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 달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영상 메시지에서 “해방 이후 한반도에 들어온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었다”는 취지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데 이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한민국은 친일 세력과 미(美) 점령군의 합작”이라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정치적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지사의 이 같은 문제의 색깔공세 발언은 지난 1일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이육사 선생의 딸 이옥비 여사를 만난 자리에서 나왔다. 당시 이 지사는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는 좀 달라서, 사실은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하고 합작해 다시 그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김원웅이나 이 지사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은 해방군, 친일세력 운운하는 것은 심대한 역사 왜곡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일제의 무조건적인 항복에 따른 것이다. 항복을 받아낸 주체는 연합국이고 그 주력은 미국이었다. 소련의 경우, 불과 일주일 전인 8월8일 대일선전포고를 하면서 뒤늦게 극동 전선에 끼어들었다. 이미 전황이 일본의 패전으로 기운 것을 알고 나서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한민족의 ‘해방’에 대해 기여도가 큰지는 따져볼 필요조차 없다. 그 이후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각각 진주에 일본군을 무장해제 시켰다. 이 때 이를 표현하는 군사적. 정치적 용어가 ‘점령’이고, 공식문서에 양측 모두 ‘occupation’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는 미군도, 소련도 모두 주둔군이 아닌 점령군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소련의 뒤늦은 참전과 북한 지역 진주는 ‘해방’과는 너무나 먼 해석이다. 소련은 한반도에 공산정권을 수립하고 위성국가화 하려는 목적을 아예 숨기지도 않고 드러냈다. 이는 사후 해석이 아니라 소련 붕괴 이후 공개된 기밀문서에서 기록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특히 김원웅 광복회장은 맥아더의 포고령에 ‘미군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란 표현이 나온다고 했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포고령에는 ‘북위 38도선 이남을 오늘부터 점령한다’ 는 말이 나올 뿐이었다. 이는 마치 미국이 일본을 대신해 한국을 무력으로 식민지배하기 위해 온 것 같은 인식을 심어주며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고 본질을 왜곡하면서 선동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원웅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은 해방군’이란 황당무계한 망언을 집권세력인 더불어민주당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불리는 이재명지사까지 이어 받았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망언에 가까운 발언에 대해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나 청와대, 정부여당이 어떤 입장표명도 안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탄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결국 국정을 장악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다음 정권까지 노리는, 상식을 파괴하는 세력으로 비춰진다.

특히 대선후보이기도 한 이 지사의 언행은 우리 미래를 갉아먹는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노동신문 같은 북한 매체의 주장만을 그대로 인용한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필자가 알기에는 당시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이 양민을 약탈하거나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만행이 빈발하자 학생들이 주도가 되어 반발 의거가 사방에서 일어나자 소련군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냈던 포고문 내용인데, 김원웅 광복회장이나 이 지사가 앞뒤 다 자르고 좋은 말만 한 것 같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를 관통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민주화운동 세력의 위험스러울 만큼 단순하고도 조야한 ‘한국 현대사 이해’의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된다. 따라서 이 같은 망 말 발언은 집권 여당에 기대하던 많은 유권자들을 실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구나 광복회장에 이어 여권 유력 대선주자가 그런 그릇된 역사의식과 함께, 지금 국제관계에 대한 균형적 관점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한국 현대사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다시 불러들인 것은 어떤 이유로든 납득 할 수 없을뿐더러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여권의 대통령 후보가 역사를 냉전시기로 되돌리는, 양극화적인 역사 이해를 소환한 것이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오늘의 국제정치 환경과 민주화된 국내정치 조건에서 어떤 논쟁이든 허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점령군’ 이라 표현을 한다는 자체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에 잘못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점령군이라면 전쟁에서 어느 일방이 승리 했을 때, 패자의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를 승리 군이 군사적 통치하에 둠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군은 그런 의미에서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 한 뒤 한반도 남반부를 군사적으로 점령해 군정을 폈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미군 점령이란 표현이 잘못 된 것은 아니다. 당시 한반도는 일본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잠시 점령군으로 군정을 편 것이다. 포고령 이후 45년 10월 13일 맥아더 장군에게 내려진 ‘한국의 미군 점령지역 내 민간행정에 대한 기본지령’을 보면 일본의 사회. 경제. 재정적 통제로부터 한국의 완전한 자유 획득을 목표로 제시한 내용이 담겨있다.

김원웅과 이 지사의 논리는 자칫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흔들려는 일종의 역사 포퓰리즘 선동으로 비춰진다. 특히 이 지사의 경우, 문제의 발언은 외교적 사안을 이념의 영역에서 다루며 선명성 부각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대선 유력 후보의 언행에 대해 상대국들에서 주시하는 만큼 오해를 살 만한 발언에 대해 우려하는 입장이다. 좀 다른 상황의 말이지만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정치 선언을 한 것과 관련, 일본에서 장소 선택의 배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예의주시하는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하물며 광복회장이나 대선 후보가 발언한 내용이 국제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겠는가. 두 사람은 남한이 친일파가 통치했다고 억지논리를 펴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초대 정권에 광복군 출신들이 많았지 친일파는 없었다. 오히려 북한이 친일파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예상외로 논란이 커지자 광복회 측은 “김원웅 회장이 역사적 기록을 직접 보고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을 밝힌 것”이라며 반발을 하는 시선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이 지사 역시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조인 후 미군은 점령군이 아니다.” 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꼬리를 내렸다. 그들의 논법은 극히 상호 모순적이고 설득력마저 없다. 미군을 굳이 부정적의미인 점령군으로 표현한 것 자체가 ‘친일파 정권’수립과 엮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든지 자신의 의견을 말할 자유가 있다. 반면 그 말에 대한 자신의 책임 또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북한에 소련군 출신들로 군사정권 세운 소련은 해방군, 남한에 사민정권 수립 도와준 미국은 점령군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진정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우선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직시한다면 소련군이나 미군은 다 같이 해방군이자 점령군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를 일본의 식민지 상태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군에 대한 무장해제가 필요하였고 그 과정에서 점령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김일성 등 소련군내 조선인들의 군복을 벗기고, 사민 복을 입혀 당과 군대 국가건설의 주도적 역할을 하게 했다. 북한에 있던 전 조선공산당 출신 국내 인사들, 남한에서 올라간 남로당, 중국공산당에서 들어온 연안파, 상해임시정부쪽에 있다가 올라간 김원봉 등이 북한정권 수립에 참여했다고는 하나 사실 주축은 스탈린의 지지를 받는 김일성, 김책, 최용건 등 소련군 88여단 출신들이었다.

소련군 출신들이 군대를 장악하고 그들만 무기를 가지고 있는 조건에서 다른 정치세력들은 권력투쟁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것은 1948년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수립된 사민 정권과는 대조를 이룬다. 2차 대전 후 소련군이 많은 나라들에 진주하였지만, 북한처럼 소련군 내 장교들과 사병들을 제대시켜 정권의 핵심 인사로 임명하는 식으로 정권을 세운 나라는 없었다. 반면 미군정 하에 있던 대한민국 건국 초기 우리 정부 내각에 미군 출신 인사들은 한 명도 없었다. 역사적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을 해방군, 남한에 들어온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며 무엇을 얻고자 함인가. 개인의 득을 생각하기보다 국가 안위를 먼저 생각하자.

[호 심송, 전,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박사), 전, YTN – 저널 편집위원 & 의학전문대기자, 전, 수도방위사령부 장병고충처리 상담 관(군목), 현, 법무부 청소년선도위원회 상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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