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억울하면 출세를 하라’는 대중가요가 세간에서 불러졌던 기억이 난다. 그 시대의 흐름을 말해주는 듯 요즘 말로 ‘을’의 사람들이 울분을 터트리며 즐겨(?) 부르던 애창가요였다. 6~70대의 세대는 기억 할 ‘억울하면 출세하라’ 는 이 말. 1969년 제작된 심우섭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한 ‘억울하면 출세하라’ 는 이 말은 ‘을’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세속적으로 성공한 이들의 오만함이 배어있는 것 같아 언제 들어도 거부감과 함께 불쾌한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도 부분 적으로는 동의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엉뚱한 말로 들릴지 몰라도 기회비용을 지불할 각오가 서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선택, 소유 할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이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분별할 줄 모르는 것 같다. “우리 ‘이니’하고 싶은 거 다해.” 지난 대선 무렵 이런 구호가 난무했다. 문재인 신임 대통령이 뭘 해도 지지하겠다는 열혈 지지자들의 무조건적 무모한 애정 표현이었다. 그런 광신도(狂信徒)급 지지자들 덕분에 176석 공룡여당이 되면서 헌법 개정 외엔 못할 것이 없게 됐다. 잘 쓰면 위기 극복의 보약이요, 잘 못쓰면, 독약이 될 거대 의석이다. 그런 여당이 먼저 국회를 힘으로 밀어붙이며 제 1야당 원내대표를 국회 밖으로 내몰더니 이제 정부 형벌기구의 수장인 검찰총장을 흔들어 쫒아내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눈에 거슬리고 발에 차이는 것들은 모두 제거하려는 모습이다.

1인 독재보다 더 무서운 게 1당 독재다. 앞서 청와대의 독주를 우려했는데 이번 총선 이후 과반수이상 의석을 차지한 집권당이 차기 권력까지 최소 10년 천하를 거머쥔 듯한 망상에 빠져 칼날을 함부로 휘두르는 폭주가 참으로 위험스런 느낌이 든다. 역사적으로 거대 정권은 바깥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권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내려 앉았다. 더듬어만지당으로 전략한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서 그들의 정책 모두를 국민들이 다 승인하고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윤석열 쫒아내기’로 변질시킨 집권 여당의 노선을 유권자인 국민이 수용했다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검찰총장은 헌법상 그 임명이 국무회의의 17개 심의사항 중 하나로 나열되어 있을 만큼 엄중한 자리다. 법률상 2년 임기(검찰청법 제 12조 3항)가 보장되는 자리다. 이는 검찰 총장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살아있는 권력의 부패와 권한 남용을 척결하라는 법 정신을 부여한 것이다. 검찰총장은 장관급이지만 정무적인 이유로 언제든지 권력자 맘대로 면직 시키는 일반 장관과는 다른 위치에서 더 많은 지위와 안전성이 요구되고 독립성을 인정받는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의 ‘윤석열 검찰총장 흔들기’가 상식과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면서 단순히 정치공세 차원을 뛰어넘어 법에 보장된 검찰의 독립과 중립을 입법부와 사법부가 스스로 훼손 할 위험성마저 엿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해 7월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전달하면서 “우리 윤 총장님” 이라 부르며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 여당이든 비리가 있다면 엄정하게 임해주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까지 했다. 여당 인사들도 극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조국 전 민정수석의 불법과 비위 의혹이 불거지면서 법에 따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한 윤 총장을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은 ‘눈에 가시처럼 미운 털’로 여겼다. 유리 할 때는 내 편이고, 불리 할 땐 적이라는 편향된 인식을 드러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조국 관련 피의자신분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 된 인사는 당선으로 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쥔 것처럼 윤 총장에 대한 ‘복수’를 외쳤다. 그에게는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공수처가 마치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복수의 칼날이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추미애와 윤석열의 갈등’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법령 하나가 대한민국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국민들에겐 그다지 관심이 없을 법한 검찰청법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 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핵심은 검찰총장의 권한과 임기에 관한 것이다 미래통합당은 조수진 의원(초선)이 대표로 나서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게 구체적 사건 지휘를 할 수 없다’ 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을 발의했다. 장관이 유일하게 검찰의 수사를 지휘하는 방식을 규정한 현행법 8조를 수정해 검찰의 완전한 수사 독립을 보장하겠다는 취지가 담겼다.

