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문화계가 좌파로 기울어 있다 보니, 그동안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담론은 좌파들이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여론의 장악에서 민주당에게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지난해 상영된 <서울의 봄>이 1300만 관객 동원이라는 경이적인 흥행을 이룩하면서 민주당은 그 여세를 몰아 4.10 총선에서도 민주당에게 유리할 것이라며 승리감에 도취되었는데, 뜻하지 않게 복병을 만나면서 민주당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민주당을 당혹하게 만든 건 바로 이승만 대통령의 삶을 다룬 영화 <건국전쟁>이다.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국부(國父) ‘이승만’의 영혼(靈魂)이 지금 지키고 있다. 영화 <건국전쟁>이 개봉 된 이래 지난 14일 현재 누적 관객 수 38만에 박스오피스 2위, 한국영화 1위를 돌파했다. 놀라운 기세다. 지난 1일 개봉한 건국전쟁은 김덕영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로, 이 전(前)대통령의 사진과 영상 자료, 그의 며느리 조혜자 여사를 포함한 주변 인물과 전문가 인터뷰 등으로 구성됐다.

앞서 좌파 진영과 민주당 지지 세력들은 총선을 대비하듯 <서울의 봄>을 만들고 개봉했다. ‘전두광’이란 주인공 이름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전두환 대통령을 희화한다. 군 내부의 갈등, 쿠데타와 같은 대중에게 부정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군사 반란 세력의 연장선에 현(現) 윤석열 정부를 위치시킨다. 케케묵은 역사 심판 논리를 통해 보수 세력에게 치명타를 입히겠다는 총선 전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영화 <건국전쟁>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 ‘이승만’의 부활이 놀라운 것은 국민들이 70년 동안 모르고 있던 진실에 눈을 뜨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누가 애국자이고, 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했는지, 그 진짜 주인공의 모습에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 “이 영화 하나로 총선 판이 뒤집어질 수 있다.” 영화 <건국전쟁>을 본 많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게는 이 대통령에 대한 오해도 풀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건국전쟁> 보면서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생각난다. 프랑스 68혁명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969년 9월, <슬픔과 동정 Le chagrin et la pitie>이라는 제목으로 등장한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프랑스 사회를 흔들어 놓는 등 세상을 바꿔놓았다. 원래 TV방송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지만, 당시 얼마나 내용이 충격적이었는지 방송사는 방송을 취소했다. ‘나치 부역’에 관한 감독의 새로운 시선이 프랑스 국민들이 받아들이기엔 시기상조라 판단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감독인 ‘마르셀 오퓔스’ 가 선택한 곳은 극장이었다. ‘점령 하 어느 프랑스 도시의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느껴지듯이 이 영화는 나치 점령 아래 프랑스의 도시에서 벌어졌던 저항과 부역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들고 나왔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아주 솔직하게 ‘나치 부역’의 진실에 대해 증언한다. 당시 프랑스 국민 대다수가 나치에 부역하거나 심정적으로 동조했다는 불편한 사실을 여과 없이 등장시킨 것이다. 영화 속에서 봤던 레지스탕스 신화는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결론이다. 마치 위안부, 독립군 무장투쟁 등으로 상징되는 ‘반일’ 레지스탕스 신화에 열광하는 대한민국 사회와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비시 정부에 환호하던 나치 부역자들의 얼굴들이 얼마 후 반 나치, 애국주의로 상징되는 ‘드골’에 환호하는 동일한 인물임을 그대로 여과 없이 드러냈다. 부역자나 저항자나 특별히 다른 존재들이 아니라는 솔직한 고백이다.

그런 현상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을 겪는 과정에서 실제로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일어났다. 친일파와 독립운동이라는 이분법적 틀을 벗어나 인간의 본성으로 이해하려는 점에서 우리의 현실과 다르다. 그래서 역사 청산이란 관점이 아니라, 그 역사 청산을 명목으로 프랑스 사회가 보여준 잔인함과 무모함을 고발한 것이다. 역사 청산이라는 구호가 정치권에 흘러들어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거부했다. 여전히 해묵은 ‘친일파 청산’을 부르짖고 ‘반일’ 구호가 난무하는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의미심장하게 되돌아보게 되는 시점이다. 적어도 프랑스에선 영화 <슬픔과 동정> 이후에 ‘반 나치 청산’의 구호는 사라졌다. 우리처럼 일본을 정부가 나서서 반국가적 개념으로 형상화시킨 무모함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변화의 시작에 마르셀 오퓔스 감독의 <슬픔과 동정>이란 작품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실에 기초한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꾸었다. ‘이승만을 죽여야 살 수 있었던 자들’ 김덕영 감독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지금까지 온갖 비난과 왜곡의 중심에 섰던 이승만에 관한 영화를 만들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은 ‘사실’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사실’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고 말한다. ‘미제의 앞잡이, 친일파 세력들이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라는 논리 역시 단골로 등장하는 이승만 비판이다. 그것은 좌파세력들이 이승만을 죽이고 김구를 띄워야 했던 이유와 연결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이었던 이인영은 ‘우리의 국부는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다’라면서 국회에 나와 증언한 바 있다. 평생 ‘이승만 죽이기’에 앞장선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연히 “선구자, 선각자, 예언자, 애국자, 불세출의 영웅, 위인”이라고 불러야 할 지도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승만은 “독재자, 미국의 앞잡이, 친일파, 양민 학살의 주범, 부정선거 방조자, 하와이망명자, 막대한 비자금 조성 자, 플레이보이” 등 악담들이 따라다녔다. ‘이승만’이란 존재를 악마 화 시키고, ‘이승만’이란 개념을 더럽히는 것이야말로 북의 입장에선 어느 시기에나 절실한 이념적 과제였다. 그것 없이 자신들이 늘 한반도 역사에서 우위에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70여 년 동안 ‘이승만’이 철저하게 대한민국 역사에서 비난과 왜곡의 중심이 되어야 했던 비극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그 거짓의 역사를 알면서도 침묵했다.

이승만의 복원은 그래서 대한민국 사회에 많은 의미를 갖는다.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뛰어넘어 진정 선진화된 사회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이승만에 대한 저주는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숙제 같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김 감독의 말처럼 ‘사실’의 복원이다. 이승만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선 프랑스 사회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겸허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한국과 같이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사회에서 진정한 해결책은 오로지 ‘사실’로 복귀하는 것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걸 통해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똥은 비단보에 싸서 하와이로 보냈다.’며 이승만을 조롱했던 시인 구상과 동아일보 역시 그 비난이 지나쳤음을 이제라도 사과할 용기는 없는가? 국가나 사회 역시 발전할수록 새로운 가치로 변화해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사회 공동체의 진정한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영화 <건국전쟁>이 그 작은 씨앗이 되길 희망한다. 때론 그렇게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건국전쟁>관객 수를 보면 이번 4.10 총선이 보인다. 필자는 그걸 믿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건국 전쟁>을 관람,‘이승만’의 ‘사실’을 바로 알았으면 한다.

[호 심송, 한국 열린 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특임교수, 미. Creative University 특임교수, 전, YTN – 저널 편집위원 & 의학전문대기자, 전, 수도방위사령부 장병고충처리 상담 관(군목), 현, 법무부 청소년선도위원회 상담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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