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작은 땅덩어리 위에서 이념논쟁으로 너무나 많은 소모전을 해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심지어 정치인들은 자기 일신의 사욕을 위해 이 같은 분열을 부추기는 추악한 짓을 태연하게 자행해왔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도 않았고 짧고 모욕적인 단어로 단정적인 낙인찍기를 하는 것은 즐겼다. 이런 행태는 인격적으로 덜 떨어진 사람들이 하는 짓인데, 언제부터인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미성숙한 행위를 생각 없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데 아무리 화가 나고 악이 받치더라도, 그리고 내 맘에 맞지 않는다고, 타인에게 모욕적인 언사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추태에 지나지 않고, 사람들을 분열시키며, 적대감에 젖게 하는 범죄행위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치인들의 정신적 스펙트럼이 넓어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정치지도자는 국민을 이간질하고 서로에게 적대감을 갖게 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런 정치인들은 걸려내야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 장’을 보면서 느낀 것이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이 찬사만 받기에는 어려운 분이라는 건 잘 안다. 12.12 군사반란, 5.18 광주사태 진압 관여, 2000억원대 뇌물, 호남 고립을 초래한 3당 합당이라는 과(過)는 한없이 무겁고 뭐라 변명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그의 공(功)을 배제하는 것 또한 형평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한 세대 전 대통령 노태우는 그의 과(過)와 함께 공(功)까지도 통합이라는 현재적 프리즘을 통과했을 때 엄정한 평가가 가능하다. 북방정책과 함께 직선제 수용과 직선제 개헌, 권위주의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 88올림픽의 성공, 의료보험 전 국민 확대, 개발이익환수 제 등 토지공개념 도입, 분당, 일산 신도시를 포함한 주택 200만호 건설, KTX와 영종도 국제공항 건설 추진, 외교뿐만 아니라 내치의 업적을 보면 나름 공(功)도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필자는 오래 전 노 전 대통령을 ‘물 태우’ 라며 비아냥거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회고록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필자의 속 좁은 마음이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물태우’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장자’의 “오상아(吾喪我)”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경지를 꿈꿨던 것일까. 정파와 이념의 차이를 초월한 노 전 대통령의 리더십은 분열된 이 나라 통합의 교훈이 되었어야 한다. 그는 회고록에 “국정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참자. 어지간한 것은 용서하자, 기다리자는 신념으로 일관해 왔다”고 기록했다. 이제는 망인이 되었지만, 5.18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은 “부족한 점과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고 있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아무리 정파적 차원이라 해도 전직 대통령을 ‘노태우氏’라고 부르며 고인의 영전에 과오만 들춰내며 분열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5.18 단체 등에선 국가 장(葬) 자체를 아예 반대했다. 조기(弔旗) 게양을 놓고도 민심은 갈렸다. 일부 지방단체가 조기(弔旗)마저 게양하지 않는 몰지각한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때 5.18 당시 시민군 상황 실장이던 박남선 씨가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해 눈길을 끌었다. 박 씨는 당시 계엄군에 체포돼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3년간 복역했었다. 그런 그가 빈소에서 유족들의 손을 잡아주며 “이제 하나가 된 대한민국을 위해 화해하고 화합하고 용서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빈소를 찾은 뉴스가 나가자 여기저기서 200여 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대부분 “수고했다”, “잘 했다”는 격려였고, 항의나 욕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죽은 사람인데, 과오를 들춰내며 비난만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필자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제는 망자가 된 노 전 대통령의 허물도 어지간하면 용서하고 저 세상에서는 편히 눈을 감게 해주자” 고.

이에 앞서 어느 정치인은 5.18광주묘역입구에 묻혀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석(얼굴)을 밟으며 히쭉이는 모습을 보았는데, 끔찍한 생각이 든다. 아무리 중한범법자라도 인격이 있고 명예가 있는 데,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하면서 웃기까지 할 수 있는지, 그 인격과 정신이 의심스럽다. 그런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국민 모두를 포용하는 큰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국민 화합이 필요한 시점에서 결국은 증오심을 심어주는 것으로써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교육상에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문재인 정권은 비정하기가 냉혈동물에 가깝다. 여당은 당명(黨名)에 ‘더불어’를 붙였지만 상대를 배려하거나 포용하는 모습은 눈곱만큼도 없는 정권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엊그제 치러진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 장(葬)과 관련해 나온 이야기들이 그렇다. 지난 4년 반 동안 지켜봐 온 결과 그들은 매사가 그랬다.

