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4단계에 이어 계속되는 폭염으로 가득이나 많은 국민들이 힘들어하는 가운데 최근 꽉 막혔던 남북 간 통신선이 13개월 만에 재가동되자 여당이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야단법석이다. 한 술 더 떠 남북교류 회복은 물론, 내친김에 정상회담까지 가자며 잔뜩 들떠있다. 그러나 로마 시인이 노래했듯,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 이제 겨우 전화선을 연결했을 뿐이다. 아직은 기뻐하기는 이르다. 곳곳이 지뢰밭이다. 과거 전력을 보더라도 쉽게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갑작스레 이뤄진 남북 통신선 복구 뒤에는 북한의 노림수가 분명 숨어있다. 그동안 북한은 대북 인권결의안, 천안 함 피폭에 따른 5.24조치 등 온갖 구실로 통신선을 임의로 끊었다가 아쉬우면 복원을 하곤 했다. 느닷없는 통신선 복원은 2000년 이래 다섯 번이나 된다. 한 번을 빼고는 물질적 필요에 따라 통신선 단절과 복원을 거듭해왔다. 이번에도 무엇인가 음흉한 계획이 있을 것 같다. 북한은 문 정부가 북한과 교류에 안달을 하는 등 목말라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웬만하면 자기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것이라는 것도 다 안다.

그렇다면 북한은 우리에게 바라는 게 무엇일까? 문득 떠오르는 것이 이달 중순으로 잡혀있는 한. 미 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중단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정은 정권의 대변인 격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1일 “반전의 시기에 군사연습은 남북관계의 앞길을 흐리게 한다” 며 “남측이 8월 한. 미 훈련에 큰 용단을 내릴지 예의주시할 것”이라며 UFG중단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가 기자간담회에서 연기론을 제기한 지 사흘만이고, 남북 정상 간 서신교환을 통해 연락채널이 복원 된지 엿새만이다. 남북 교감 하에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남측에서 알아서 제기하자 김여정이 이를 굳히려 듯 강하게 압박하는 모양새다.

특히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남북 통신선 복원 조치가 남북 정상회담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미 연합훈련 문제를 거론했다. 김 부부장은 “(남북 통신선 복원은) 단절됐던 것을 물리적으로 다시 연결시켜놓은 것뿐이라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가 군사훈련을 강행하는 상황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김 부부장의 이 같은 언급은 한·미 연합훈련이 계속되는 한 남북 정상회담에 응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한·미 훈련이 중단된다면 남북 정상회담을 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남북대화 재개, 이어 북미 대화 중재의 모멘텀으로 삼겠다는 의도로 비춰진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이번 달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훈련 규모 등을 조정해 남북 대화 국면을 조성해보려던 문 정부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 김 부부장의 담화를 계기로 한미연합훈련이 정치 쟁점화하면 정부로서는 앞선 대북전단살포금지법 개정 때와 마찬가지로 '김여정 하명'(?)에 따른 훈련 조정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한이 요구하는 한·미 훈련의 완전한 중단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미 연합훈련을 대북 협상카드나 지렛대로 삼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안보를 팔아 대화를 살 수는 없다. 국민들은 북한의 눈치를 보며, 비위 맞추려고 법석을 떠는 정부의 태도가 불안하기만 하다.

