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하나를 택함으로써 바로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들 말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축복이다. 선택이 고통스러운 것은 하나를 택함보다는 또 하나를 버려야 하는 아쉬움과 상실감이 언제나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것을 선택하던 그 결과는 또다시 후회와 미련을 품은 고통의 단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결정을 향한 통과의례에는 갈등을 품은 선택의 고통스러움이 언제나 잠재해 있다. 우리 삶은 온통 이런 선택의 순간들로 채워져 있어, 크건 작건 어느 하나를 택할지 갈등하는 요소들이 우리의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선택이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가 이것저것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따져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쩜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까 우리의 선택이 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그 근거가 놀랍게도 명백한 논리나 이성적 사고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먼 어떤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긴 시간 갈등하며 고민하던 갈림길에서 막상 결정은 순간적이며 즉흥적으로 진행된다. 그 후 “그 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 했어”라는 다행스러운 뿌듯함은 거의 드문 경우다. 오히려 “그 때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지? 제 정신이 아니었나 봐”라는 후회와 아쉬움을 마음속에 눌러 담는다. 그렇게 선택과 후회는 한 몸의 두 얼굴처럼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역사가들은 말한다. “역사에 가정(假定)이란 없다”고 그래서 ”그 때 그랬더라면“ 혹은 ”그 시간이 다시 온다면“ 은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한굽이 돌아 마주하는 여러 갈래 길을 두고 어떤 길로 들어설지를 선택한 결과는 오래도록 아쉬움으로 곱씹기도 한다.

우리는 때로 분리할 수 없는 것들을 분리해 놓고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속앓이를 할 때도 있다. 동전의 앞뒤는 누가 봐도 확연히 다른 두면이지만, 이 두면은 따로 분리될 수도 없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동전의 어느 한 면만 가져가라는 선택을 강요할 수 없다. 어쩜 우리가 겪는 많은 갈등의 순간들, 또한 이런 양면을 가진 동전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강서구청 장 보궐 선거 이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희비(喜悲)가 엇갈리고 있다. 내년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최대 격전지인 수도권의 민심을 가늠할 ‘바로미터’로 평가된 이번 보궐선거에서 민심이 여당의 ‘거야 견제론’보다 야당의 ‘정권 심판 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패배 예측은 강서구청 공무원들 사이에서 인심을 확연히 잃었다는 말들이 떠돌면서다. 소속 공무원들에게조차 배척받는데 선출이 가능하겠는가. 이번 선거는 강서구청장이었던 김 후보가 지난 5월 대법원에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이 확정됨에 따라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하지만, 선택을 잘못했다. 특히 민주당이 자당 소속 시장들 때문에 치러진 2021년 4·7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꼼수 공천했다가 패한 전례를 국민의힘이 답습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미 김태우 후보의 패배는 예견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상황을 보면 국민의힘이 참패했던 2020년 4.15 총선을 떠올리게 된다. 2020년 총선 때 그때가 사실 굉장히 극단적인 총선 아니었나 생각된다. 여당이 압승(300석 중 과반 이상인 163석 차지)을 했고, 그 당시에 국민의힘(84석 확보)은 그냥 전멸하다시피 했다. 국민의힘이 정말 빌빌거릴 때의 그때 그 상황으로, 이준석 전 대표의 말에 따르면 ‘리셋’이 된 것이다. 또한 야당은 뭉치고 한 목소리를 내는 데 반해 여당의원들은 조용하기만 하다. 당이 무너져도 오직 공천에만 마음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태로라면 내년 총선 결과도 강 건너 불 보듯 뻔하다. 거듭나지 않고는 야당의 공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번 보선에서 여권의 백일몽이 얼마나 허망한가 하는 것들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지만, 한마디로 이번 보궐선거에서 김태우 공천은 아주 잘못 꿴 단추다. 애초에 대법원에서 최종선고 2개월 후 사면 복권시켜 공천한 것 자체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누가보아도 비상식적이다. 대통령의 판단을 왜곡의 늪에 빠트린 여권 내부의 보좌진들의 무능과 무책임이 두드러진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임명직 당직자들 전원이 사퇴했다. 이 같은 임명직 당직자들의 일괄 사임은, 지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3일 만에 나온 총사퇴 결정으로 사실상 내년 4월 총선의 전초전 성격의 서울 강서구청 장 보궐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 자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이후 여당의 모습이다 참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논의할 국민의힘 의원총회가 선거 나흘 뒤에야 열렸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차분하고 지혜롭게 내실 있는 변화 추진”이란 입장을 내놓은 지 이틀 뒤다. 엄중한 국민의 심판을 받고도 대통령의 지침이 있고서야 움직이는 것은 정상적인 여당으로 보여 지지 않는다. 새로운 인재라고 임명했지만 결국 친윤계 인사를 선택했다. 결국 개혁 인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게 국민의힘 현실이라면 어떻게 6개월 뒤 총선을 제대로 치를지 걱정이 된다. 대통령은 나름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의 깃발을 들어 올리련만, 그 개혁에 몸을 던지는 여당 의원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위기에 처했는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매달리지도 않는다. 국민의힘이 집권당답지 않은 이런 책임감과 역량으로 대통령 눈치만 본다면 과연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그리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판이 아닐 수 없다.

