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붉은 복장을 한 구세군의 냄비와 종소리를 들으니 곧 성탄절이 다가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19의 영향일까 거리도 한적하고, 인적도 드물다. 성탄절은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 최대 명절이다. 또 교회를 넘어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 함께 축복하는 명절이기도 하다. 성탄절은 무엇보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를 기념하고 그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는 절기다. 성탄의 중요한 의미는 ‘평화’다. 그리고 이웃사랑이다.

겉으로 보여 지는 거대한 예배당 건물과 화려한 외관이 성탄의 바른 의미는 아니라고 본다. 성탄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 태어나신 날이 12월 25일이 맞는 건지, 그리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하늘의 별이 인도했으며 동방박사들이 경배하러 찾아 온 것 등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성탄절)에 대해서는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초대교회의 주된 관심은 예수님의 사역, 수난, 부활이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 묻는다면 ? 스스로 대답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성탄절이 동방교회에서 말하는 1월 6일이나, 기도교계에서 말하는 12월 25일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예수님의 모습은 병자, 과부, 어린이와 함께 하신 분으로 알려져 왔다. 이 고백대로라면 예수님은 낮고 천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평화를 선포하신 분이시다. 성탄절을 앞두고 이미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진 이태석 신부가 떠오르는 까닭은? 2004년 성탄절을 앞두고 아프리카 남 수단 톤즈에 있는 이태석 신부가 방한 중 ’가난의 땅 톤즈에서 의료봉사를 하며 크고 작은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간호사, 선생님, 가정주부, 해물 탕 집 아주머니, 학생 등등 1%의 나눔으로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다.

이 신부는 그들을 ‘특별한 계산법’으로 사는 사람들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들이 베풀고 나눈 1% 때문에 ‘백. 천. 만’이라는 기적이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마치 성서에 나오는 과부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찡해온다. ‘아, 혼자가 아니구나!’ ‘정말 잘 살아야겠구나.’ ‘오지에서 고생하며 혼자서 투덜대던 저 자신이 부끄러웠다.’라고 고백했던 이 신부. 그는 2004년 여름 한국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며 지원을 호소했다. KBC ‘한민족 리포트(2003년 12월)에서 방영된 ’아프리카에서 찾은 행복’이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나누기에는 갖은 것이 너무 적다고 걱정하지마세요. 우리에게 하찮을 수 있는 1%가 누군가에게는 100%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신부의 말이 지워지지 않는다.

악화일로 코로나 19 펜데믹에, 첩첩 산중 대선 정국에 성탄절 분위기가 꽁꽁 얼어붙은 요즘이건만, 이 신부의 고투는 여전히 희망이란 꺼져버린 불씨를 되 살려주고 있다. 톤즈 수도원은 성탄절이 다가오면 새 옷을 입으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외국에서 들어온 구호물자였지만, 톤즈 사람들에게는 귀한 보물 같았다. 알록달록 옷차림의 성탄 전야 미사, “파리의 유명한 패션쇼를 방불케 한 자리”였다. 언제부터인가 성탄절만 되면 썰매를 타고 하늘을 날며, 굴뚝으로 선물을 나눠주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있었다. 한 동안은 아이들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진짜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유튜브를 일찍부터 접한 요즘 아이들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노토 교구의 안토니오스타글리아노 주교가 이달 초 니콜라스 축일 행사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산타클로스는 없다. 산타 복장의 빨간색도 코카콜라가 광고용으로 고른 것.’이라고 말해 부모들이 발끈 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오늘날의 산타 이미지가 공고해진 건 1931년 코카콜라 광고부터다. 이전까지 그림이나 삽화에 등장했던 산타는 체구나 옷의 빛깔이 다양했다. 문제가 되자 스타글리아노 주교는 “산타가 없다고 말한 게 아니라 진짜와 가짜를 구분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나눈 것” 이라고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때면 그걸 받지 못하는 친구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나눌 줄 아는 마음을 가르치기 위해 팩트 폭행을 했다는 것이 그의 변이다.

