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잎사귀’로 불리는 칼리마(Kallima)라는 나비가 있다. 왜 칼리마가 죽은 나비로 불리게 되었을까? 설명을 하자면 우선 이 나비의 특징은 날개를 펴고 있을 때는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인다. 날개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마치 왕관을 쓴 여왕의 자태처럼 우아하게 보인다. 그런데 날개를 접으면 누런 빛깔의 흉물스런 곤충에 불과하다. 그 모습이 마치 썩은 나무 잎사귀와 흡사하다. 날개를 폈을 때와 접었을 때, 그 모습이 완전하게 대조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오늘 칼리마(죽은 잎사귀)와 같은 정치인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엊그제 가진 기자회견은 형식은 새로웠으나 국민들 가슴에 실망만 안겨 주는 회견에 불과했다. 그나마 문 대통령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단정 지었다는 것. 윤 총장이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나서는 것을 사전에 막아보려는 의도로 내비춰진다. 또 추미애 법무부(法無婦)장관 등 여권세력과 윤 총장과의 갈등에 대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집권 이후 내내 온 나라를 뒤집어 놓고 분열을 조장하며 국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놓고, 정부 내 갈등을 방치해놓고 한마디 사과도 없이 그것을 ‘민주주의’로 덧씌웠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문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2021년은 우리 국민에게 ‘회복의 해’ ‘포용의 해’ ‘도약의 해’ 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터널의 끝이 보인다.’ 며 ‘2020년과 올해의 경제성장을 합쳐서 코로나 이전으로 이렇게 회복할 수 있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고 자화자찬했다.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공감도 하지 않는 자화자찬으로 아까운 시간만을 소비했다. 정말 문 대통령이 말한 어두운 터널 끝이 보이나? 아니다. 올해도 터널 끝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국민들은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인지 의구심마저 들 정도로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을 뿐이다. ‘공정’과 ‘통합’이 빠지고 ‘도약’ 이란 말을 했는데 과연 문 정권에서 ‘도약’ 이라는 게 가능한 목표인가. 하는 꼴을 보면 감동은커녕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 이미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실패한 정책에 대해서도 사과 한 마디 없다. 임기가 4년을 넘어섰지만, 실책은 여전히 이전 정부 탓, 코로나 탓, 남 탓만 한다. 이제는 세대 분리한 국민 탓으로 잘못을 돌릴 것인가. 문 정권의 주류 세력은 86세대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라고 자부했던 세력이다. 그런데 이들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반민주세력으로 칼리마처럼 탈바꿈을 했다. 야당 시절 비판해온 다수결 절대주의에 빠져 무소불위의 칼바람으로 법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바꾼다.

왜 교수들이 지난 연말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 내로남불)’로 꼽았을까. 범죄 수사, 재판 판결이, 죄의 유무를 떠나 어느 한 편에만 유리하게 적용되어서는 법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필요에 따라 바뀌는 법이라면 굳이 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 지난 4년간 여권 실세들이 사법부와 수사기관, 심지어는 언론까지 적폐청산 대상으로 돌리는 행태가 반복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부적격자(국무위원)들의 인사로 핵심 정책들은 임기 내내 우리 사회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져왔음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탈 원전이 그렇다. 결국 전기료 인상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도자의 그릇된 판단으로 국민들 허리만 휘진다.

가까이는 지나간 세 정권의 전직 대통령들의 임기 끝을 돌아보자. 탄핵, 투옥, 자살로 끝을 맺으며 국민들에게 끼친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나라는 분열되고, 이성, 상식은 실종되고 비상식의 깃발만 나부끼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갈등과 반목의 골은 깊어가고, 칼리마같은 정치꾼들은 깃발 뒤에 숨어 눈치만 보고 있다. 이념으로 포장 된 진영의 집단이익만 챙기느라 상대를 이해하고 설득하며 타협하는 우리 사회의 난제를 함께 풀어가려는 상식의 정치 리더십은 아예 실종 된지 오래다.

