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태극기 부대가 모인다. 서울역에서 숭례문을 거쳐 시청광장, 광화문, 심지어는 사직공원으로 가는 도로에 태극기 깃발을 든 사람들이 줄지어 걷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성조기를 함께 든 사람들도 눈에 띈다.

어린이 음악대를 연상시키는 큰 북을 가슴에 메고 두드리며 걷는 사람도 있다. 농악기로 흥을 돋우는 사람들도 있다. 중간 중간 선도하는 방송 차들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한다.

금방이라도 무슨 변고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이 집회가 어림잡아 90회가 넘는 것 같다. 이 같은 집회에 대해 공감하고 말고는 다음 문제다.

안타까운 것은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의 도심에서 매주 수천 수백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고 있는데도 정신 나간 사람들, 친박 보수 패거리들의 엉뚱한 주장으로만 치부하며 외면한다는 것이다.

언론매체는 물론 정치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일들만 하면 되는 건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린 암흑의 정치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라고 외쳤다.

문 대통령은 자신을 ‘촛불 대통령’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촛불만의 세력은 아니란 점을 감히 지적하고 싶다.

당시 ‘촛불’은 낡은 체제, 적폐를 일소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애원하는 순수한 ‘촛불 정신’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 집권 이후 정말 촛불의 염원대로 ‘국민 통합’ 이 시작되었는가. 아니다 여민 관 집무실의 일자리 상황판처럼, 문 대통령도, 청와대도, 촛불 세력도 이미 잊어버린 단어가 된 것 같다.

통합의 첫 번째 조건은 말할 것도 없이 ‘탕평 인사’다. 그러나 ‘캠코더(문재인 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는 들어봤어도 ‘탕평’이란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청와대 비서실 인선을 두고도, 전임자와 후임자가 누가 더 ‘친문’인가 경쟁했다. 화급한 국정 과제인 일자리정책이 실패했음에도, 인사는 여전히 코드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외교와 국방은 전(前) 정부를 뒤집는 것이 절대 기준으로 됐다. 전문가를 내치고, 비주류, 주사파, 운동권 인사로 채우기에 바빴다.

오죽하면 문희상 국회의장마저 “이제부터는 인연으로 ‘인사’한다든지, 보상 인사는 끝내고 전문가를 써야 할 시기라고 주문을 했겠는가. 그러나 그 역시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

(故)박정희 대통령이 장기 독재를 했다고 하지만 수많은 인재를 발굴했다. 반대 진영의 인사까지도 끌어들였다.

년 초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경제 상황이 엄중하다고 강조하면서도 기조를 바꾸지 않으려는 자신감의 근거가 뭐냐”고 질문했다. 당연히 나올만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30분 내내 드린 말씀”이라며 “새로운 답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고 묵살하며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통령이 태극기 집회의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게 아니다.

문 대통령이 과거 촛불 집회, 세월호 유족들의 집회 때처럼 달려가 함께 단식하고, 마이크를 잡으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래도, 아무리 거북한 주장을 해도, 그 수천수만의 시민들 역시 대통령이 통합을 약속한 우리 국민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누가 진보이고, 누가 보수인가의 아무런 기준도 없는데, 자기편 아니면 무조건 진보이거나 보수라고 여기면서 무조건 싫어하고 미워한다.

자기편이면 무조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그런 심리가 가득 찬 세상이 오늘이다. 어떤 이유로 세상이 이렇게 두 편으로 나뉘어 남의 편은 증오하고, 내 편만 한없이 좋아하는 세상이 되었는지? 국민을 혼란에 빠트리는 정치인들이 문제다.

제발 정치인들이 사심을 버리고 공정성을 되찾아 이치에 합당하게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에도 가담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권 3년 차 되는 문 정권은 ‘촛불 세력’을 너무 믿은 나머지 독주(獨走)를 하며 안보는 물론 경제까지 위기로 내몰았다.

그뿐만 아니라 명예를 중시하며 사는 군인에게도 선거판이나 기웃거린 타락한 정치군인으로 전락시켜 죽이려 한다.