선거 직후 국민의힘 안팎에선 수도권 등 표심을 둘러싼 불안감과 함께, 지도부 책임론과 쇄신론이 계속 불거져왔다. 임명직 지도부 사퇴 이후, 김기현 대표 등 선출직 최고위원단은 사퇴 없이 당 수습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작 책임을 감수해야할 김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선출직 최고위원 등은 자리를 지켜, 당내에서 조차 꼬리자르기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어쩜, 총선 전 김기현 대표가 어느 정도 당을 수습한 후 불출마 선언을 할 것이란 말도 흘러나온다. 국민의힘의 패배 원인을 꼽는다면 “일단 명분이 부재했고, 귀책사유가 자신들에게 있는데 후보를 냈고, 그것도 또 당사자를 내보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게 뭐냐, 유권자들을 뭐로 보는 거냐. 강서주민들을 뭘로 보냐?”라는 나쁜 인식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안타까운 것은 인재 빈곤이다. 곳곳에 강성 인사 등 옛날 인사들을 기용을 해서 ‘민주당과 한판 전쟁을 치르겠다’ 식의 개념을 갖고 있는데, 이게 국민들로부터 굉장히 반감을 사게 한 것 같다. 애초에 (강서구)지형이 불리한 지역이란 것을 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벽을 깨지 못한 것이다. 또 하나는 선거운동 방식이 너무 후졌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문제는 ‘내가 대통령 끈이 있고 대통령과 직통 전화가 있다’는 투로 자신의 위상을 강조하다보니,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반감의 선거가 된 것으로 보여 진다. 윤 대통령을 끌고 들어온 게 오히려 표의 잠식요인이 된 것 같다. 결국 큰 차이로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결과를 가지고 마치 여권에 큰일이 난 것처럼 법석을 떠는 것도 또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오히려 보선참패는 여권에게 대단히 좋은 기회를 주었다고 본다. 만약 이번 보선 없이 그대로 총선으로 직행했더라면 어찌할 뻔했을까? 그래서 조금 과장을 떨고 말하자면, 여당의 이번 보선패배는 하늘이 한국의 보수진영을 도우신 것이라고 믿고 싶다.

여권은 침울하게 가라앉을 하등의 필요가 없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창창하게 남아있고, 총선 때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 그러나 좀 달라져야 한다. 아니 많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달라져야할 이유 몇 가지를 감히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첫째, 인사정책에 허점이 많다. 왜 한참이나 철 지난 MB 정부 인사를 이 정부에서 중용 아니 거의 도배하듯이 쓰는가? 김행 같은 사람은 도저히 벗어나기 힘들어 보이는 의혹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내각과 대통령실의 인재등용의 방향에 관하여 전반적 점검을 대대적으로 했으면 한다. 둘째로, 지도자는 국민에게 미래를 향한 희망을 제시하는 ‘비져네어리(visionary)’가 되어야 한다. 국민에게 가장 쉽게 와 닿는 정책은 힘든 현실을 이겨나갈 수 있는 자신감과 희망을 안겨주는 것뿐이다. 과연 지금의 시대에서는 어떤 내용의 개혁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상상력을 발휘해보라. 그리고 지금 짜놓은 정책의 틀을 벗어나보라. 그러면 보석처럼 빛나는 것들이 눈앞에 널려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승리감에 잔득 취해있는 민주당 역시 텃밭 투표일이 낮았는데도 승리한 것은 보수층이 국민의힘 후보를 심판해서 그런 것이지 민주당 지지층의 열성적 참여 때문이 아니란 것을 알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승리하고도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기현 대표는 지난 3월 이래 7개월간 이런 부실한 여당을 이끌어 왔고, 이번 보선에서는 진두지휘했다. 그런데도 사퇴요구가 지나치다고 말할 것인가 환골탈태 없이 국민의힘이 국민 신뢰를 회복할 길은 없다. 다시 언급하지만,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기쁨이 될지, 후회와 슬픔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후회와 아쉬움은 어떤 것을 선택할지라도 그대로 남게 된다. 그래서 그 결정의 순간과 결과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다만 다시는 이 같은 잘못을 선택하지는 않겠다고 다짐을 할 뿐이다.

[호 심송, 한국 열린 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특임교수, 미. Creative University 특임교수, 전, YTN – 저널 편집위원 & 의학전문대기자, 전, 수도방위사령부 장병고충처리 상담 관(군목), 현, 법무부 청소년선도위원회 상담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

위원]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