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끊임없이 내세운 공정의 화두는 2017년 5월 자신의 취임사의 한 대목인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였다. 이때쯤 많은 국민들은 문 대통령이 공정과 정의가 살아있는 대한민국 사회를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문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민들이 기대했던 모든 일들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야당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일명 성추행 보궐선거인 이번 서울. 부산시장 선거는 ‘야당이 이긴 게 아니라 여당이 참패를 당한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문재인이 문재인에게 졌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패자는 분명 있는데, 승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4‧7재‧보선에 참패한 다음 날 문 대통령의 입장은 간략한 세 문장으로 요약 할 수 있다. “첫째,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인다. 둘째, 더욱 낮은 자세로 보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국정에 임하겠다. 셋째, 코로나 극복, 경제 회복, 민생 안정, 부동산 부패청산 등 국민의 절실한 요구를 실현하는 대 매진하겠다”는 언제나 그랬듯 상투적인 말 뿐이다. 그것도 100자에 불과한 짧은 입장문에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전했다.

여당이 압승한 지난 해 4‧15총선 다음 날 500자가 넘는 입장문을 발표했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위대한 국민의 선택” “진정한 민심” 운운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런 문 대통령이 이번 입장문에서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 야권에서 비판받았던 ‘적폐’란 표현 대신 ‘부패’라는 용어를 썼다. 최근까지 문 정권은 부동산 적폐청산을 내세우며 이명박, 박근혜 전 정부와 엮으려고 용트림을 했었다. 현 정부 초기에는 먹혀 들어갈 수 있었지만, 4년 내내 반복되자 적폐타령도 시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 정권이 적폐대상’이다라는 소리를 듣게 되면서 부패청산으로 급조된 ‘쪽 대본’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문 대통령은 부동산 실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았으며 형식적인 어투로 부동산 부패 청산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의 사고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이번 선거가 드러낸 민심은 성추행도 그렇지만 부동산 실패가 부른 분노였다. 지금이라도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실패를 자인하고, 부동산 대책을 바꾸라는 국민의 명령이었다. 그런 명령을 문 대통령은 ‘부동산 부패 청산’이라는 말로 돌리며 국민을 우롱하면 안 된다. 대통령의 말의 뜻은 ‘현 정부 정책이 잘못 된 게 아니고, 투기에 나선 적폐 세력이 문제니까. 그 흔한 적폐를 써먹으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인상을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고 있다. 그 예로 지난 8일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발언은 가관이다. 홍 부총리는 “부동산 정책의 큰 틀은 흔들림 없이 유지되어야 하고, 주택 공급은 지자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이는 야당의 오세훈 서울시장의 부동산 공약을 견제함과 동시에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어 홍 부총리는 재. 보선 전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변창흠 국토부장관이 주도하고 있는 ’2.4대책‘을 흔들림 없이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민심은 25번의 정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값이 치솟고, 각종 규제로 내 집 마련이 사실 상 막힌 상황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를 비롯한 여권 주변 인사들의 ’부동산 내로남불‘ 이 잇따라 터진 것에 분노를 터트린 것이다. 그런데도 이 정권은 기존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계속 이어 가겠다고 하는 건, 선거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아님 아예 민심을 개 무시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아직도 여권은 180석의 권위를 믿고 자만에 빠져있는 것 같다. 자신들의 실책에 대해 자성하기는커녕 이 같은 사태에 대해 검찰, 언론 등을 탓하는 구태가 여전하다. 언론이 편파적으로 야당 편을 들다보니 참패를 당했다고도 한다. 또 조국을 두둔하는 발언도 망설임도 없이 토해낸다. 적반하장으로 편파적인 언론 때문에 민주주의가 상당한 위험에 처해진다고 했다. 또 한 의원출신(민주당)은 “민주당 살길은 오로지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뿐이다.”고 말한다. 민심이 흉흉함에도 문 대통령은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애써 초연한 척 하는 것 같다. 그저 남은 임기 계속해 착한 척, 열심인 척하며, 넘기려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사안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생색을, 낼 때나 쇼(!)