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TV방송사가 어떤 주제를 놓고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시민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던 중에 한 동양인이 낡은 승복을 입고 있는 스님의 모습이 하도 신기해 승복을 가리키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What's the most disgusting thing?(가장 구역질나는 게 뭐냐?)" 이에 그 스님은 Who are you? 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진행자는 이름을 묻는 줄 알고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그래도 스님은 계속해서 "Who are you?"라고 물었고, 그 사람은 여전히 우답(愚答)을 계속했다. 그러자 스님은 "너라는 존재의 본질이 무엇이냐"라고 다시 묻자 그 사람의 대답은 당연히 "I don't know"였다.

스님 한 분이 어느 날 여행객들과 함께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길에 배 안에서 겪은 에피소드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Who are you?"라는 질문에 대한 깊은 뜻은 우리의 삶이 미래나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이 순간,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불행해지기를 싫어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인과(因果)로 이루어진 세상에 사는 우리는 때로는 행복을 느끼며 만족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뜻하지 않은 불행을 맞이하며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행복할 때는 아무것도 모르며 지내다가도 불행을 당하게 되면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하며 실망과 좌절감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불행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한 마음은 고통만 더 가중시킬 뿐이다. 용기가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다가온 불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깊이 관조하여 대처할 뿐이다.

그로 인해 다른 번뇌를 일으켜 고통을 더하지 않는다. 원인없이 생기는 불행은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불행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생의 목적을, 또 "나는 이겨낼 수 있다"고 하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 같은 마음이 될 때 불행은 훨씬 가볍게 경험되고 그 불행을 딛고 일어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래 전 지금은 대학생이 된 둘째딸이 갑자기 심장이 뛰고 오한을 느끼며 자꾸 몽롱한 정신으로 헛소리를 해 병원 응급실로 간 적이 있다.

간호사와 의사들이 분주히 왔다갔다하고 피를 뽑고 소변검사를 하는 가운데 축 처진 채 고통스러워하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며 얼마나 애간장이 타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 주저앉을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병명을 정확히 파악치 못한 채 일단 다음날 아침 일찍 귀가는 했지만 응급실에서 침대조차 없이 의자에 누워있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또 한 가족이 이로 인해 함께 하며 가족의 소중함과 따뜻한 정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하게 된 것을 감사드린다.

이런 생각에서 사람은 항시 잠시의 행복에 교만하지 말고 조그마한 불행이 닥쳐와도 비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적이 있다.

어차피 세상을 살아가면서 맞이해야 할 행복과 불행이라면 좋을 때는 오히려 겸손해하며 남을 생각하고 어렵고 힘들때는 지난 작은 행복이라도 떠올리며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해야만 할 것 같다.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삶이다. 주어진 인연속에서 최상의 삶을 구현하며 바르게 나아가는 삶은 진정 아름답고 성숙한 삶일 것이다.


논설위원 안호원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 서울정보기능대학겸임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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