앞서 남북은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부터 수차례 친서를 교환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해왔음을 공개하고 단절됐던 통신선 복원에 합의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됐으며, 북한도 이에 완전한 거부 의사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곧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사실상 ‘조건’을 달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지속적으로 한. 미 연합훈련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만은 변명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여야 5단 대표 초청간담회에서도 “코로나19로 대규모 군사훈련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돌려서 말했다. 또 문 대통령은 지난 1월에도 연합훈련 문제를 북한과 협의하겠다는 발언을 해서 많은 국민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꽉 막힌 남북 경색국면과 비핵화 협상의 교착을 타개하기 위해 대화 재개를 추진하는 것은 이해 할 수도 있겠지만 안보태세 유지에 필수 요소인 연합훈련을 두고 협상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전임 트럼프와는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훈련 없는 군대는 무용지물”이라는 전통적 미국의 입장으로 돌아섰다. 지난 5월 미 국방부는 “연합훈련은 동맹의 연합 준비태세를 보장하는 주요한 방법” 이라며 “한반도만큼 군사훈련이 중요한 곳은 없다” 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기론을 제기하는 것은 5월 정상회담을 통해 재확인한 한‧미 동맹의 신뢰에도 균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한미 훈련에 대해 유연한 대응 필요성을 언급했다.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고,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서는 한미 연합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범여권 의원 60여명이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연기 연서 명에 동참하며, 단체 행동을 예고하자,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조차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육군 대장 출신으로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을 역임한 김병주 의원은 지난 4일 저녁 민주당 의원 단체 채팅방에 글을 올려 "지금은 한미 연합훈련의 연기나 취소를 주장하기엔 너무 늦었다. 올림픽으로 따지면 이미 예선 경기가 시작된 건데 어떻게 본선 경기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할 수 있겠냐"며 우려를 표했다. 김 의원은 "이미 훈련에 참석할 미군들도 대부분 입국했고 당장 이번 주에 지휘관 세미나와 전술 토의, 분야별 리허설 등이 진행되고 있다"며 "연합훈련은 이미 시작돼 훈련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면 된다." 고 설명했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트럼프 – 문대통령시대에 한. 미 동맹이 약화되었는데, 국방의 정치화가 주원인이었다”고 지적을 허투루 들어선 안 된다. 물론 문 정부는 연기론의 이유를 코로나를 들기도 하지만, 2018년 이후 규모조차 대폭 축소한 지휘소훈련조자 연기하자는 것은 북한의 요구에 끊임없이 끌려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6월 당시에도 김 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남측 당국의 대응을 문제 삼으며, 남북 간 통신연락선을 끊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뒤 정부가 대북전단살포금지법 개정을 추진하자, 야권을 중심으로 '김여정 하명 법'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김여정에게 온갖 수모와 비난을 받으면서도 태연하기만 한 문 정부가 의심스럽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은 끊임없이 잠수함 발사 능력과 전술핵 개발 등 핵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진정성 있는 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훈련 연기를 내세울 게 아니라 북한의 핵 고도화 행위를 먼저 중단하라고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번에 북한이 식량 지원을 전제로 통신선을 복원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도와주는 것은 맞다. 그러나 무조건 들어주는 것은 옳지 않다. 과거 김대중 정부는 대북 쌀 지원을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해 협상, 이산가족들을 15년 만에 다시 만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에 김영삼 정부는 일본이 대북지원을 고려하자 선수를 안 빼앗기겠다고 식량지원을 서두르다 망신을 당했다. 제대로 사전 협상이 되지 못해 쌀 수송선이 인공기를 달고 가야했다. ‘X주고 뺨 맞는다’는 식이다. 결국 국내 여론이 나빠지면서 남북관계는 좋아지기는커녕 도리어 악화 되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쌀 대신 백신을 원할지도 모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문 정부가 또 북한 술수에 넘어가 귀중한 쌀 또는 백신을 헛되이 날려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내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때 만나주겠다는 김정은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쌀 또는 백신을 퍼주기를 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정권 말의 실속 없이 퍼주기 식, 남북 정상회담보다는 차라리 이산가족 재상봉 같은 실속 있는 조건을 제시, 맞바꾸는 게 현명 할 것 같다. 정부와 군(軍)은 방어훈련인 한. 미 연합군사 훈련을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 인류 역사상 어느 나라가 적(敵)이 싫어한다고 군사훈련을 취소하거나 연기를 한 단 말인가. 그야말로 문 대통령이 말했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을 경험해보는 것 같다. 정치와 외교가 어떠하든 국방은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존재할 수 있다.

[호 심송, 전,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박사), 전, YTN – 저널 편집위원 & 의학전문대기자, 전, 수도방위사령부 장병고충처리 상담 관(군목), 현, 법무부 청소년선도위원회 상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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