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떼려다 붙인 ‘슬리머’ 행정소송 취하 속사정

식약청, 불쾌한 심기 드러내…내년 승인 여부 불투명
한미약품 고위관계자 "어떤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 연막

장고(長考) 끝에 악수를 둔다고 했던가.

한미약품(회장 임성기)의 비만치료 개량신약인 ‘슬리머(메실산 시부트라민)’가 끝내 수렁에 빠졌다.

허가 여부를 놓고 식약청과 날카롭게 각을 세웠던 이 약물은 지난 2003년 물질특허가 만료된 애보트사의 살 빼는 약인 ‘리덕틸(염산 시부트라민)’의 염을 변경해 개발한 것.

리덕틸의 용도특허는 2013년까지로 아직 7년이 남아있지만 염을 변경하면 완전히 다른 약물로 취급돼 승인과 시판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는 이 약물에 대해 지난 2004년 12월 식약청에 품목승인을 요청했고 늦어도 올해안에 제품을 출시, 첫 개량신약으로서의 입지를 굳힌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식약청 중앙약사심의위원회가 2번의 심의 끝에 독성시험자료(발암성 시험) 미비를 이유로 올해 6월30일 품목허가를 반려하자, 한미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 7월 11일 식약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슬리머캡슐 품목허가신청 반려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동시에 감사원에 심사청구도 했다. 그런데 한미는 돌연 이중 행정소송 부분을 지난 8월 18일 취하해 버렸다.

그렇다면 한미약품은 소송제기 한 달 만에 왜 ‘취하’라는 선택을 했을까.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이런 저런 관측이 나오고 있다.

우선 식약청의 감정을 건드려서 얻을 게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테면 앞으로도 식약청을 상대로 허가 업무를 계속 진행해야하는 제약사 입장에서 ‘소탐대실’을 피했다는 분석이다.

또 하나, 법정공방이 장기화될 경우, 오히려 허가가 더 지연되고 이렇게 되면 다른 제약사들보다 후발주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을 반영했다는 시각도 있다.

예컨대 대웅제약, 종근당, 유한양행, CJ 등 상당수 제약사들이 내년 7월 약효재심사 기간이 만료되는 리덕틸의 개량신약을 준비 중이다.

약효재심사기간이 만료되면 까다로운 독성시험자료는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대웅과 종근당은 조만간 염을 변경한 시브트라민 제제의 임상 1상 시험 승인을 식약청에 요청할 예정이고 유한양행과 CJ는 이미 임상 1상 승인을 받은 상태다.

문제는 식약청이 한미측의 소송취하를 받아들일지 여부다. 식약청이 동의를 하지 않으면 소송 진행은 불가피하다.

식약청 관계자는 1일, 한미약품의 소송 취하 사실을 확인하면서 “한미가 소송을 제기한 줄 몰랐으나 법원의 통보를 받고 알게 됐다”며 “슬리머의 허가 반려통보는 정당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소송은 한쪽에서 취하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식약청이 이에 응해야 가능하다”며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식약청의 다른 관계자도 “허가 조건이 맞지 않아 반려된 것에 대해 감사원 심사를 청구하는 바람에 다른 업무까지 지장을 받고 있다”며 “리덕틸의 개량신약을 준비 중인 다른 제약사들도 있기 때문에 이번 문제는 명쾌하게 집고 넘어가야한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의 ‘돌출행동’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셈이다.

따라서 만일 식약청이 이번 소송취하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한미약품의 슬리머는 혹을 떼려다 붙이는 꼴이 된다.

한편, 한미약품측은 슬리머 파문이 새 국면을 맞으면서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등 만일에 불거질 수 있는 또다른 '불똥'을 경계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한미약품 개발담당 고위관계자는 1일, “슬리머 문제는 법률적 부분이어서 어떠한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다 밝혀진 것인데 허가취소 여부만이라도 확인하자”고 재차 주문하자, “답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