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 계절, 그리하여 뜨거운 피 설레며 나는 너를 사랑하는 계절’ 괴테(5월의 노래)가 묘사한 5월을 이미지다. 당(唐)대의 ‘우량사(于良史)’는 ‘꽃놀이를 했더니 꽃향기가 옷에 가득하다’고 만춘(晩春)의 정취를 노래했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로 계절의 여왕이자 만물이 생동하는 5월을 예찬했다.

5월 춘풍에 춘심을 돋운 것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5월 1일은 노동자의 날, 5월5일은 어린이날, 5월 8일은 어버이날, 5월 11일은 입양의 날, 5월 15일은 스승의 날, 5월 21일은 부부의 날, ‘4월에 찾아온 그녀가 내 품에서 편안히 머무는 계절’(April come she will)이라는 수식을 5월에 붙인 건 ‘사이먼과 가 펑클’이다. 이렇듯 5월은 활기와 행복이 넘치는 신록의 계절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각종 기념일이 5월에 몰려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41년 전의 그 5월 이후 이달만 되면, 우리 가슴 한 쪽에 무거운 돌덩이가 짓누르고 있는 아픔을 느낀다. 매년 18일만 되면 5.18 광주사태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식이 광주에서 성대하게 열리고, 정치를 하거나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몰려간다. 그러나 5.18 광주사태 때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억울한 죽음으로 동작동 현충원에 묻혀있는 또 다른 분들이 있지만, 모두가 잊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매년 돌아오는 5월 18일은 그래서 늘 새로운 서늘함과 숙연함을 안겨준다. 매년 필자는 김대중. 전두환 정치권 싸움에 시민군(?)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군‧경 27위 영령이 잠든 동작동 현충원을 찾아와 잔을 올리며, 사죄의 기도를 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순국한 군인. 경찰 장병들의 명패들이 ‘살아남은 자’들을 더욱 슬프게 한다. 똑같은 피해자인데 왜 이분들은 잊혀 진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가. 올해도 어김없이 필자는 군복을 입고 국립 현충원을 찾았다. 현충원을 찾은 순간 당혹했다. 코로나19 등으로 사전 예약이 되어 있지 않으면 입장 할 수 없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웅성거렸다. 한 분이 군전사자 추모식을 갖기 위해 국방부와 현충원에 재심까지 신청했는데 결국 불허가 되어 추도식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광주 행사와는 달리 추도식을 정문 밖에서 치룰 수밖에 없었다. 집회 성격상 9인 이내로 제한한다고 현충원측에서 말했지만,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시민단체, 예비역 전우들이 조촐하게 추도식을 거행했다고 뒤늦게 들었다. 앞서 옛 전우들이 입장을 하려고 했다가 저지를 당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태극기도 갖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하고 애국가도 부르지 말라고 했단다. 현충원 측은 경건해야 할 장소이기 때문에 소란을 피울까 우려되어 제한을 했다고 밝혔다지만, 찝찝한 느낌이 든다.

5.18 광주사태 기념일이 되면서 여야가 공히 ‘호남 끌어안기’ 혈안이 되어있는 것 같다. 특히 대선주자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발걸음들이 빨라졌다. 말할 것도 없이 더불어민주당의 모든 대선예비주자들이 하나 같이 18일 전후로 광주 5.18묘역을 찾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민주당 대선주자들의 본선 행은 반드시 전략적 선택에 의해 결판났다. 민주당의 한 중진은 “이번에도 승부처는 호남 경선이 될 수밖에 없다”고 못 박는다. 이처럼 ‘광주로 가는 길’ 은 각자 처한 상황과 전략적 포석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진실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묘역 참배는 일회성 눈도장 찍기 행사에 불과하다. 과연 호남, 광주 표가 자신들에게 표를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한 후보는 지난 며칠간 매일 같이 5.18묘지에 나가 묘비를 닦았다고 하고, 또 한 후보는 광주 묘역을 참배한 후, 지역 지자체장들과 기본소득 간담회를 갖는다고 하고, 어떤 후보는 여수의 여순사건 위령탑에 참배를 하기도 하며, 호남표심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 술 더 떠 국민의 힘도 서진(西進) 행보로 호남 민심에 어필하면서 광주 행사에 참여까지 하며 눈도장 찍기에 바쁘다. 특히 국민의 힘 성일종. 정운천 의원은 보수정당 소속으론 처음으로 ‘5.18 41주년 추모제’ 유족회 공식 초청을 받고 이번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성의원은 5.18 유공자의 형제 자매도 유족회 회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 처리에 협조한 공로로, 정 의원은 당 국민통합 위원장을 맡으면서 비례대표 25% 호남출신 배정 방침 등을 주도 한 공을 인정받아 참석을 하게 됐다. 여야가 내년 대선을 겨냥 호남선을 탔다.

