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조제 활성화·성분명처방 도입 올 연말 고비될 듯

의약품 주도권 확보를 위한 의료계와 약계의 물밑 샅바싸움이 끝이 없다.

의약분업 이전 의약품에 대한 주도권은 약사에게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자들은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약을 복용하기 보다는 약국 조제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던 것이 의약분업 이후 약국에서 임의 처방 조제가 불가능해지면서 의약품 주도권은 의사에게 넘어갔다. 이후 약사들의 주 수익원은 의사들이 발행하는 처방전과 일반의약품, 건강식품 등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약사들이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대형병원 인근의 문전약국이나 기업형 대형약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동네약국들은 심각한 운영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분업이 되면서 한때 전체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했던 일반약(비처방약) 시장은 의사들이 좌지우지하는 전문약(처방약) 시장에 밀려 사실상 쇠락의 길로 접어든지 오래다.

올해 9월말 현재 일반약과 전문약의 시장 점유 비율은 20대 80 정도로, 의약품시장에서 약사들의 입지는 그만큼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약사들은 급기야 의약품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행보에 적극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대체조제’와 ‘성분명 처방’이다.

‘대체조제’란 약사가 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의약품을 조제하는 것이 원칙이나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성시험)을 통해 오리지널과 동등한 약효를 지녔다고 입증된 다른 의약품을 환자와 의사에게 알리고 조제하는 것을 말한다.

또 ‘성분명 처방’이란 의사가 지금처럼 특정제약사의 약물 이름으로 약을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성분명으로 처방하면 약사가 이 성분의 약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 환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체조제’나 ‘성분명 처방’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의사의 약 선택권은 제한되고 약사의 선택권은 넓어지게 된다.

하지만, 대체조제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생동성 시험품목 확대 등 정부가 대체조제 활성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으나 약사들은 여전히 처방권을 쥐고 있는 의사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공연히 의사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경우, 처방전이 주요 수익원인 약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약사들의 설명이다.

이로인해 약사들은 대체조제가 가능한 의약품이라도 의사의 처방전을 그대로 조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동안 약계가 대체조제 활성화’및‘성분명 처방’도입과 함께 대체조제 약물의 사후통보제 폐지 운동을 줄기차게 펴왔던 속사정이 여기에 있다. 사후통보제만 폐지되면 약사들은 더 이상 의사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대체조제를 할 수 있다.

현재 약계는 약사 출신 국회의원인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을 중심으로 대체조제 사후통보제 폐지를 위한 약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만일 이 법안이 통과되면 약사들은 앓던 이를 속 시원히 빼버리고 의약분업 이후 잃어버린 자존심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또 약국 경영난 해소에서도 상당한 시너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염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의사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올해 제약업계의 최대 이슈가 되었던 생동성 시험자료 조작 사건이 발생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반격에 나섰다.

대체조제의 대상인 복제약들이 생동성시험을 조작했기 때문에 오리지널과의 약효동등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한발 더 나아가 이 기회에 대체조제 자체를 폐지해야한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의료계는 식약청이 1차 생동성 시험자료 조작사건을 발표했던 올해 4월 “약사들의 대체조제, 국민건강을 위해 절대 안된다”는 광고를 주요 일간지에 게재하는 등 대한약사회의 대체조제 활성화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의사들은 대체조제 사후통보제가 폐지될 경우 약사들의 무분별한 임의조제가 난립함으로써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논리도 내세우고 있다.

병원협회 등도 약사회에서 주장하는 ‘대체조제 사후통보 폐지’반대여론에 가세했다. 병원협회는 “개별환자의 특성과 약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생동성 시험 결과만을 근거로 대체조제 확대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의료의 질 저하는 물론, 질병치료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약계의 소원인 ‘대체조제 활성화’나 ‘성분명 처방’ 도입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은 비단, 의료계의 반발 때문만은 아니다.

약사회는 “의사의 처방권과 약사의 조제권이 상호견제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성분명 처방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동안 성분명 처방에 호의적이던 정부마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예컨대, 최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생동성시험 자료 축적이라는 외형적 성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생동성 조작 파문으로 신뢰가 추락한 상황이기 때문에 당장은 성분명 처방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힌바 있다.

건강보험공단도 포지티브 리스트(보험약 선별등재목록)가 시행되면 ‘성분명 처방’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포지티브리스트가 시행되면 질이 검증된 동일성분 의약품들은 가격 편차가 줄고 궁극적으로는 가격이 동일선상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성분명 처방을 실시할 필요성이 희박해진다는 것이 건보공단측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올해 정기국회에서 현재 국회에 제출된 ‘대체조제 사후통보제 폐지’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약사회가 지난 5년간 추진해온 ‘공든 탑’은 일순간에 무너지는 꼴이어서 의약품 주도권을 둘러싼 의·약간 대립은 또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약계는 “대통령 공약사항인 성분명 처방 도입이 특정이익 단체의 반대에 밀려 무산된다면 이것은 복지부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라며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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