 보게 된 제자들이 기겁을 하며 지금은 금식기간이라고 말리려하자 그는 "금식으로 인해 어찌 형제를 정죄에 빠지게 하겠는가? 이렇게 해서 서로의 허물을 보지 않는 것이 올바른 금식이다"하고는 죽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허물을 덮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베푸신 사랑의 본질이다.

완전하지 않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허물을 일일이 다 따진다면 한 사람도 온전한 사람이 있을 수 없다.

누구든 마찬가지이지만 남의 허물을 보는 순간 정죄의 마음이 들고, 이로 인해 자신에게도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정죄의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는 하나님의 포근한 마음을 닮아 남의 허물을 자신의 허물로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허물을 덮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위대한 사람일 것이 분명하다.

남이 나를 탓할 때 노하기 전 우선 자신을 돌이켜 보며, 문제를 먼저 찾아 고치는 습관을 갖도록 하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인간 관계가 건강해 질 수 있다.

캠퍼스에 나뒹구는 낙엽 위로 또 다른 낙엽이 바람에 날려 눈처럼 내려 앉는다. 올해도 채 두 달이 남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가 맞이할 내일의 내 모습을 조명해보자.

언젠가는 창 밖 낙엽처럼 퇴색되어 땅에 떨어져 묻힐 내 삶의 마지막 모습을 그려보며, 어떤 삶이 진정 소중한 삶인지를 알아야 한다.

남을 탓하기 전 내 허물을 먼저보고 고칠 때 비로소 이 땅에 아름다운 사랑의 꽃을 피울 수 있다.

[시인.수필가.AIU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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