이 와중에 광주 5·18 기념식에 전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메시지가 논란이 되고 있어 국민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5·18은 현재도 진행 중인 살아있는 역사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이 우리 국민들 가슴속에 활활 타오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어떠한 형태의 독재와 전제든 이에 대한 강력한 거부와 저항을 명령하는 것이다!” 윤 전 검찰총장의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한마디에 민주당은 제발이 저리듯 ‘영령들에 대한 모독이다’ ‘배은망덕하다’라는 등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해 연일 독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김두관(민주당)은 “‘칼잡이 윤 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나라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검찰을 활용해서 정치 활동 할 수 있었겠는 가, 대한민국 국민들이 칼잡이에게 대한민국 미래를 맡기지 않는 수준이다.” 라는 발언을 했다. 또 같은 당 정경태도 “참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다. 친일파가 태극기 든 격이 아니겠는 가, 유체이탈화법이라고 본다”, 청와대 제직 시 부동산 투기로 밀려난 김의겸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18을 언급하니 젊은 시절 전두환 장군이 떠오른다. 문 대통령에게 조국만 도려내겠다고 보고했다. 당시만 해도 ’역심‘까지는 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 한마디 했다.

모두 오판을 하는 것 같다. 여전히 국민들을 개돼지 취급하며 우습 게 보고 있는 것이다. 5·18은 아파해야 할 대한민국의 역사이자 국민통합을 위한 상징이다. 결코, 특정 정당의 전유물도 아니고 허락을 받아야 할 소유물도 아니다. 5·18 유가족조차 국민의힘을 받아들이고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하는데, 민주당은 어떤 권한으로 5.18을 입에 담지조차 못하게 하는 것인가. 21대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것이 대한민국을 독점하고 독재하라고 국민들이 허락한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떤 근거에서 5·18 정신은 민주당만 찬양하고, 민주당만 계승해야 한다는 말인가. 오만함의 극치다. 오히려 민주당이 독점하면서 정치적으로 악용하기에 지금까지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민주당은 지난 4.7 보궐선거에서 국민들의 심판을 똑똑히 목격했지만, 여전히 특권의식과 내로남불로 똘똘 뭉쳐있다. 정치권의 희생물이 된 광주의 아픔까지 민주당의 정치수단으로 사용하려 한다면 5·18 희생자뿐 아니라 우리 국민에 대한 모욕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한 결 같이 5.18 광주사태 때의 참상에 대해 가슴아파하며,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광주시민들이 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몇 가지 일들에 대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게 있다. 이 부분을 밝혀 의구심을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 개탄스러운 건 명예훼손죄가 분명히 현행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새로운 특별법을 만들어 광주사태와 관련, 북한군 개입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 무조건 구속해서 5년 징역에 5000만원 벌금을 물려서 말도 못하게 하다니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이 있는가? 자유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5,18광주민주화 운동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나신 합성사진을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민주당 의원이 전시(?)할 때도 야당이 지적하자 ‘표현의 자유’를 말하지 않았는가. “광주의 한(恨)을 푸는 것은 광주의 사람들에게 총질한 사람들에게 똑같이 보복하는 게 아니라 그 광주의 ‘한’을 민주회복을 통해서 풀어주는 것만이 오늘 대한민국의 모든 갈등을 해결하고, 서로 회목하고, 단결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83년 연설문이다. 비록 일부 정치꾼들의 ‘5.18숟가락 쟁탈전’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국민들은 이제 신뢰를 잃은 대통령과 청와대와 정부에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힘을 과시하며 독주하는 집권 여당은 “코로나가 아니면 민주당이 촛불대상”이 되었을 것이라며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장담했던 대통령은 어디 가고 보이지 않느냐?”고 외치는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착각하고 오만하지마라.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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