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대선을 향한 공직선거운동이 지난 15일부터 시작됐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현실은 참으로 암울하기만 한 것 같다. 후보자들이 역대 최악의 비(非)호감에 배우자들까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어 외신까지도 주목할 정도다. “한국의 민주화 역사상 가장 역겨운(distasteful) 선거”(더 타임스 일요판). “추문과 말다툼, 모욕으로 얼룩졌다.”(워싱턴포스트)

이래저래 유권자인 국민만 피곤하고 곤혹스럽기까지 한 대선(大選).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대선(大選)이 불과 20여일 남짓 남았다. ‘누군가를 가려 뽑는 일’이란 관점에서 선(選)의 의미를 잠시 생각해 본다. 사실 이 글자는 꽤 많이 쓰인다. ‘한자 어원사전’을 보면 ‘선(選)에는 제사에 쓸 것을 뽑아 보낸다’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선’은 제사상에 바치는 제물(祭物)처럼 구성원을 위해 희생할 사람을 뽑는 다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선발하다. 파견하다 등의 뜻이 파생되었다고 한다. 이 뜻풀이에서 관건은 ‘뽑혀서 희생할 자’, 대선이란 맥락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 본다면, 국가 공동체의 성원인 국민의 손에 뽑혀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충분히 돼 있는 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유권자인 국민은 어떤 자세가 되어야할까. 당연히 ‘뽑는 일’ 투표다. 뽑혀서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표를 찍는 일이다. 이처럼 중대한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투표, 그리고 선을 유권자(有權者) 인 국민의 입장에서 함께 고려해볼 때 이번 대선의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그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국민은 ‘뽑혀서 희생할 자’에게 투표한 다음 뽑힌 이를 ‘잘 부려 쓸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뽑혀서 희생할 자’의 각오에는 ‘국민한테 자신을 잘 부려 써달라고 자청하는 것’ 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위에 군림(君臨)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종복(從僕)이 되려는 자, 그런 자를 뽑아 부려 쓸 권리가 국민인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국민이 유권자로 불리는 까닭 또한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니겠는가.

선거가 임박해지면서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조지 클 루니’가 연출한 2011년 영화 ‘킹메이커’다. 원제인 ‘The Ides of March’는 시저가 자신의 심복인 브루터스의 칼에 찔려 쓰러지면서 “브루터스, 너 마저....”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다른 장르적인 의미로 제목이 바뀐 것 같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킹’이 아니라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인 ‘킹메이커’스티븐(라이언 고슬링)이다. 그는 경선에 나온 마이크 모리스(조지 클 루니)의 유능한 홍보담당관이다. 어느 날 상대 진영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면서 스티븐은 진흙탕 같은 상황으로 깊이 빠져들고, 수많은 ‘부적절한’ 일들에 휩싸이게 된다. 여기서 집고 넘어갈 것은 ‘킹메이커’는 정치를 지독하게 냉정하게, 아니 냉소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보수와 진보?’ ‘현실과 이상?’ 이런 가치의 대립은 모두 허상일 뿐이다. 국민? 대중? 웃기는 소리다. 그들은 단지 속임수와 사탕발림의 대상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라도 ‘역대 최악 선거’란 오명을 떼어내기 위해 후보 정당은 물론 청와대. 정부. 특히 선관위 등 이해 당사자들의 집단적 노력이 절대적으로 절실한 때다. 20대 대통령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당선이 되든지 간에 그 선택의 결과로 짧게는 5년, 길게는 10~20년 이상의 우리 미래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대외적으로 처한 현실과 환경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기후변화, 패권경쟁, 기술발전 등 환경변화의 불확실성은 날로 커지지만, 현재의 국가발전방식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연일 쏘아대는 데도 여전히 평화를 내세우며 종전 선언을 강조하는 현 정권에도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다. 불확실성이 증가하면 기회도 커지지만 불안과 갈등도 증폭될 수 있다. 매 선택의 결과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극과 극으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이번 대통령 선거는 과거의 경우와 많이 다른 것 같다고 말한다. 특히 후보자 자질과 가족 문제에 대해 더해 역대 급 네거티브 전략은 논외로 치더라도, 각 후보가 제시하는 우리나라 미래모습이 암담하고 무엇을 제시하는지 잘 전달이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털어 놓는다. 대한민국호를 5년간 이끌 만한 리더십과 비전. 정책을 가졌는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후보자들에게서 그럼 모습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열차의자에 발을 올려놓았는지, 금연 식당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지, 등의자에 기대여 바지 속에 손을 넣고 있든지, 누구 배우자가 더 잘못했다든지, 누가 무속 인을 만나고, 무속인 말을 들었다든지 등 네거티브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특히 상대후보를 비방하고, 악마 화하는 것은 결국 상대 지지자도 악마 화하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종복(從僕)이 되기 위해서는 누가 당선이 되던, 모두 서로가 적이 아닌 정치 동업자란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공멸이 아닌 공생의 길을 걸어야한다. 통합을 포기하면 국정 운영이 어려워진다. 벌써부터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 적어도 1년 반 정도는 허수아비 대통령이 되니까 다수 의원을 갖고 있는 여당후보를 찍어야 된다고 하는 데, 이는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공정한 선거를 치루기 위해서는 문 대통령과 정부도 불편부당한 선거관리자가 돼야 한다. 문 대통령이 ‘공정하고 안전한 선거관리에 만전을 기하라’고 당부했다고 하지만 문제는 실천 의지다. “공정할 뿐만 아니라 공정함을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게 해야 한다.”는 기준으로 볼 때 문 정권은 턱없이 미덥지 않다. 우선 필요도 없는 임시선거 사무실을 전국에 설치한 것이 그 한 례다. 더구나 선거 때 국무총리는 물론 행정안전부. 법무부 장관까지 여당 중진인 건 전례 없던 일이다. 법무부 장관이 “난 사법부이전에 입법부 소속이다”란 말이 떠오르면서 섬뜩해지는 건 필자만이 느끼는 것일까. 문 대통령이 친여 성향의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을 선관위원으로 유임시키려다 선관위 직원들의 거센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런 일은 어느 정권에서도 전례가 없었다. 문 대통령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기자의 질문에 ‘집권 시 전(前)정권 적폐청산 수사’ 발언을 두고도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공개 반박한 것 또한 이해가 안 된다. 잘못한 것이 드러나면 수사를 하겠다고 한 것인데 어째서 정치보복이라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지?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도둑이 제 발 저린다’ 식으로 잘못한 게 많으니 겁이 나는 모양” 이라고 말하며 비웃는 국민들이 많다.

