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초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대통령전용기도 없었던 시절 눈물을 뿌리며 돈을 빌리러 왔던, 서독 광부로, 간호사로 외롭고 고단한 삶을 이어가야만 했던 이민 1세대의 땀과 피와 한(恨)의 눈물이 배어 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우리의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우리 축구팀이 세계무대 데뷔 반세기만에 월드컵 원정경기에서 "한국을 6:0으로 이겨 한국에 수치심을 안겨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토고팀을 2:1로 격파하면서 16강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지난 2002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진출을 놓고 그 동안 홈그라운드와 편파판정 덕분이라는 오명을 이번 기회에 깨끗이 씻고 아시아 축구의 맹주국임을 확실하게 입증을 한 셈이 되었다.

한때 초자연적 존재를 숭상하면서 제사 때 산 짐승을 잡아 그 피(血)를 바치고 밤마다 북소리에 맞춰 격렬한 춤을 추며 백인을 저주하는 악마의 주술을 외워대는 '부두교'를 국교로 삼았던 토고가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부두교를 비밀병기로 들고 나왔지만, 학연, 지연, 지역, 종교, 남녀를 불문하고 온통 시뻘건 T-셔츠를 입고 '오! 대한민국 짝짝짝' 하는 4천만 붉은 악마에게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성당에서는 생맥주와 안주를 마련, 축제 분위기를 북돋아주고, 교회에서는 신도들이 모여 응원전을 벌였고, 조계사와 봉은사에도 수백명의 신도들이 모여 태극전사들의 승리를 기원했다.

또 대학도, 학원도, 공장들까지도 한국팀의 경기 때문에 수업도, 일손도 모두 놓았으며, 지구촌 곳곳마다 교민들까지 거리로 나와 한마음이 되어 응원을 했다.

심지어는 교도소, 구치소 재소자들까지 응원에 열을 올리며 한국팀의 우승을 기원하는 열띤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한국이라고 하면 분단과 전쟁, 폭력시위가 난무하는 나라라는 것을 먼저 떠올리는 유럽과 미국 등 전세계가 붉은 악마의 위력에 또 한번 놀라는 이변을 낳았다.

그 붉은 악마의 마력이 부두교의 주술적 힘으로 16강에 진출한다고 떠들어대던 토고와의 첫 경기에서 승리를 안겨주었다.

문득 토고 주술사들이 저주의 주문을 외우며 한국 선수들의 모습을 마구 찔러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몰입만 요구하면서도 배신을 결코 용서치 않는다는 스포츠 제전인 월드컵. 오죽하면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축구를 "유일하게 무신론자가 없는 종교"라고 했는지 이해될 것 같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최근 월드컵 피난처로 사모아, 알래스카, 스위스, 북한 등 네 곳을 꼽았는데 특히 북한의 경우 중계가 없는 '월드컵 청정구역'이란 게 그 이유다.

특별히 축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첫 승을 거둔 우리 팀이 국민적 숙원인 16강까지 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 똑같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마치 축구(월드컵) 하나만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필자의 눈에 비춰진다는 것이다.

거리에도, 식당에도, TV에서도 온통 붉은 색 투성이다. TV화면에 붉은 티를 입고 나와 노래를 부르는 가수와 춤을 추고 있는 댄서들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 된다.

특히 3개 방송사가 실속없는 월드컵 특집을 앞다퉈 방영하고 심지어는 똑같은 내용을 각 사가 동시에 중계하는 것을 보면서 방송사들이 이 참에 광고료를 한 몫 챙겨보자는 속셈을 읽으면서 소비자인 우리가 또 더 큰 부담을 안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올 거리응원에는 꼭지점 댄스, 도깨비 뿔이 등장, 재미를 더해주기도 했지만, 상업주의로 변질된 붉은 악마, 오 필승 코리아가 도배되다 보니 눈이 피곤하고 심지어는 머리가 깨어지는 느낌까지 온다.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번 경기를 보면서 다수의 국민은 우리의 저력을 재확인했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정치인들은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국민이 힘을 합하면 어떤 일이든 못해낼 일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면 한다.

아울러 지도자의 역할이 한 조직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이번 토고 축구팀을 통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 같다.

또 붉은 악마들의 일치된 한마음을 보면서 갈등과 분열보다는 화합과 하나됨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깨닫고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늦었지만 이제 피로와 부상을 딛고 조국과 국민에게 화끈한 역전승을 선사한 한국 선수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모쪼록 토고의 악마의 주술을 짓누른 4800만 국민의 붉은 함성이 우리 모두를 하나되게 하여 남북으로 분단된 아름다운 내 조국을 지키는 단합의 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민심은 단순하고 정직하다. 결코 축구가 삶의 전부는 아니다.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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