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을 쓰기 위해 펜을 잡으면서 오늘은 무엇을 주제로 원고를 메꿔 나갈까 생각을 하다 문득 원고지를 잡고 있는 왼손을 보면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손가락들이 저마다 잘났다고 으스대는 몰골이 떠오른 것이다.

왼쪽의 다섯 손가락이 모두 제가 잘나고 최고라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선 ‘엄지’가 먼저 말하기를 사람들이 항상 제일을 나타낼 때마다 엄지를 내세우는 것을 보면 자기가 최고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검지’는 어떤 방향을 설정하거나 총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자기만이 유일한 최고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거드름을 핀다.

‘엄지’와 ‘검지’의 이야기를 듣던 ‘중지’가 입을 삐죽이며 손가락 중에 제일 키가 크고 또 좌우로 두 개의 손가락을 거느리고 있으니 최고로 높은 손가락은 자기뿐이라고 우긴다.

그러자 넷째 손가락인 ‘애지’가 가소롭다는 듯이 너희들보다 자신은 완전히 다른 대우를 받는다며 그 이유로 항상 인간들이 경사스러운 날이거나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자기 손가락에 금·은 보석을 끼우기 때문에 제일 귀하고 높다고 우쭐댄다.

네 개의 손가락이 저마다 잘 났다고 뽐내며 떠들어대는 동안 조용히 눈을 감고 듣고 있던 ‘약지’ 가 드디어 침묵을 깨고 한마디를 한다.

말인 즉 중요한 일이 있거나 연인들이 만날 때마다 자기를 걸어 사실을 확인하고 또 약속을 하기 때문에 최고는 당연히 자신이라고 하며 특히 신에게 기도를 하며 빌 경우에도 항상 제일 앞에 서있는 손가락이 바로 약지이기 때문에 자신만이 최고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억지소리를 한다.

과연 그 손가락들이 말하는 것이 옳고 또 최고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점을 필자 스스로에게 반문을 해 보았다.

물론 손가락들이 주장하는 각자의 말이 어떻게 보면 옳을 수도 있다. 각기 저마다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또 필요로 하는 곳이 분명 있다.

가려운 귓속을 ‘엄지’로 후빌 수는 없다. 그러나 ‘장지’는 가능하다.

이처럼 최고에 앞서 적재적소에 따라 자신의 역할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렇게 각자의 역할이 주어졌다 해도 손가락 하나하나가 각기 따로따로 행동을 취한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손등을 중심으로 공동화가 되지 않고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 잘 났다고 떠들어대는 손가락 하나에게 물 컵을 들어보라고 하자, 아니 얇은 종이 한 장을 들어보라고 해보자. 아무리 잘난 손가락이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물 컵을 들거나 종이를 잡을 수는 없다.

결국은 각자가 뛰어난 기능을 갖고 있다 해도 서로가 힘을 합하지 않고는 어떤 일이라도 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역으로 그 손가락 하나하나가 자기의 역할을 하지 않고 다른 손가락만을 의지하려고 든다면 그 또한 일을 감당 할 수 없을뿐더러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없다. 따라서 모두가 다 각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비로소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남이 하니까 나는 빠진다거나, 남들보다 내가 제일 최고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시계의 톱니처럼 서로가 얽히고 설켜 돌아가야 한다.

최근에 기관이나 단체 등에서 재직하고 있는 몇몇 지우들이 그간의 업적을 인정받아 정부포상 등 표창을 받은 바 있다.

당연히 영예의 수상자들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은 꺼림직 한 기분이 든다.

그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쉽게 속단할 일은 아니지만 수상자들이 필자를 비롯한 대다수 주위 사람들이 의아심을 품을 만큼 인격적으로나 능력 면에서 포상을 받을만한 인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상을 타는 세상이 되다보니 상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다.

이런 일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정부 포상이나 수상자 대부분을 보면 실세이거나 수완 좋은 사람들이 능률과는 상관없이 상을 받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에서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다수 수상자들이 능력으로 평가되기보다는 소위 끗발이나 심사위원 및 추천자들과의 친분관계에서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는 자기만이 잘났다며 포상을 받기 위해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정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받지 못하고 그 공적이 묻 히고 마는 것이다.

특히 산업체의 경우 열심히 충성스럽게 일한 손가락은 제외된 채 엉뚱한 손등이 받는 등 포상을 받은 사람이 계속해서 훈·포장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 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심지어는 범법자임에도 불구, 자리를 이용해 포상을 받으려다 과거사가 들통이 나 망신을 당한 경우도 보았다.

어떤 지우는 문단에 데뷔한지 2년 남짓한데 얼마 전 문학단체 행사에서 ‘문학상 대상’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그 상을 타기 위해 도서기금 명목으로 세 자리 숫자의 돈을 썼다고 한다.

정부포상이든 문학상이든 공적을 기리고 위로차원에서 주는 ‘상’(償) 의 의미가 점차 퇴색되어 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상을 타고도 떳떳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일부분을 제외하고 배경이나 돈이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업적이 있어도 상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의 평가에도 문제가 있다. 상이 인생의 전부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도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반면 각자 개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없다.

모든 톱니바퀴가 맞물려 시계의 초침·분침을 움직이게 하듯 우리도 저마다 타고난 기능을 발휘, 열심히 맡은 일을 하며 내 하나가 사회의 역군으로 그 존재 가치를 스스로 인정할 때 비로소 나라가 부강해지고 밝고 맑은 마음으로 사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자만심을 갖기보다 나도 이 사회에 동참하는 한 일원이란 겸손에 마음을 갖자.

논설위원 안호원(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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