불행하게도 우리 국민은 웃는 얼굴의 전직 대통령을 한 명도 갖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마저 그렇게 된다면 우리국민은 참으로 측은하고 가엾은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선관위도 미덥지 않다. 선관위원 7명 중 6명이 친여 성향이고 야당 추천위원이 한명도 없는 상태다. 잎서 2020년 총선에서 ‘비례자유한국당’ 이란 당명을 불허해 야권에 불리한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 선관위다. 지난해 4월 서울. 부산시장 성추행 보궐선거 때도 시민단체들의 ‘보궐선거 왜 하나요?’ 란 캠페인도 금지해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지난 8일 선관위 원로들이 노정희 선관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선거문구 허용여부를 놓고 편파 논란이 없도록 주의해 달라”는 주문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선관위가 최근 사전투표 용지에 바코드 대신 QR코드를 넣는 걸 두고 선관위의 “QR코드는 2차원 바코드”라는 설명에 수긍하지 않는 이가 있는 것도 논란의 소지로 남아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중앙선관위가 “청와대를 굿당으로 만들 순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현수막에 대해 일반인들이 게시할 수 없다고 제재했다. 다만 정당의 경우에는 선관위가 교부한 표지를 부착할 경우 걸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려 야권을 중심으로 선관위 판단이 들쭉날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정 후보를 반대하는 표현이 들어간 현수막은 가능하고, 비방하는 현수막은 불가하다는 것인데,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지나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시대의 정치라는 것은 어찌 보면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모습은 마치 협잡꾼처럼 보인다.

특히 후보자들은 이미지 메이킹으로 감싼 권력욕의 화신들이다. 모든 것은 거짓 된 쇼다. 자신이 모시던 후보만이 공정하고 진국이라 믿었는데 알고 보면, 위선자임을 깨닫게 되고 슬퍼한다. ‘킹메이커’ 영화는 스티븐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끝난다. 그곳에 비정한 ‘정치 기계’ 로봇이 된 자의 영혼 없는 눈동자만이 보인다. 3.15부정선거 때 내무부장관을 사형시킨 것처럼 부정선거를 주도한 자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엄벌에 처해야한다. 따라서 국민은 유권자의 유일한 특권이자 의무인 투표를 반드시 해야 한다.

[호 심송,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평교원 주임교수, 전, YTN – 저널 편집위원 & 의학전문대기자, 전, 수도방위사령부 장병고충처리 상담 관(군목), 현, 법무부 청소년선도위원회 상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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