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8일 연세대 동문의 덕으로 모처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음악회를 관람 할 기회가 있었다. 예상 외로 콘서트홀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2층까지 청중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올드 팝 매니아를 위한 추억의 올드팝 콘서트’ 라서 일까, 대부분 중년들이라는 것도 이날 공연의 분위기를 감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공연은 올해로 창단 10주년을 맞이하는 그룹사운드 Milestones(구, Evergree)가 잠시라도 도심의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이른 봄, 청중들이 그 옛날 즐겨듣던 음악과 학창시절을 회상하면서 Group Sound 마일스톤스(Milestones)가 연주하는 우리 시대의 올드팝을 감상하며 추억의 노래에 잠시라도 흠뻑 젖어보는 시간을 위해 마련한 음악회다.

2004년 7인조 보컬그룹사운드 ‘Evergreen' (리더 이상래)으로 창단한 이래 현재까지 매년 전석매진의 정기연주회와 수많은 크고 작은 연주, 앵콜 무대 등 국내 최고의 올드팝 전문 7인의 보컬그룹 사운드다. 특히 창단 10주년기념으로 열린 이번 콘서트에는 창단 멤버가 모두 다 모여 7~80년대 가장 인기를 누렸던 레퍼토리와 10년 이상의 연주경력으로 최고의 연주를 선보이면서 청중들을 즐겁게 했다.

김광한(DJ)의 사회로 시작된 이날 공연은 1부, 2부로 나누워 열렸는데 매 곡이 끝날 때마다 청중들은 ’부라보‘ 를 외치며 뜨거운 박수를 오래도록 쳤다. 음악엔 다소 무지하지만 그들이 열창하는 노래를 듣다보면 성량이 풍부하고 화음에 조화를 이루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특히 찬조 출연한 상송가수 이미배의 경우 곡이 끝나자마자 뜨거운 박수와 함께 ‘앵콜’을 외치기도 했다. 오페라나, 뮤지컬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농익은 곡들은 마치 숭늉이나 된장찌개를 먹듯 개운했고 젊은 추억을 만끽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2부 막바지에 ‘What i'd say’ 와 ‘Obladi Oblada’ 를 부를 때는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가 되어 튀우스트를 추면서 모처럼의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그 여흥에 취해 불이 켜졌는데도 청중들이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오래 전 소프라노인 큰 딸이 음악회를 할 때가 문득 떠오른다. 박수다. 박수는 관객이 연주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수고한 연주자에 대한 격려와 감사이자 그날의 연주에 대한 청중의 평가다. 그러니 훌륭한 연주일수록 박수는 길어지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것은 연주자와 관객 사이에 발생하는 미묘한 심리게임이다.

예를 들어 연주자들은 청중들이 박수를 계속 치고 있는데도 무대에서 나가기도 한다. 박수를 받기 싫어서가 아니다. 이 세상에 자기 연주에 대해 청중이 환호하는 것을 거부하는 연주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자가 한두 번 인사를 하다가 무대 밖으로 나가는 것은 역설적으로 다시 무대에 불려나오고 싶어서다. 흔한 말로 ‘커튼 콜’ 이다. 즉 박수가 끊이지 않아 다시 불려 나오는 상황을 연출하려는 것이다.

오늘 연주에 커튼콜을 몇 번 받았나 하는 것은 연주자들에겐 매우 중요한 성적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박수는 청중이 연주자의 앵콜을 원한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어느 곳이든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지켜야 할 예절이나 관습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음악회장의 에티켓은 좀 유별나다고 할 수 있다. 연주의 질과 상관없이 모든 연주자에게 적당히 후하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웬만하면 체면을 살려주는 입장에서도 박수를 쳐주어야 한다.

못했어도 못했다고 야유를 보내지 않는 것이 관대함이자 미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공연이 끝났을 때 출연자들이 모두 나와 청중들에게 인사를 할 때의 그 뜨거운 박수소리는 연주자들의 피로를 모두 풀어주는 청량제다. 그 같은 박수가 그들에게는 커다란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도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있어 그 같은 희열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따라서 청중들은 그들의 열정을 인정하며 박수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음악회장에서 청중의 매너다. 공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는 가족들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연주자들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워진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내와 성악가로서 모텍트 합창단 단원이기도 한 딸 덕에 음악회를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마다 합창을 하기 위해 무대에 늘어선 단원들을 보며 느껴지는 것이 있다. 저들 중에는 독창에 뛰어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독창에 자신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목소리만 낸다면 아름다운 합창의 멜로디는 기대 할 수 없을 것이다. 소프라노, 바리톤, 테너, 거기에다 악기까지 서로 훌륭하게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합창이 탄생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도 합창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이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마음을 바로 쓰지 못하고 제 잘난 맛에 툭 튄다면 그 재능은 오히려 화(禍)를 자초 할 수도 있다. 평화롭고 즐거운 사회란 재능 많은 어느 한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 쓰고 자기의 역할 기능을 충실히 하며 조화를 이룰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예로 시계의 톱니를 보자. ‘초침’ ‘분침’ ‘시침’ 에 역할을 하는 톱니가 서로 맞물려 회전을 해야 만이 시계로서의 역할을 하며 가치로서 존재 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의 역할을 다르게 맡는 톱니들이 서로 자신이 최고라며 제 멋대로 움직인다면 그 시계는 시계로서의 가치 상실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버려질 수밖에 없다.

인간 역시 서로가 잘 났다며 독불 장군격으로 합심하지 않으면 반드시 부작용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조직체란 하나의 유기체다. 그래서 피가 흐른다. 그 피는 따뜻해야만 한다. 따뜻한 피가 순환되는 조직체란 ‘정’(情)이 있게 마련이고 그런 정은 바로 조직원간의 유대관계를 긴밀히 계속해주는 결속력인 것이다. 인간 본질은 선하다고 생각하기에 순간순간의 갈등을 참을 뿐인데, 오히려 작금의 세상은 그렇게 보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녕 숲속을 보기보다는 겉의 나무만 바라보며 남을 쉽게 속단하는 것 같은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자기 자신을 돋보이며 위로를 받고자 하면서도 남을 위로하고 이해하기에 앞서 시기와 모함과 질투 속에서 약한 자를 짓밟으며 자신만이 살아남기 위한 용트림을 한다.

아무리 비싼 금 젓가락이라 할지라도 한 짝일 경우, 두 짝의 나무젓가락에 비하면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다. 젓가락이란 두 짝이 있어야 활용가치가 있고, 존재 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다. 따라서 이 사회도 합창단과 마찬가지로 서로가 화음의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밝고 명랑한 세상이 되리라고 본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살아가면서 누군가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는 박수를 받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질투나 사랑만큼 강렬하다. 인생을 살아갈수록 더욱 그렇다.

오늘 하루, 이 시간, 뜨거운 박수를 받고 싶은 가. 그렇다면 최선을 다 해 인생을 연주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청중들이 그대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박수와 앵콜은 그런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다.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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