가 필요할 때만 주인공 역할을 하려고 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현 정부, 특히 문 대통령이 쇼만 잘하고 말 돌리기 명수라는 비난은 줄곧 있어왔다. 더구나 문 대통령이 현안에 대해 침묵하거나(공무원 북한화형사건 등) 논점을 흐린다(조국, 정경심, 울산부정선거, 원전 문서폐기 등)는 지적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그래서 무능하다거나 허수아비가 아니냐는 말들도 흘러나오고 있다. 자칫 자기 뜻과는 달리 비운의 대통령으로써 전직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 문 대통령이 입장문을 발표했지만 청와대의 국정운영 기조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청와대는 “이번 선거를 통해 나타난 국민의 절실한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흔들림 없이 계속 진행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검찰개혁 등 다른 정책은 마무리 단계로 이미 청와대를 떠난 상태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성추행보궐선거 참패를 수습하기 위해 곧 청와대 참모들을 교체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완패로 인한 책임론이 불거진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청와대는 국무총리를 포함한 개각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부터 이를 위한 총리. 장관 검증 등을 위한 인사추천위원회가 가동 된 바 있다. 대선 출마를 고려하는 정세균 총리의 교체는 확실히 되고 있다. 일단 오는 19~21일 국회 대정부 질문을 위해 사의를 미루고 있다. 새 총리로 최근 김영주 전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김 전 무역협회장이 극구 고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남기 경재부총리도 거론되고 있다. 또 박지원 국정원장도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데, 이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이 나라의 정체성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남은 임기 국정 잘하고, 마무리하려면 국무위원들 일괄사표를 받고, 정파를 초월한 내각을 새로 구성해야 한다. 이제껏 문 대통령은 취임 때 국민과 약속한 공약을 하나만 빼고, 지키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을 포함한 국회 청문회에서 부적격자로 된 29명을 임명한바 있다. 비리, 부패의 대상이나 피의자 신분의 인사로 정무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정작 입장문처럼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드리고 책임감 있는 국정에 임하려면 실책을 인정하고 국무위원 전원을 교체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1년 정도의 임기가 남아있지만 늦어도 올 연말이면 정국이 대선 체제로 바뀌면서 실제 일 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길어야 6~7개월 정도다. 다소 아쉬운 점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성추행보궐선거에서 서울. 부산에서 완패를 당하며 치명상을 입은 데다 마땅한 친문 주자가 없어 이해찬이 바라는 20년 정권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나마 임기를 채우고 고향땅을 밟으려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의 뜻을 잘 헤아려 그에 맞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낮은 자세로 국정에 임하겠다.”는 메시지가 예전처럼 말로만 그치지 않으려면 부동산 정책의 변화 등 과감한 쇄신책을 내놓아야 한다. 언제까지 국민들을 기만 할 수 없다. 그 실천은 오직 대통령만이 할 수 있다. 그래야 국민의 의혹이 다소 풀릴 것이다. 민주당 주요 당직자도 이번 선거의 참배에 대한 책임을 느껴 모두 일괄 사퇴를 했다. 다소 색깔을 나타내는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민주당에 어두움이 짓게 덮이고 있다. 현 청와대를 보면 자꾸 5년 전 박근혜 청와대와 닮아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2016년 4월 총선 직후 새누리당은 선거 민심과는 달리 거꾸로 갔다. 진박 공천 파동과 유승민 죽이기 등이 총선 패배 요인이었지만 친박들은 이정현을 당 대표로 세웠다. 기득권 사수에 목을 매면서, 새누리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선 패배로 완벽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이번엔 5년 주기의 악몽 같은 저주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옛말에 지도자가 국민 요구에 영합만 하면 그들과 함께 망하고,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 그들의 손에 망한다고 했다. 야당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심판대에 올랐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국민의 힘이 좋아서, 잘해서 국민이 표를 몰아준 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대선을 잘 치루기 위해서는 성찰과 자중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칫 오만과 자만이 대사(大事)를 그릇 칠 수도 있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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