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는? ‘눈 깜짝할 새’ 라고 한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빠른 새가 있다 그 새는 바로 ‘어느 새’란다. 물론 물리적인 시간으로 본다면 눈 한 번 감았다 뜨는 게 훨씬 더 짧겠지만, 심리적 체감속도는 ‘어느 새’를 능가할 만한 새는 없을 것 같다. “어?”하는 순간에 세상이 바뀌었음을 깨닫게 될 때의 그 당혹감이란, 그만큼 순간적이면서도 강렬하다.

이번 6.1선거 때도 그랬지만,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단어가 ‘쇄신(碎身)’ 뼈를 깎는 ‘쇄신’을 하겠노라고 외치며 지지를 호소하는 후보자들을 보게 된다. ‘쇄신’ 얼마나 무시무시한 단어인가. 그럼에도 듣는 입장에서는 그 무시무시한 단어에 깃든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그저 덤덤하기만 하다. 뼈를 가루로 깎고 몸을 부순다는 뜻의 쇄신(刷新)이나, 가죽을 벗겨 쓸모없는 부분을 도려내어 쓸모 있는 물건으로 만들어 낸다는 뜻의 혁신(革新), 특히 사회의 특정한 면의 점층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고쳐나가는 과정 즉 낡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바꾸는 사회 운동의 하나인 개혁(改革)은 모두 엄청난 통증을 수반하는 아픔의 단어다.

그런데 국민들은 왜 후보자들의 절규를 대수롭게 생각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을까? 이는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았다 하면 누구나 다 ‘쇄신’ ‘혁신’ ‘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임기 뒤에는 줄줄이 교도소로 간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20년은 더 집권해야한다던 이해찬을 떠올리면서 그런 느낌을 갖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성추행 보궐 선거에 이어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패하면서 중앙과 지방권력을 모두 내주면서다. 그런 민주당이 ‘어느 새’이 지경이 되었는지, 그야말로 권불십년(權不十年)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실감난다. 참패는 이미 예견된 사실이었다. 대선 패배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참회도 없었고, 이를 극복할 전략과 의지도 없었으며, 치열한 토론을 통해 미래 비전하나 내놓지 못한 ‘3무 정당’의 승리는 애당초 언감생심이었다.

더 큰 문제는 좀처럼 반등의 싹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능력은 없지만 계파의 연장자라는 이유만으로 자리보존하고 있는 일부 중진들, 진보의 옷을 입었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기득권에 심취해 있는 현역 의원들, 오랜 여당 생활로 초심은 물론 야성마저 상실한 ‘직업 정치인’들까지, 모두 현재에 안주하고 있는 모양새다. 비대위는 또 어떠했는가. 비상시국이 몇 달 째이었던가. 대선 직후 다섯 달 동안 당 대표 없이 방치한 것이 과연 집권 여당이 할일이었던가. 그리고도 국민들에게 ‘비상한 관심’을 갖고 ‘견제’을 위한 지지를 호소했다. 그야말로 김정은이 말하던 ‘자던 소가 웃을 일’이 아닌가. ‘견제’라니 더구나 민주당에선 감히 꺼낼 수도 없는 말이 아니던가. 양치기 소년도 아닌 양치기 꼰대 개(犬)님들의 습관성, 면피성, ‘아니면 말고’의 비 대위 도돌이표는 식상함을 뛰어넘어 아예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한지도 오래다.

안타깝게도 ‘골수지지파와 꼰대님’(?)들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오죽하면 혁신위원회 구성을 서두르고 있겠는가. 혁신. 쇄신, 개혁이란 단어도 민주당에선 한계 효용의 마지노선을 넘은지 한참 됐다.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껏 늘 그래왔듯이 또 임시방편으로 땜질 식 처방만 내놓을 생각일랑 하지마라, 국민을 더 이상 기만하면 안 된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충분한 고민과 자문을 거친 뒤 민심을 파악한 후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식의 정책으로는 2년 후에도 참패를 당하며 당의 존폐까지도 갈 수 있다. 해답을 위해서는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어장의 물고기들이 꼬르륵하며 떼죽음을 당했는데, 구사일생으로 혼자 살았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물고기 한 마리가 어장 주인이 되겠다고 설치는 꼴이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는 페이스북 글에 쏟아진 네티즌들의 호응은 민주당을 향한 최후의 경고다. 민주당의 위기는 벌써부터 조짐을 보였으나, 다수의석을 갖고 오만함과 독선을 보여 왔다. 결국 ‘민의’가 심판을 한 것이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완벽하게 지고도 오만했고,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화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출범 30일도 안된 정부를 주제넘게 견제하게 해달라고 했다. 사람과 시스템을 바꿨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패한 더불어민주당이 ‘패배 책임론’을 놓고 반으로 쪼개지고 있다. 두 번의 큰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쌓였던 계파 간 불만이 폭발하듯 일거에 터져 나오는 형국이다. 갈등의 기저에는 2024년 총선과 공천에 대한 위기감이 자리한다. 앞으로 2년 간 당을 이끌 새 지도부를 뽑는 8월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분당(分黨)’ 가능성을 물밑에서 언급하는 의원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4일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이럴 거면 당을 갈라서 나가라”는 당원들의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일단 의원들 사이 ‘감정의 골’이 상당하다. 선거를 치르는 동안 매번 임시 봉합했던 상처가 곪아 터진 것이다. 표현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이고 있는 의원들이 많다.