북한에서 ‘전쟁광 김관진’을 처단대상 1호로 지목하고 불안해하는 전 국방장관 김광진을 검사가 ‘정치 관여 직권남용 혐의’로 최고 형량인 7년을 구형했다.

결심공판은 오는 21일이지만,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을 만큼 불안하다. 김정은은 김관진을 매우 두려워했다. 그런 김관진을 문 정권이 마치 보은을 하려 듯 죽이려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이른바 3대 응징방침. 즉 ‘도발 원점 타격’ 적 지휘부 공격‘ ’선 조치 후 보고‘를 평시 훈련에서 시행한 장군이다.

압도적이면서 정밀한 군사력으로 뒷받침된 아덴만 작전의 성공, 서해상에서 한국 해군의 확고한 대처에도 김정은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2015년 목함 지뢰 사건으로 우리 병사 두 명의 다리를 절단했어야 할 때 김관진은 청와대 안보실장이었다.

대치상황에서 북한군이 불을 뿜는 순간 10배 이상의 한국군 응징 화력이 작동하면서 김정은이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 서면으로 유감을 표명하지 않았던가.

자나 깨나 대북억제력만 생각하던 군인이 죄인으로 바뀌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세상이 얼마나 얄궂게 변했으면 적을 응징한 장군들을 너무 많이 잡아넣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에는 기무사 사령관이 명예를 더럽힌 자괴감으로 자살까지 하지 않았는가. 아무래도 문 대통령이 사냥감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아무리 많은 재산과 권력을 지니고도 방탕해지지 않고, 아무리 가난하고 천해도 자신의 절개를 바꾸지 않는,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독립운동가들, 애국지사들, 민주투쟁가들 그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죽일 수는 있어도 그들의 뜻을 꺾을 수 없었던 것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어떻게 해야 그런 용기를 실천할 수 있을까? 아무리 무서운 위엄과 무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인간이 바로 의지를 빼앗기지 않는 군인이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뜻을 지키고 자신의 주체성을 끝까지 확보하는 일이라 했으니, 우리로서야 가슴이 뛰고 부러움이 앞서지만 미천한 사람들은 그렇게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소수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 가운데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약자들도 있다. 그래서 대통령은 그 목소리를 듣고 보듬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갈등을 풀고, 하나로 묶으려는 통합 노력이다. 그게 정치고 대통령이 할 일이다. 한 마디 더 붙인다면 대통령은 통합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대통령이 앞서서 갈등을 부추기는 듯한 행보는 하지 않아야 한다. 진정한 대통령이 되려면 자기 자신을 비워야 하고, 국민이 뽑은 만큼 공직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 문 대통령은 오직 적폐청산이라는 미명아래 정적을 제거하기에 바쁜 일정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연산군 시절 인조반정이 생각난다. 지금이 그런 분위기인 것 같다.

문재인 정권을 향한 분노를 강력하게 표출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새 한국)가 3월 1일 오후 1시에 광화문 동아일보사 옆 차도에 중앙무대를 설치하고 <문재인 하야촉구 범국민대회>를 갖기로 결의했다.

이날 대통령 하야촉구 백만인 서명운동도 함께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육사. 공사. 해사. 3사 ROTC. OCS 구국동지회. 해병대가 광화문에서 문재인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바 있다.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 단 415명이 전쟁기념관에 모여 국민 대토론회를 갖고 정권의 반역행위가 계속되면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임기 전 반드시 퇴진시키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가 위기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며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문 정권을 바라보며 고사성어 반근착절(盤根錯節)이 떠오른다. 협상과 양보는 얽힌 뿌리와 가지를 헤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련만 그것이 좀처럼 쉬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 실패로 생긴 1백만 청년 실업자와 최저임금제로 인한 중소기업체와 영세업자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진정 무엇이 더 국민들에게 중요한지를 알았으면 한다.

국민들의 원성에 목소리가 극에 달해 문 대통령이 과연 임기를 채우게 될지 우려된다. 공약도 지키지 않는 문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심판은 준엄할 것이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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