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춘풍지기추상(待人春風持己秋霜).’ 이는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하고 자기를 갖기는 가을서리처럼 매섭게 하라’는 뜻이다. 문대통령의 행태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어찌 하나 같이 ‘문로남불’인지 이해가 안 된다. ‘자신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하면서 남에게는 가을서리처럼 매섭게 대한다.’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문 정권에 대한 논쟁은 격렬하다.

두 갈래로 갈린 찬반 대립은 거칠기만 하다. 애증의 갈림은 더욱 가파르다. 정권의 임기 절반을 넘어섰지만 먹구름이 드리워있다. 그런 시점은 국정 장래의 궁금증을 키울 뿐이다. 민심의 긴박함과 격렬함이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못하다. 국정운영의 방향과 의지를 소상히 밝힌다면서도 국민의 의지와는 달리 엉뚱한 말로 긴 시간을 소모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상징적인 말로 진정성 있는 수사(修辭)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한 마디로 그의 말은 장황하고, 연출이다. ‘경제가 좋아지고, 아파트 값을 잡았다’ 며 미소 짓는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심은 충동을 느낀다고 하는 중생(衆生)들의 긴 한숨소리. 그런 말은 공허해진다. 그것은 민심의 신뢰를 잃게 한다. 비상식적인 일들이 연거푸 벌어져도, 기대 섞인 믿음이 깨져도 중생들은 동요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덤덤하다.

기대감 상실에 아예 포기를 한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조국 사태에서 국민을 통합하기보다는 분열을 방치해 진보. 보수 간 갈등을 더욱 깊게 한 장본인이다. 또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민생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도, ‘조국 사태’와 ‘국회 공수처’ 설치에 대해서는 월권을 하며 검찰과 야당을 질책했다.

여러 가지로 실책을 많이 했지만 그 중 가장 실속 없는 분야가 대북 정책인 것 같다. 북한이 한국을 아예 무시하고 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하며 문 대통령에 대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로 비난을 해도 그렇게 검찰과 언론, 야당에 대해 비난을 퍼붓던 청와대와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비핵화 약속을 철석같이 믿는 것 같다. 선(善)한 것인지 우둔(愚鈍)한 것인지 분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엊그제 김정은이가 남북이 서해 완충지역에서 포사격 훈련을 중지하기로 한 지난 해 ‘9.19군사합의’를 대놓고 위반했다. 김정은이의 행보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한국 해병대가 대응 포격한 연평도 포격전 9주기(지난 23일)를 즈음해 이뤄졌다. 군(軍)은 이 같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백령도, 연평도 등 서북 도서(島嶼)의 해안포와 함포포신에 덮개를 설치하고 포문을 폐쇄했다.

또 서북 도서에 배치된 k- 9 자주포, 천무 다 연장 로켓, 스파이크 미사일 등을 배에 실어 육지 훈련장으로 옮긴 뒤 포격 훈련을 하고, 이를 다시 배에 실어 서북 도서로 갖고 오고 있다. 그런데 포신을 막아놓아야 하는 곳을 김정은이 찾아 실 사격 훈련을 지시한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위반했지만 국방부가 도발을 알고도 북한이 발표 할 때까지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평양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남북 전이 ’무 관중. 무 중계‘로 치러졌을 때도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 말 한마디도 못하고 계약금환불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주한 외교단 초청 리셉션에서 “2032년 서울. 평양 올림픽까지 평화와 열기가 계속되도록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지지를 당부한다.”고 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기- 승- 전- 북한을 외치는 문 정권은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가진 만큼 결국 비핵화가 이루어져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다. 김정은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좀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의 능력이다. 북한은 한국을 초토화 할 수 있는 핵무기를 수십 기 갖고 있고, 지속해서 미사일 도발을 하며 휴전선 부근에는 수도권을 타격 할 수 있는 장사정포를 이미 배치해 놓은 상태다. 이 명백한 사실에 기초해서 북한에 대응하는 것은 국가원수의 직무이자 의무이다.

국민은 문 정권의 ‘김정은에 대한 구애’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문전박대하는 북한에 끌려 다니며 눈치를 보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대화의 창구는 열어놓되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비하는 대통령을 원한다.