이원욱 의원(3선·경기 화성시 을)이 지난 2일 새벽 SNS에서 “이재명 친구, 상처뿐인 영광! 축하합니다”라고 비꼰 게 대표적인 예다. 이에 대해 이재명 의원의 성남시장 시절 전직 수행비서인 백종선 씨가 “곧 한 대 맞자. 조심히 다녀”라는 협박성 댓글을 달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친문계도 선거 직후 연일 SNS와 라디오 방송 출현 등을 통해 ‘명길(이재명. 송영길)책임론’ 을 후벼 파고 있다. 격한 표현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이제 몇 선수(選數)의 의미는 없다. 낡은 것에 대해 싫증을 느끼며 거부한다. 경기도를 반면교사 삼고 통렬한 반성과 자숙의 시간이 필요하다. 민주당의 내홍과 분당 위기는 새 비대위 구성과 대선·지선 패배 원인 분석 과정, 전당대회 ‘룰’ 세팅에 이르기까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대선과 지선에서 연달아 패해 ‘리더십 공백’ 상태가 빚어진 탓에 구심점이 될 ‘구원투수’도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문재인 정부 5년 간 당의 주류였던 친문계도, 대선과 지선에 직접 나섰던 ‘신(新)주류’ 친명계도 모두 상당한 ‘스크래치’가 났기 때문이다. 필자의 사견이지만 민주당이 살기위해서는 당 중심 정치를 탈피하고, 민심, 천심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졌잘싸’의 위로 대신 반성과 성찰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때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대선 패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대선후보와 당 대표가 재차 연고지도 아닌 지역에 출마하면서 이번 선거가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대선 연장전이 되었고 이로 인해 전체 선거구도가 어그러졌다. 정치에도 금도가 있거늘 남 탓만 하며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이재명 당선자의 당권도전에 대해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자신을 지지하는 무리들을 충동질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국민들은 감동을 원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문(文)사나리오의 복사판이다. 입성, 당권장악, 대선. 한마디로 ‘소탐대실’ 2년 뒤 총선의 결과가 뻔하다. 낙타는 땡볕에 노출되면 오히려 얼굴을 햇볕 쪽으로 향한다.

해를 피하려고 등을 돌리면 몸통의 넓은 부위가 뜨거워져 견딜 수 없게 되지만 해를 마주하면 얼굴은 화끈거려도 몸통엔 그늘이 만들어져 힘을 비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민주당이 사막 한가운데 고립되어 있는 낙타 같은 신세다. 당장의 고통을 감수하고 땡볕을 향해 정면으로 나갈지, 몸통인 지지자들이 힘들어하든 말든 나부터 살고보자는 식으로 몸통 뒤로 얼굴을 파묻을지 선택할 순간이다. 청동기, 철기시대를 지나 이미 나노시대에 진입했는데, 민주당은 여전히 20세기 철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신의 이데올로기의 돌과 빛바랜 과거의 훈장만 좌판에 깔아놓고 최고의 상품이라며 우기고 있으니 누군들 관심이나 갖겠는가.

시대는 ‘진보’했는데 민주당은 오히려 ‘퇴보’의 수순을 밟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씨앗을 뿌려줘야 하는 게 아니냐.”던 경기도지사 후보의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상반기 국회에서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던 민주당이 후반기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넘기겠다는 약속을 파기하는 등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면서 국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지금이라도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넘겨주지 않고 무리수를 고집하며 억지를 부리다간 국민의 신뢰를 잃고 2년 후 총선에서 더 곤궁한 처지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한다.

[호 심송,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평교원 주임교수, 전, YTN – 저널 편집위원 & 의학전문대기자, 전, 수도방위사령부 장병고충처리 상담 관(군목), 현, 법무부 청소년선도위원회 상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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