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와 블랙 유머가 돋보이는 필란드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Arto Paasilinna)의 장편소설 <기발한 자살여행>(솔출판사)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2004년 ‘유럽의 작가상’ 수상작인 이 책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지만 20개 언어로 번역될 만큼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작품이다.

유럽에서는 이 책의 영향으로 ‘즐거운 자살 희망자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21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유명세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은 확실한 죽음을 눈앞에 둔 자살 희망자들이 삶에 대한 욕구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냉소와 풍자가 섞인 저자 특유의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자살자들이 토해내는 현실, 삶의 우울한 이야기들과 우스꽝스런 사건들을 절묘하게 조화시킴으로써, 심오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유머러스하고 경쾌하게 풀어냈다.

모든 희망을 버리고 오직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극단적인 인물들이 벌이는 일련의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블랙 유머를 가미해가며 한 판의 익살스런 풍자극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여러 번의 파산 끝에 인생마저 파산 난 세탁소 사장, 사랑하는 아내를 암으로 잃어버린 대령, 이혼 이후 새로운 사랑도 정감 어린 소통도 포기해버린 시민대학 부학장, 방탕한 삶 끝에 신에 귀의했으나 은총의 신호가 오지 않아 자살을 결심했다는 측량기사,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몸도 마음도 피투성이가 된 주부, 항해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산 배 때문에 미쳐버린 육지의 선장, 밍크 서커스단을 꿈꾸다 부인을 잃고 빚더미에 앉은 서커스단장 등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삶에 매여 있는 독자로 하여금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

이 풍자극 속에서 파실린나는 간결하고 솔직하고 직선적인 문체로 경쾌하게 핵심을 찌르며 인간의 욕망과 고통, 삶의 진실을 담아낸다.

자살자들이 겪은 부조리한 현실 고백을 통해 현대 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부조리함을 꼬집고 종교, 군대, 관료주의 등을 냉소하면서 자살을 권하는 현대 사회제도의 모순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와 함께 극단의 선택을 야기하는 인간의 욕망을 다루지만, 그는 전혀 즐겁지 않은 주제 속에 유머와 함께 삶의 기쁨을 담아낸다.

우울하고 절망스런 사건들 사이에서도 밝고 쾌활한 터치를 잊지 않으며, 유머를 통해 자살자들 그리고 독자의 힘겨운 인생 여정을 치유하고 있다.

온갖 악한 심성과 나약함, 광기를 가졌음에도 행복해야 할, 인간을 위한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그의 익살스런 풍자극 뒤에는 이렇게 휴머니즘이 숨어 있다.

<기발한 자살 여행>이 핀란드를 배경으로 전형적인 핀란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독창적인 인물들과 독특한 서술방식,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이야기 속에 그가 담아내는 경쾌한 사회비판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통찰, 그리고 진정한 휴머니즘으로 풀이된다.

블랙 유머의 대가인 ‘작가의 술수’에 빠져 키득거리며 자살 여행단의 뒤를 쫓다 보면, 어느새 현실을 이해하는 신선한 시각과 함께 상처 입은 자신과 타인을 위로할 수 있는 여유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핀란드를 배경으로 씌어졌지만, OECD 30개국 가운데 자살률 1위인 ‘우울한 나라’ 한국에 보다 절실한 소설일지도 모른다.

김인순 옮김. 348쪽.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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