필자의 생각이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 장(葬)은 우리 현대사의 상처와 책임. 용서. 화합이라는 화두(話頭)를 던졌다고 본다. 그러나 정작 국가 장(葬)을 결정하고도 문 대통령은 조문하지 않았다. 국가 장(葬)을 거행하지 않으려면 모르지만 대통령이 조문을 하지 않은 것은 모순이다. 공과를 따지는 것은 별개로 하고 화합의 메시지 차원에서라도 조문했어야 옳았다. 대통령은 특정 정파나 지역이 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고, 모든 국민을 껴안아야 하는 자리다. 문 대통령 스스로가 공정과 평등을 강조해왔지 않았는가. 법률상 국가장 장례위원장은 총리가 맡지만 상주는 현직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은 공과가 있지만 명복을 빈다”는 애매한 메시지만 남긴 채 청와대에서 10분 거리인 서울대 병원에 차려진 빈소에 조문을 가지 않았다. 외국 출장 중이라도 조기 귀국해 조문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 등 출장 준비에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조문을 거부한건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업무를 거부한 것으로 풀이 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임에도 천안 함 피격과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추도식에도 참석치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한 취임사가 모두 식언으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대통령이 이렇다보니, 문 정부가 국가로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 전직 대통령 서거라는 국가 차원의 장례식인 국가 장(國家葬)을 치르면서 세계 각국에서 답지한 ‘조전’을 장례식이 끝난 시점까지도 공개하지도 않고 유족에게 조차 전달도 하지 않고 뭉갠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외교부는 중국 시진핑 주석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 등 외국의 국가수반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조전(弔電)이 10개국으로부터 왔으나 외교부와 청와대는 국가장이 끝날 때까지 침묵했다.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조전 배달사고이자, 조전을 보낸 국가들에 대한 외교적 결례가 아닐 수 없다. 유족에게 전달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국가적 실례가 또 어디 있는가. 유족측은 “장례식을 거의 마치고 주한중국대사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조전이 왔다는 걸 알게 됐다.” 고 밝혔다. 정부는 이에 대해 “유족에게 꼭 전달해 달라”는 요청이 따로 있지 않으면 외국 정부로부터 온 조전을 유족에게 반드시 전하지는 않는다“고 해괴하고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중국 조전에는 ‘유족에게 위로의 뜻을 전해 달라’는 당부가 있었다. 외국 정상이 보내온 조전은 유족에 즉각 알리고 국민에게 공표하는 게 도리다. 조전은 유족뿐만 아니라 대한민국국민에게 전하는 상대국가의 외교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이번 조문 감추기 사건에 대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소상히 밝히고 그런 공직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할 것이다. 의전 상에도 문제가 있었다. 장례위원장인 김부겸 국무총리의 추도사는 고인에 대한 불만과 책망으로 가득했다. 김 총리는 “고인께서 병중에 드시기 전에 직접 피해자와 유족을 만나 사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유족을 향해 5.18에 대한 사과를 계속해 달라고 요청했다. 해도 너무 한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고인이 가는 길에 장례위원장인 김 총리가 품격도 없이 꼭 그렇게 재를 뿌려야만 하겠느냐”며 “좌파들은 하나같이 남의 장례식장에 와서 욕하고 가는 것이 기본인가”라고 비판했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대다수가 “이게 무슨 애도의 장례식인가”라고 불쾌해 했다. 균형을 잃은 모욕과 폄훼는 역사를 분열의 도구로 만들 뿐이다. 자신의 무거운 원죄에 용서를 구하고, 통합과 남북화해의 상징으로 부활 한 고(故)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호 심송, 전,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박사), 전, YTN – 저널 편집위원 & 의학전문대기자, 전, 수도방위사령부 장병고충처리 상담 관(군목), 현, 법무부 청소년선도위원회 상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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