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0년 한 해가 몇 시간 후 면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난다. 이맘때면 누구나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며 회환(回還)의 시간에 잠기게 된다. 새해 다짐했던 일들이 계획대로 잘 이루어졌는지, 자기 자신을 괴롭히며 무리한 욕심으로 산 것은 아닌지.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 바쁜 현실에 매몰되어 산 것은 아닌지, 지나친 내 과욕 때문에 또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어쩜 보람보다는 ‘후회’가 더 많은 것이 연말의 일상일지도 모른다. 후회를 한다는 것은 욕망이 컸기 때문이다. 쉽지는 않지만 마음을 비워야 했다. 더구나 인생의 황혼기에 노욕을 부리는 삶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 남아있는 시간들에 주어진 삶의 의미를 관조하며, 남은 인생을 정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자세일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권도 새해가 되면 원하던, 원하지 않던, 황혼기에 접어들게 된다. 마치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노년이 되는 것처럼, 대통령의 레임덕 소리가 나올 것이 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 자신이 소원했듯, 양산 집에 무사히 갈 수 있을까?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문 정부는 그동안 코로나 19, 당면한 민생 문제는 외면 한 채, 임기 내내 적폐청산, 검찰 개혁을 내세우며 윤석열 검찰총장 죽이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말 할 수 없는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말이다. 일자리 창출, 부동산 문제, 평화통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등 포부는 원대했으나, 지금 황혼기에 접어든 시점에서의 성적표는 부진하기만 하다. 긍정적으로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보다는, 부정적으로 과거를 무너뜨리는데 만 몰두했다.

문 정부에 대한 진단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다음 세대에게도 미래의 밝은 꿈보다는 빚만 남겨주는 형국이 되어가고 있다. 지나온 시간들은 갈등과 대립, 그리고 투쟁으로 점철된 영욕의 날들로 기억되어질 것이다. 그런대도 ‘양산’으로 무사히 귀향 할 수 있을 까? 정치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는 자유로운 삶의 가치와 같다. 그런대 대한민국이 지금 민주주의가 지워져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에 없는 것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문 교주로 하는 ‘문빠 종교집단’이고, 또 하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관심법’이다.

민주주의는 앞서 언급한대로 목적이 아니고 절차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치열하게 토론하고 대립하지만 결국은 타협과 양보를 통해 적절한 차선을 이끌어내는 것이 민주주의의 참모습이다. ‘나는 절대 옳고 너는 절대 틀리다’는 사전적 ‘선악’의 논리는 민주주의가 절대 아니다. 그래서 절대선, 내 편만 믿고 이를 반드시 달성하려는 연역적 접근 방식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종교적(?)신념에 가깝다. 따라서 일방적 다수결로 정치를 이끌어가는 대의 정치는 엄밀히 말해 민주주의의 참 모습은 아니다. 과거 유신독재 시대에 유정회를 앞세워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다수결의 논리로 무리하게 정치를 이끌어가다 몰락한 뼈아픈 기억을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소수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처럼 국민의 힘뿐만 아니라 정의당, 국민의 당 등 소수당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가며 설득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참된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청와대와 집권 여당은 왜 전국의 교수들이 신조어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올해(2020)의 사자성어로 선정하고 ‘후안무치(厚顔無恥)를 2위로 선정했는지, 한번쯤은 돌이켜보아야 할 것이다. 나만(내편)옳고, 다른 사람(네 편)은 틀렸다는 판단이 올해를 휩쓴 현상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언을 굳이 들지 않아도 독선과 아집은 민주주의의 독버섯으로 자라게 된다. 강한 강철이 부러지기 쉽듯이, 다수 국민이 원한다는 주장은 독선에 취한 착각의 유혹이다.

“어둠으로 밝음을 대신한다면/여우와 너구리만 창궐한다네.” 시경(詩經)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를 풀어쓰면, ‘임금이 음험한 그늘에 들어앉아 있으면, 신하들 역시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들로 채워진다.’는 비유다. 칼럼을 쓰면서 요즘처럼 비애감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던 같다. 그야말로 홀로 싸우는 외로운 독립투사 같은 기분이다. 현 정권을 보면서다. 현 정권은 비상식선에서 아예 귀를 틀어막고 들으려하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도 보려들지 않는다. 거대 의석을 가져 오만 탓인지, 피해의식 탓인지 아니면 둘 다 해당되는지 몰라도 자기들과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악’ 이 되고, 들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많은 국민(저들은 이들을 소수 적폐세력으로 몬다.)이 분노하고,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데도, 목소리 큰 극렬 지지층(저들은 이들을 다수 국민이라고 오판)에 사로잡혀 대놓고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잘못을 모른다. 오히려 삿대질을 하고, 큰 소리를 친다.

