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밤늦게 간혹 휴식을 취할 때면 선(善)이 악(惡)을 이기는 드라마를 즐겨보게 된다. 그러나 끝날 무렵까지 ‘악’이 설쳐대며 애간장을 태우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러나 결국 연약한 이들이 착하기도 하지만 유능하게 승리하며 끝난다. 정치드라마도 예외는 아니다. 권력으로 모든 것을 제압하지만, 결국 악인(나쁜 정치인)은 비참한 몰골로 생을 마감한다. 현실도 드라마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왜 ‘어둠의 세력들’ 이 이토록 수년 간 갈수록 활개를 치는 세상이 되었을까? 언제인가부터 인간다운 윤리를 고뇌하는 ‘배트맨’들은 진영 내부에서 총질하는 자이거나 언론 유명세에 목마른 자로 조롱을 받는다.

브라이언 클라스 교수는 “권력의 심리학”에서 오늘날 이 어둠의 세력을 마키아벨리즘, 나르시시즘, 소시오패스라는 3가지 요소로 요약한다.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하거나 병적인 자기애, 그리고 양심에 철판을 깔은 이들 말이다. 이 세 가지를 완벽하게 장착한 자로 누가 떠오르는가? 이 어둠의 유형들이 소셜 미디어 등의 광기어린 문법을 이용해 최근 줄기차게 성공하는 것 같은 현실이 자꾸만 필자를 넷플릭스 내 상상의 세계로 몰아가며 우울증에 빠지게 하고 있다. 클라스 교수에 따르면 이 같은 ‘어둠의 3요소’ 유형은 성공하고 나면 그 특유의 충동성, 오만, 극단적 위험 감수 경향으로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게 된다고 말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서로 어둠의 3요소를 사이좋게 공유하며 상부상조하는, 최소한의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불행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찌 보면 가장 드라마틱한 서사(敍事)를 가진 정치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두 살 때 험한 세상에 버려진 ‘소년공’ 출신이다. 가난과 공통, 눈물의 시간을 이겨내며 결국 변호사가 되었고 이어 성남 시장을 거쳐 경기도지사까지 했다. 공약 이행률 1위의 일 잘하는 도지사였다. 정권 교체론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지난 대선에서 윤삭열 후보를 24만 표차로 추격을 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비록 변방에서 출발한 ‘흙 수저’지만 실력자에게 굽실거리면서 권력의 곁불을 쬔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반사체가 아닌 발광체임을 쉴 새 없이 입증을 해 단숨에 중앙정치의 핵심 인물로 진입했다.

그런 이 대표가 대장동 사건 등으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를 맞았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 대표에게 기대를 걸었던 측근이라 일 컷는 ‘눈치 9단’ 개발업자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심지어는 “대장동 지분은 이재명의 선거, 노후 자금”이라는 폭탄발언까지 나왔다. 민주당사가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하고, 이 대표의 복심으로 불리는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비롯한 측근 정진상 등이 구속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은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해 몸이 수척해졌다. 이 대표가 집권했다면 모두 묻혀 질 사건들이다. 그러나 선거에 패배하면서 배신자들이 생겼다. 한 측근인사가 말했듯 “이 대표가 당연히 대통령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불법을 감행했던 것이다. 승자가 독식하는 세상의 염량세태(炎涼世態)다. 아직은 최종적 진실을 알 수 없지만, 이 대표는 “모든 것을 법정에서 당당하게 밝히겠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며, 그 특유의 전법으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앞서 이 대표는 불체포 특권을 누리기 위해 연고가 없는 인천 ‘계양구 을’로 출마, 배지를 달고 여의도에 입성한 바 있으며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이 있는 총괄선대위원장이었음에도 불구, 당 대표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명분 없는 생존형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우려했던 대로 이 대표 일가족이 지금 대장동 사건으로 계좌추적을 당하기도 했다. 검찰 발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날아오면 169석을 가진 민주당이 어떻게 할까? 아마 혼돈에 빠질 것이다.

