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금 분명히 위기에 처해 있다. 국가의 기틀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국민 모두가 삶의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고 있으며 왜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조차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암흑의 미로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 정치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 사회도 그 균형이 완전히 깨져 어느 것 하나 온전한 데가 없다.

사회정의와 윤리도덕은 땅에 떨어진지 이미 오래 되었고 마지막 보루인 인륜마저 깨져나가고 있다. 국정원 사태도 그렇고 지방선거를 앞둔 정당,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의리도 없고, 원칙도 없고, 진실ㆍ정의도 없이 선거용 정당을 급조하는 정치인들의 ‘교언형색(嬌言形色)’에 그저 화가 치민다.

‘그 나물에 그 밥그릇’인데 당명만 바꾼다고 뭐가 달라진다는 것인가. 그리고 웬 정당에 사람은 없고 동물들만 있는지? 호랑이굴도 나오고 또 호랑이도 있고 토끼도 있고 사슴도 있다고 하니 가히 열린 입이 닫히지를 않는다. 과거에도 그랬듯 선거 때마다 새로운 당명의 정당 깃발이 우후죽순 올라가고 있다.

이런 급조, 합당 정당들의 행진은 민주화 이후 우리 정당사의 새로운 패턴이 되어 버렸다. 국민들이 어렵사리 이루어 논 민주화가 정치인들의 입맛에 따라 저급한 형태로 변질되어가고 있다는 게 안타깝기만 하다. 최근 새 정치를 추구하는 안철수와 60년의 긴 역사를 갖고 있는 민주당이 합당을 한 후 새로운 신당을 만들었지만 공당(公黨)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했다.

공당이라면 당연히 공공의 이익에 맞는 대의(大義)를 표방하고, 걸맞은 정책을 제시하고 이에 따른 지지를 국민들에게 호소했어야 맞다. 그러나 이번 신당 ‘새정치연합’을 보면 그런 면이 전혀 감지되지도 않을뿐더러 특정 개인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당(私黨)에 가까울 정도다. 선거철마다 급조정당이 출현하는 책임은 기존 정당들에 있다. 기존 정당들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으며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공천 과정의 문제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경우에도 각 정당이 아직도 명확한 공천 방식과 절차를 밟지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원칙 없는 공천 기준과 방식 제시, 계파 간 갈등, 당권 경쟁, 차기 총선에 대한 포석 경쟁 등으로 인해 정당들이 제대로 된 공천의 룰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새누리당을 제외하고는 각 정당들이 ‘기초자치단체 공천 폐지’를 주장하는 프랜카드를 거리마다 걸어놓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렇게 되다 보니 다른 정당들도 애매한 입장에 처해 있다. 이제 70여일 남짓 남은 선거. 지금쯤은 어느 정도 후보의 윤각이 잡혀야 하는데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너나 없이 예비후보들이 난립하면서 경제적인 손실도 크리라 본다. 그러니 예비후보자들이 공천의 룰도 제대로 모른 채 임시 사무실과 조직을 운영하느라 막대한 경비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공천에서 떨어질 경우 당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클까 상상이 된다. 공천도 그렇다. 심사위원들이 있다고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자격에도 문제가 많다. 그런 심사위원들이 공천한 후보가 과연 공정한 심사를 거쳐 결정 되었겠느냐 하는 것이다.

주요 정당의 중앙과 시ㆍ도별 공천 심사위원 구성을 보면 국회의원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어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의 논리에 따라 좌우될 우려가 많다. 국회의원들은 본의든 아니든 다음 총선을 위해 자신에게 협조적인 인사로 공천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 여건 하에서 공정한 심사가 이루어지기는 매우 어렵다.

이런 정치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도 새로운 급조정당이 생기고 또 이들 정당은 탈락자들에게 돈을 받고 공천을 주는 ‘공천장사’를 하면서 명맥을 이어간다. 탈락자들은 이래저래 급조정당을 먹여 살리는 토양이다. 올해도 도지사, 교육감, 시장, 시의원, 구의원, 교육위원 등의 선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런 선거가 과연 제대로 된 사람을 뽑는 선거라 할 수 있을까?

누가 누구인지 조차 모르면서 4년을 보고 찍는 게 아니라 한 순간의 생각으로 찍다보니 지도자로 뽑은 사람들이 개판을 치고 나라꼴이 우습게 되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급조정당과 공천장사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식으로 정당 정책도 무시하고 합당이나 연대를 통해 선거를 치룬다.

또 신청자들에게 수백만원의 비싼 심사비를 받는 것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다한 비용은 곧 부패로 연결될 수도 있다. 인재를 식별할 식견이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렇지도 못하니 그저 있는 재주, 없는 관심 다 가울여 ‘찰언관색(察言觀色 : 말을 살피고 표정을 관찰하여 속마음을 헤아린다.)’ 하여 투표하고 그나마 당선된 지도자들이 ‘부중치원(負重致遠 : 무거운 짐지고 멀리 갈 수 있어야)’의 인재가 되기를 하늘에 빌 수밖에….

투표를 안해도 누군가는 다수표를 획득한 사람이 된다. 다시 한번 유권자들이 내리는 표의 심판에 기대를 걸 뿐이다. 희망이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를 않는다.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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