또 “남북관계는 제가 보람을 많이 느끼는 분야다. 2년 전만해도 자칫 전쟁이라도 터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지금은 대화국면에 들어서있다.”대북 정책은 그렇게 요지부동이다. 그러나 그 분야는 국민적 갈등의 원천이다. 다수 국민에게는 그 보람이 환멸이다. 2017년 상황은 과장이고, 선동이다. 그 무렵 전쟁위기론은 검증된 바 없다. 그 속에 트럼프의 허풍이 담겨 있었을 뿐이다. 문재인의 ‘평화’는 비굴하다. 평화, 평화체제, 평화 경제의 외침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그런 유화적 추파를 깔본다. 북한의 반응은 ‘삶은 소대가리’ 같은 막말이다. 문재인의 인내는 늘 되풀이되고 있다. 유독 북한에 대해 그런 끈질 긴 참을성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아버지의 고향이 함흥이라서, 이모가 사는 북한이라서? 북한은 문재인의 약점을 잡은 듯한 태도로 무시하는 언사를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그런대도 인내심을 보인다.

평화의 앞날이 매우 불안하기만 하다. 문 대통령은 유난스럽다. 문재인의 말을 신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력한 선장으로 말미암아 배가 파선이 될까 두렵다.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 2명이 강제로 북송되었다. 전대미문의 탈북자 북송은 공동경비구역의 한 장교(중령)가 청와대 김유근 국가 안보실 1차장에게 직보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만 천하에 알려졌다. 통일부와 국방부장관마저 배제하고, 청와대가 일사천리로 처리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통일부는 ‘그들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흉악범‘이라는 해명을 늘어놓았지만 대부분의 탈북자는 험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 땅에 올 수밖에 없다. 그들이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그 ‘흉악범들’은 현실에서 가해자라기보다 더 가혹한 환경의 피해자라 할 수 있고, 보호를 받아야 할 우리 국민이 아닌가.

이에 앞서 흥진호 피랍 납북어부 송환사건, 삼척 항에 입항한 어선과 어부들을 즉시 돌려보낸 사실 모두가 은폐의 의혹이 있는 사건인데 흐지부지 되었다. 북한에 장기 억류되었다 송환 엿새 만에 숨진 미국인 오토 윔비어의 부모가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지만 청와대가 거절했다.

이집트의 마지막 왕이었던 파루크를 떠올렸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이집트 파루크왕은 독일 나치에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 때 아돌프 히틀러에게 자기나라를 침공해주면 감사하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독일군이 영국군을 쫓아내 줄 것이란 기대였다. 독일과 이탈이아 등 추축국은 그의 부탁대로 이집트를 침공한다.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들을 향해 항전을 했지만 파루크 왕의 실정에 질린 군부가 그를 폐위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철군을 강행했다. 그 결과 터키는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소탕에 나섰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터키와 시리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만약 터키가 러시아와 가깝게 될 경우 러시아의 흑해함대가 지중해를 휘젓고 다니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사실을 트럼프가 충분히 생각했을까?

‘전작권’, ‘미군 철수’ 소리가 들리는 우리의 미래가 어둡기만 하다. 남의 나라 일만으로 생각 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유난스럽다. 민심의 국정변화 요구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자세는 완강한 거부다.

소득 주도 성장, 최저임금, 주52시간제,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에만 마음이 가있다. 이는 원리주의 권력 성향 때문이다. 이념형 집권자는 통합과 개방에 소홀했다. 문 대통령의 자기 미화는 그런 기세를 드러낸다. 역겹다. 우린 사실 상 대통령 무책임제다. ‘누가 뭐라 해도 내 맘대로 한다.’는 권력사유화가 판박이였다. 그 권력을 놓지 않으려다보니 쫓겨나거나 총에 맞거나, 감옥에 거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누구하나 행복한 결실을 맺지 못한 우리만의 독특한 대통령 문화는 여기서 끝났으면 하지만 필자만의 희망일 뿐이다.

임기 절반이 남았다. 대통령은 공정 사회를 주문한다. 그야말로 소가 누워서 웃을 일이다. 올바른 처방은 정확한 진단에서 나온다. 말잔치에 불과하다. 여전히 남 탓이다. 문 대통령은 바뀌지 않는다. 그 점을 실감한 것이 역설적인 소득이다. 그것은 소용돌이의 나라 장래와 대통령의 운명도 예고하고 있다. 이념적인 대통령을 신뢰 할 수 없다. 자업자득이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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