국회부터 개혁해야함에도 검찰개혁, 판사개혁, 나아가 언론개혁까지 들고 나온다. 부동산, 탈 원전 정책, 반 기업적 경제 정책 등 무능함이 드러나는 데도 안타깝게도 국민들은 침묵하고 있다. 임기 내내 매달린 검찰개혁, 정권 출범 초부터 집요하게 매달리더니, 지금은 뭐가 개혁인지 모를 정도로 인지부조화의 진창에 빠졌다. 많은 국민들이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 검찰개혁이 실천은 어렵지만, 요약하자면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그런데 그걸 하겠다는 검찰총장을 몰아내는 게 문 정권의 지상과제가 되었다. 추미애 장관부터 여권 의원들 심지어는 피의자 신분으로 있는 의원들까지 나서 윤 총장을 죽이겠다고 발버둥 친다. 그러면서 윤 총장 죽이는 게 개혁이라고 어깃장을 놓는다. 왜 저토록 윤 총장을 죽이지 못해 안달인가?

보통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을 할 수 있다. 검찰이 파헤치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원전, 울산시장 선거, 라임 옵티머스 비리 등 일각을 드러낸 의혹만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니 칼자루를 쥐고 있는 총장을 제거하려고 한다. 검찰총장만 쫒아냈다고 될 일이 아닌데도,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고, 해와 달이 없어지겠는 가. 구린 게 많으니, 원래 개혁은 물 건너 가버리고, 애꿎은 검찰총장이 대선후보 1위 로 올라가는 촌극이 빚어지고, 그렇게 되니 더욱 더 발악하게 된다. 문 정권이 이렇게 무법지대가 되어 많은 궤변과 오기, 무리수들이 판을 치며 기세 등등 한 것은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이 그늘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 까닭이다. 최고지도자가 명확하게 지침을 내리지 않고 있으니 생각이 곧은 측근보다 ‘사(詐, 혹은 私)’가 낀 자들이 앞에 나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좋은 말만 골라 국민에게 약속한 게 많다. 그러나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임기 내내 외쳤던 적폐 청산이 왜 실패를 했겠는 가. 이유는 간단하다. 적폐 청산의 가장 쉬운 해결방법은 적폐라고 생각되는 것을 나부터 하지 않으면 된다. 결과적으론 실패를 했다는 것을 부인해선 안 된다. “세상에는 두 가지 일이 있다. 모두가 그르다 할 때 옳은 게 없는지 살피고, 모두 옳다 할 때 그른 게 없는지 살펴야 한다.(天下有二 非察是 是察非)” 나만 옳다는 독선과 내 편만 옳다는 만용 앞에 세상은 필연적으로 파멸의 길을 예비하고 있다. 끝이 낭떠러지인 그 길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외길이다. 운이 좋으면 조금 늦게 추락할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되풀이 되고 있는 비극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문 정부는 지금이라도 말년을 잘 보내려면 ‘비찰시, 시찰비’의 지혜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실책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통령의 결단이다. 결단의 주체가 누구인가. 결단을, 내려야 할 대통령이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못된 버릇이 있는 것 같다. 부동산은 김현미, 윤 총장 죽이기는 추미애를 앞세워 놓고 그늘에 숨어있다. 그러나 광(光)나는 일에는 직접 나서는 스타일이다.

1차 코로나 위기 땐 청와대에서 부부가 박장대소하며 짜파구리 파티를 했고, 최근까지 각국 정상에게 ‘K방역’을 자랑했다. 또 민주노총 집회는 놔두고, 신천지와, 태극기 시위는 엄중 봉쇄, 그 책임을 물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양 분화하는데도 일조를 했다. 세월호 아이들에겐 “고맙다. 미안하다.”고 되뇌던 대통령이 정작 17세 청소년이 코로나 지옥 대구에서 치료 한 번 못 받고 숨졌지만, 그 현장에서는 대통령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단 한사람의 죽음도 국가가 책임지겠다.” 던 그의 말은 다른 공약(空約)처럼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여당의 전 대표는 앞으로 20년 집권을 강조했지만 문 대통령은 앞으로 20년 민주주의의 갈 길을 고민했으면 한다. 이제 1년여 기간이 남아있다. 자신이 말했던 취임사를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남은 날들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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