문 정권은 재벌개혁, 검찰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 등 적폐를 청산하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미래 청사진을 펼쳐보였다.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대통령 직무 실을 광화문에 옮기고 정치적 반대세력도 국민이기에 끌어안는 화합과 소통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또 5대 비위비리 자는 공직에서 배제된다고도 했다. 한반도 평화 운전론자도 자처하기도 하고, 환경과 안전, 그리고 여성과 인권도 앞세우겠다고 했다. 공정과 정의도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세월 돌이켜보면 화려한 말잔치뿐인 레토릭 정치와 무책임한 아마추어 정책의 기억들만 뇌리에 남겨주었다.

오는 4월에 있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 선거도 시민을 위한 정책비전의 대결 없이 후보의 인지도나 정권 심판 론만을 내세우며 표만 의식하는 것 같은 느낌에 안타까움을 더해 준다. 특히 부산의 경우 후보자들이나 정권, 정당이 말하는 것에 대해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달라진 모습을 우리는 지켜보았지 않은가. 비전이나 철학 없이 레토릭만 있는 정치꾼, 정책의 구체성 없이 원론만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정치꾼, 소신 없이 눈치만보며 이해득실 따지는 정치꾼, 혹세무민하며 자기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꾼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순 없지 않는가. 특히 사이다 발언으로 국민을 현혹하는 정치꾼들의 포퓰리즘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음식을 먹고 체하면 사이다를 마시라고 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체하면 사이다를 마실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약을 복용해야 한다. 사이다는 한 순간은 속이 텅 뚫리고 시원 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마치 서민인양 선거 때만 되면 재래시장에 몰려다니며 어묵 등을 먹는 모습은 참으로 역겨워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서 약속을 지킨 건 단 하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뿐이다. 가장 아쉬운 점을 말하라면 ‘통합’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당시 국민에게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 약속의 말. 기대가 컸지만 빈말로 그쳤다. 오히려 갈수록 내 편만 찾아 챙겼다. 진정한 국민 통합은 아예 물 건너갔다. 국민들은 문 정권에 기만당한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박범계 법무부장관 후보를 임명하고자 국회에 인사청문회 결과보고서를 송부해달라고 재요청했다는 것이다. 인사청문회법에 근거 국회가 다시 경과 보고서를 제출해야하는데 응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 직권으로 장관을 임명할 수 있게 되어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추미애법무부장관이 후보일 때도 국회에 동의를 얻지 못하자 송부기한을 주고 이틀 후 임명한 바 있다. 이번에 문제가 많아 부적격자로 판정 된 박 후보를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해. 현 문 정권에서 사실상 야당의 동의를 받지 못한 채 임명된 27번째 장관 급 인사로 기록됐다.

20대 국회 회기 중 소관 위원회에서 청문결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채 임명된 장관급 인사는 강경화 장관부터 추미애 장관까지 총 23명이었다. 21대 국회가 들어서면서 이인영 통일부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변창흠 국토교통부장관의 경우 인사청문회 결과보고서가 채택되었지만, 이는 야당인 국민의 힘이 상임위원회에 불참한 채 이루어졌다.

소설에서 나오는 돈키호테가 시종 산초에게 ‘지도자가 명심해야 할 점’을 지적하던 말이 생각난다. “절대로 자네 멋대로 법을 만들고 그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말게 이런 법은 흔히들 똑똑한 체하는 무지한 자들이 이용하는 것이라네.” “혹시 정의의 회초리를 꺾어야 할 경우 그것은 뇌물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자비의 무게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하네.” 멋대로 법 만들기, 가난한 자의 눈물, 뇌물의 무게로 꺾는 정의의 회초리, 본질을 외면하고 감정에 휘말리는 이성, 자비를 외면하는 법의 단죄를 명심하라고 타이르는 돈키호테야말로 존재의 근원을 행동에서 발견한 자이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문 대통령이 임기를 약 16개월을 남겨두고 있다. 연말연시 부분 개각을 통해 장관을 새얼굴로 교체했다. 그런데 ‘다 내 편’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에서 뽑다보니 그리되었다.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 대해 ‘대 연정’을 제안했지만, 안타깝게도 여야의 격한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노 대통령의 크기가 달랐다. 노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더불어민주당, 특히 문대통령의 그릇 크기는 얼마나 될까. “눈길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걷지 말기를,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서산대사의 시구 ‘답설가(踏雪歌)’로 끝맺음 하고 싶다. 적어도 후손들에겐 부끄러운 조상으로 역사에 기록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