한편 검찰은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에게 지난 28일 출석을 통보했으나, 이 대표는 소환 일정을 검찰과 협의해 추후 정한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본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1월 10일~12일 중 검찰 출석이 정해졌냐?’ 는 질문에 “가능한 시간을 확인 중”이라며 “제가 출석하기로 했으니 그렇게 알면 된다”라고 답했다. 이 대표는 “최소한의 유감 표명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내부의견도 무시하고 있다. 이 대표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당을 희생시키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피의자’ 야당 대표이다 보니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협치의 파트너로 인정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재명 리스크가 고스란히 국가 리스크가 된 것이다. 일부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오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정통민주당’이 결딴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개인적 비리 의혹으로 끝날 수도 있는 사안을 공당인 제1 야당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건으로 크게 비하하고 심지어는 국정감사기능까지도 마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와 관련된 검찰의 모든 수사를 정치보복과 정치탄압으로 규정하고 총궐기 태세다. 이처럼 민주당이 이 대표를 위한 ‘방탄 정당’을 자처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선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을 가리고 문 전 대통령으로 갈 수도 있는 화살의 방패막이로 이 대표를 표면에 앞세운 것 같다. 앞서 이 대표는 8월 전당대회에서 ‘꼼수 당헌 개정’을 통해 기소되더라도 스스로 구제 받을 수 있는 길을 텄다. 판결이 나기 전 까지는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민주당은 지금 거대 야당인 점을 악용해 윤석열 정부와 전면전(戰)을 벌임으로써 연이은 선거패배의 오점을 상쇄하려는 의도가 있다. 선거 패배에 대한 요인 분석 없이 ‘싸움 닭’을 대표로 전면에 내세운 게 그렇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정국 불안정을 부추겨 국정 동력을 상실하게 함으로써 1년 반 후에 있을 제22대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재차 확보하고 차기 대선에서 정권 재탈환을 노리는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좌파 정당으로서 정책 대안을 내세우기에는 한계에 다 달았다. 현명한 국민도 이제는 민주당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등을 돌리고 있다. 따라서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이재명 사법리스크’로 양심적 개혁 세력인 온건 민주당원들의 희망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주당은 지난 23일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 서울중앙지검·수원지검 8개 부(검사 60명)'이라는 제목으로 웹 자보를 만들어 당원들에게 배포했다. 웹 자보에는 대장동 사건을 수사 중인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쌍방울 변호사비 대답 사건 등을 수사 중인 홍승욱 수원지검장, 성남FC 후원금 사건을 수사 중인 이창수 성남지청장을 비롯해 이들 휘하 일선 수사 검사 등 총 16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이중 10명은 사진도 함께 공개했으며 11명의 사진 앞에 '尹사단'이라고 적혀 있다. 이와 관련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검사의 행위는 감춰야 할 사안이 아니고 검찰이 자기들이 수사를 했으면 수사한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다. 공개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볼 순 없다" 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홍보물 속 검사의 사진과 이름은 검찰청에 공개된 조직도와 언론에 공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 사진과 실명을 공개한 데에 여야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여당은 "대대적인 공격용 '좌표 찍기'"라고 비판하는 반면 민주당은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선 검사에 관한 정보를 더 공개해야 한다."라고 맞섰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수사하고 있는 검사들의 얼굴과 이름·직책 등 신상을 담은 웹 자보를 더불어민주당에서 만들어 최근 온라인에 공개한 것과 관련, “검사가 무슨 죄를 진 것도 아니고 명단이 공개된들 어떤가? 오히려 과거에도 주임 검사 명단이 언론에 모두 공개됐고, 그게(그래서) 오히려 소신 있게 수사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며 “명단 공개에 겁을 먹는다면 검사로서의 자질과 자격이 없다”며 “대한민국 검사 중 그런(겁을 먹을) 졸장부는 없을 것” 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검사는 공인”이라고 강조하면서 “오히려 명단을 공개하면서 겁을 주려는 사람들이 참 우습다”고 해당 웹 자보를 만든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을 언급했다.

우려한대로 뇌물수수·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이날 열린 본회의에서 노 의원 체포동의안은 무기명 투표 결과 재석 271명 중 찬성 101명, 반대 161명, 기권 9명으로 부결됐다. 가결 요건은 재석 의원 과반수 찬성이다. 체포동의안 부결은 21대 국회 들어 첫 사례다. 앞서 2020년 10월 정정순 전 민주당 의원, 2021년 4월 이상직 전 무소속 의원, 2021년 9월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의 체포동의안 3건은 모두 가결됐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체포동의안을 각각 자유 투표에 부쳤다. 다만 표결 결과를 보면 169석의 민주당에서 대거 반대표가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정의당은 “국회가 비리·부패 혐의자의 방탄막을 자처해서는 안 된다”며 당론으로 찬성 투표했다.

이에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주당은 불체포 특권 뒤에 노 의원을 겹겹이 감싸준 셈”이라며 “혹여나 민주당은 이 대표에게 다가올지 모를 그날을 위해 부결 예행연습이라도 한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도 “‘명 방위 훈련’이 국회에서 성공적으로 수행됐다”며 “이재명 예행연습. 실전은 걱정 안 해도 될 듯”이라고 밝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본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에 대해서도 있을지 모르는 체포동의안에 예행 연습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라며 “내년 1월 8일이 지나면 국회의 승인 없이도 체포가 가능한데, 그때 민주당이 어떻게 하는지 보면 방탄 국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헌법 학자는 “불 체포특권은 의원 개인을 보호가 아니라 의회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그런데 한 명의 의원이 체포된다고 국회가 정상적인 기능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본래 기능과는 다르게 면책특권이 남용됐다는 의미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불 체포특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것이어서 그 자체로 문제를 삼기는 어렵다”면서도 “국회의 이번 결정에 대해 결국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혹시라도 대표 개인의 비리를 수사하기 위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다면 여론은 민주당을 집어 삼킬지도 모른다. 누가 뭐라 해도 이 대표는 도덕성 결여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처지다. 따라서 이 대표는 합리적으로 생각하길 바란다. 자신이 직간접 연루된 수많은 비리들로 70여년 이어온 정통 야당 민주당에 누를 끼칠 것인가. 그의 인격을 마지막으로 믿어보고 싶다. 이 대표는 결자해지 차원에서 당 대표를 자진 사퇴하는 게 온당하고 순리에도 맞는 처신일 것이다. 이 대표의 결단은 빠를수록 당에도 좋다.

특권에 기대서 자신을 지키려는 것은 매우 무모하고 소인배의 허망한 시도다.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고 전력 질주해 온 ‘발광체’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아니지만 살고 죽는 것은 스스로에게 달렸다. 승부사 이재명의 지혜로운 결단을 기대해본다. 결코 악(惡)은 선(善)을 이기지 못한다. 신년 새해는 이 땅에 ‘어둠의 3요소’ 주인공들이 소멸되는 전환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호 심송, 한국 열린 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특임교수, 전, YTN – 저널 편집위원 & 의학전문대기자, 전, 수도방위사령부 장병고충처리 상담 관(군목), 현, 법무부 청소년선도위원회 상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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