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는 간혹 자신이 왜 사는지 또 무엇 때문에 사는지를 반문해보는 때가 있다.

대체로 이런 생각은 편할 때보다는 사는 일이 힘들어질 때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힘든 것 자체보다는 산다는 그 의미가 분명치 않다는데 있다.

모든 인간의 행동에는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많은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행동을 취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된 욕구가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생명을 유지하고 지속하려고 하는 생존의 욕구요, 또 다른 하나는 그저 생명을 유지하고 지속하기보다는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행복의 욕구다.

살려고 하는 것이 생명의 본능이라면 행복 추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삶의 본질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로 행복을 추구하고 불행으로부터 해방되려는 우리의 욕망은 성생활에서 자살에 이르기까지 우리 행동의 대부분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이같이 행복을 추구하고 갈망하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막연하게 자신이 행복하게 되길 바랄 뿐, 행복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 채 세상을 방황하다 생을 마감하게된다. 그런 우리는 불행하게도 눈에 보이는 진정한 행복은 뒤로하고 아직도 육체적 쾌락과 물질적 행복을 측정하느라 여념이 없다

필자의 입장에서 행복의 정의를 내린다면 행복이란 본질적으로 어떤 물질이나 권력 또는 명예같은 것을 소유하고 즐기는데 있다기보다 각자의 잠재적 가능성을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 발휘하는 삶의 방식에 대하여 증여되는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불가에서 보면 유무념(有無念)이란 글이 있다. 이는 어떤 일을 할 때 마음을 챙기고 행동하면 “유념”이요 방심한 채 하면 “무념”에 속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힘들고 바쁘더라도 일상속 마음을 멈추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가만히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자. 거울에 비친 “못난 나”나 “잘난 나”나 모두 따지고 보면 사실 그 보여지는 형상은 “나”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필자도 잘난 나를 내세울 땐 분별심이 생기고 못난 나를 부정하고 싶을 때는 나도 모르게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

문득 이 시간 원불교의 법사가 마음이 어지러운 상황을 접했을 때는 우선 마음의 작용을 ‘정지’ 하라고 강조했던 ‘마음을 다스리는 법’ 이 생각난다.

그리고 자기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관찰하되 옳다, 그르다, 잘못이다, 아니다를 판별하지 말고 무심히 바라보라고도 했다.

이처럼 원불교에서는 정해진 형식없이 일상생활속에서 마음을 챙기는 무시선(無時禪)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선과 악으로 구분하면 때론 상대가 한없이 미울 수도 있겠지만 이를 습성으로 보면 그 습성만 고치면 된다는 아량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악한 마귀도 그 이전에는 천사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선. 악은 환경에 따라 변화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막연히 화를 내지 말아야지 하고 무조건 참으려고 한다면 어떤 극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며 갈등을 느낄 수가 있다.

화(禍)를 참기 위해서는 평소 부단한 노력과 함께 인내의 훈련을 통해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 늘 듣는 말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바꾸면 생활이 바뀔 수가 있다. 이는 특별한 비법도 아니다. 마음먹기에 달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갖가지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술로 그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다보니 술이 깰 때쯤이면 더욱 허망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는 자연을 통해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 마음이 울적하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야심한 밤에 88고속도로를 질주하며 한강물을 바라본다.

달과 별을 삼킨 채 묵묵히 흐르는 한강물을 따라 달리다보면 모든 것이 다 풀리며 마음이 평온해진다. 때로는 거리를 걷거나 글을 쓰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강이란 가장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길이기도 하다.

늘 머물지 못하고 출렁대며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인생을 배워야 한다. 정치는 물론 경제사정까지 어려워진 요즘 세상을 사노라면 답답한 때가 어디 한 두 번이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으로 살맛이 없을 것이다

그때마다 속상한 마음을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에 흘려보내며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나는 행복하고 운 또한 좋은 놈이여! 정말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이여!”라고 말이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그저 강물을 바라보며 무조건 달려보는 거다. 그리고 축축하고 어두운 마음일랑 모두 강물에 던져버리고 말끔히 지워버리는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모가 출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에게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고개가 숙여지도록 만드는 아름다운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속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처럼 우리도 그런 마음을 닮은 삶을 사는 사람이 되자. 어떤 일에든 '나'라는 존재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안다면 굳이 남을 원망하거나 탓을 하며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논설위원 안호원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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