반면 조국을 존경한다는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초선)은 감찰 담당 검사의 독립성과 직무수행 우선권을 보장하고, 검찰총장이 감찰 사무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을 막는다는 내용을 담은 검찰청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 했다. 발단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정치자금 수사 관련 진정 사건이다. 이와 관련 추미애 장관은 “한 총리에게 불리하게 위증을 하도록 검찰이 시켰다”고 주장한 검찰 측 증인에 대한 조사를 대검 감찰부가 담당하라고 지시했지만 윤 총장이 징계시효(5년)가 지나 감찰부 소관이 아니라며 서울중앙지검 인권 감독관 실에 맡기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이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5년 ‘천정배 법무장관- 김종빈 총장’ 갈등과 닮은 측면이 있다. 당시 천 장관은 “6.25전쟁은 통일 전쟁” 등 발언을 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 받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 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검찰의 구속수사에 대해 거부를 한 것이다. 서면으로 내려진 헌장 사상 첫 수사지휘권 행사였다. 결국 지시는 받아졌지만 김 총장은 취임 6개월 만에 스스로 총장직을 내려놓았다. ‘한명숙 뇌물 수사 검사의 위증 교사 문제’도 개인적인 입장에서 참 허무한 스토리다. 한명숙 뇌물 사건은 10년 전 일어났고, 5년 전 대법원 전원 합의부에서 조차 유죄로 판결났다.

또 당시 윤석열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던 한직 검사에 불과했다. 수사 검사에게 위증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한 두 사람은 각각 마약, 보이스 피싱 사범 형과 사기, 횡령,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22년형을 살고 있는 중범 죄인이다. 현재 복역 중인 전과자들의 번복된 증언만 듣고 현직 검사를 마치 죄인인 양 몰아가며 윤 총장의 목을 죄는 법무부의 판단력이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최근 한국 법원의 일부 판결들이 여론의 도마에 올라 씹히고 있다. 대법원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TV토론회에서 허위 발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중시했다며 무죄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상식에서 벗어난 판결이다. 물론 그가 여당 소속이며 대선후보로 떠오른다는 이유만으로 권력 영합 형 판결이라고 속단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의구심을 갖게 되는 건 온전히 판사들의 정치적 행보 탓이다. 양승태 대법원 구성원들, 면면을 보면 그들을 공격해 얻은 명성을 무기 삼아 의원 배지를 달고 여의도에 입성한 판사들이 대표적이다. ‘보은 판결’ ‘공천 기대 판결’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안 생기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전 채널 A 기자에 대한 구속 결정도 새롭게 돋보이는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구속 여부 판단은 고유 권한이긴 하지만, 법원이 “검찰, 언론의 신뢰 회복을 위해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하면서 특정정당 대변인을 방불케 하는 모습은 이해 할 수 없다. 결국 KBC가 오보를 인정했다. 박원순 전 서울 시장 성추행 사건 수사도 지지부진한 것도 이해가 안 된다. 청와대와 여당은 고인이 된 전 박 시장을 ‘맑은 분’으로 칭송하며 관(官)의 주도하에 별도의 분향소를 만들고 추모사를 발표하면서도 그의 성추행에 대해서는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조차 없다.

법이 판사 개개인을 독립헌법기관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듯 판사도 ‘정치적 중립’에 가치에 대해 가장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법조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종 심판자’가 누군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다고 비판을 받는다면 본인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억울하게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불행한 자를 만드는 것은 커다란 범죄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이제라도 이 정권의 목엣 가시 같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쫒아내는 일에서 손을 떼기를 바란다. 추 장관의 행태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법무부 본연의 임무인 국민 개개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에만 집중했으면 좋겠다. 당장 성추행 2차 피해에 떨고 있을 여성들을 자신의 딸처럼 지켜줘야 한다.

이번 성추행 사건도 처벌을 할 순 없지만 조사는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밝히기를 바란다. 침묵하고 있는 문 대통령도 이제는 윤 총장의 거취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윤 총장에게 “그동안 할 만큼 했고 상황이 바뀌었으니 그만 두었으면 한다.”라든지 청와대, 당, 정에 “검찰 개혁의 충정은 알았으니 총장을 더 이상 흔들지 말라.”고 하든가 한쪽을 선택할 때다. 또한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공수처 설치이유도 밝혀야 한다. 분명한 대통령의 의지를 국민들은 보고 싶어 한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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