그는 “성 니콜라스는 가난한 이들에게 선물을 주었으나 코카콜라가 창조한 산타클로스는 그렇지 않았다.” 며 “상업화 된 문화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해치고 공허하게 만든다.”고 꼬집기까지 했다. 동심을 깨지 않기 위해, 때론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 며 말 잘 듣는 아이로 길들이기 위해 온갖 하얀 거짓말을 동원해 고군분투하는 어른들이 주교의 말에 질겁한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2018년 미국의 뉴저지 주에서 초등학교 1학년에게 산타는 없다고 말한 보조교사가 동심을 파괴했다는 이유로 해고되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은 분명 진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러면서도 아빠가 가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되어서 선물을 주기를 바란다. 선물이 옛날과는 달리 미리 주문하는 것도 값이 만만치 않다. 착한 아이가 받는 선물은 이제 아니다. 이래저래 부모들의 부담만 커졌다. 내 아이가 기죽지 말라고 남들보다 더 크고 좋은 선물을 준비한다. 성 니콜라스는 4세기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활동하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데 헌신한 기독교 성인이다. 어느 파산한 상인의 세 딸이 사창가에 팔려가지 않도록 한밤중에 몰래 금화뭉치를 던져준 게 유명한 일화다.

네덜란드에선 성 니콜라스가 뾰족한 주교 모자를 쓰고 당나귀를 타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고 믿는 풍습이 있었다. 성 니콜라스 축일 전야 아이들이 나막신에 당나귀 먹일 짚을 채우고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짚이 있던 자리에 놓인 선물을 발견했다. 그것이 17세기 미국으로 건너가 썰매를 타고 하늘을 날며 굴뚝으로 선물을 전하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산타클로스가 됐다는 ‘설’이 있다.

아기 예수의 오심과 탄생은 그 자체로 복된 소식 즉 복음으로 기독교의 본질이자 출발점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교회는 그 시작부터 성탄절을 최고의 명절로 여기고 함께 축하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성탄절에는 오랜 교회의 역사가 녹아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교회에는 가장 있어야 할 ‘평화’ 와 ‘사랑’ 이 없다. 거룩해야 할 교회가 기업화 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먼저 평화의 일을 해야 한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더 거대해지기 위해, 아귀다툼의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으로 낮아지고, 섬기는 평화의 모습을 한국 교회는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또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성경 말씀대로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며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거대한 교회 건물이 아니다. 오직 평화와 사랑만 있으면 된다. 주위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그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만이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을 제대로 전하는 것이다.

전역을 앞두고 의사가 아닌 사제의 길을 선택 한 이 신부의 에피소드로 끝을 맺고자 한다. 전역 직후 사제 지망생 이태석이 찾아간 서울 대림동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만난 노숭피(미국인 로버트 신부의 한국 이름. 로버트+숭늉+커피)원장은 농구 선수 출신이다. 그러나 그곳 아이들과 놀 때 절대 골을 넣지 않았다. 이태석 신부가 그 이유를 물었다. 노신부의 답변이 웃긴다. “농구의 생명은 패스입니다. 패스는 서로의 배려입니다. 내가 슛을 안 하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슛의 기쁨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팀워크를 통해 이긴 기쁨은 모두의 것이지요.”

구세군의 종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린다. 올해는 코로나로 경기 침체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물론 교회 역시 어려움이 따른다. 그럼에도 이번 성탄절에는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찾아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2021년 이 싸늘한 성탄 시즌, 우리사회의 팀워크를 곰곰 되새겨본다. 이 신부의 ‘여럿의 1% 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는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과연 매년 돌아오는 성탄절이지만,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내게 정녕 성탄절은 어떤 의미가 있을 까?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 ; 24>

[호 심송, 전,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박사), 전, YTN – 저널 편집위원 & 의학전문대기자, 전, 수도방위사령부 장병고충처리 상담 관(군목), 현, 법무부 청소년선도위원회 상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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