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식 사장은 새롭게 나라가 건국되는 과정에서 나라를 위하는 큰 뜻으로 기업 운영을 멈췄다.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에 접어들어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겠다고 다짐했지만, 3년여의 공백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다. 게다가 동화는 만주 분공장의 생산 설비와 북쪽의 영업 기반까지 잃은 상황이었다.

보당 윤창식 사장의 모습

윤 사장은 어려움을 타파하기 위해 다시 인재 영입에 박차를 가했다. 탁월한 경영 역량을 보여주었던 남상갑 경리 책임자를 지배인으로 재영입 했다.

이미 회사를 떠나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윤창식 사장은 삼고초려 끝에 남상갑 지배인을 다시 동화에 합류시키는데 성공한다. 남상갑 지배인 영입을 시작으로 과거 동화에 몸담았던 다른 임직원들도 속속 회사에 합류해 새로운 동화를 만드는데 앞장선다.

만주 분공장은 잃었지만, 다행히 일제 강점기 때 사용해 온 서울의 생산시설이 건재해 이를 활용해 대표 품목 활명수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로 지방 유통업자와의 관계도 돈독했다.

원료 부족으로 고통 받는 기업이 많았지만, 동화는 2년 치의 약재를 비축해 원료 걱정은 덜 수 있었다. 안정적으로 재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셈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기반을 다지는 상황에 6∙5 전쟁이 발발해 다시금 위기를 맞게 된다. 전쟁의 혼란을 피해 부산으로 피난을 갔던 윤 사장 일가는 9∙8 서울 수복 후 서울로 돌아왔으나, 중공군 투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1∙4 후퇴 시 다시 마산으로 피난을 떠난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윤창식 사장은 마산에서 임시로 활명수 생산을 시작한다.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도 도매상들과 거래를 시작했고, 당시 의약품 유통의 중심지였던 부산국제시장에서도 인기리에 판매량을 올리기 시작한다. 유사상품이 많았지만, 부채표활명수를 향한 소비자의 높은 호응으로 브랜드 가치를 자랑한 시기이기도 한다.

1953년 전쟁이 끝났지만, 폐허가 된 서울에서 바로 생산을 시작할 수 없었다. 윤 사장은 심사숙고 끝에 1954년 9월 서울 공장 복구공사를 시작하고, 55년 서울로 돌아온다. 전쟁 기간이었지만, 활명수가 꾸준히 성장해 매출액과 당기 순이익 모두에서 경이적인 성장을 이루어 내며 저력을 보여주었다.

1960년 초 활명수 포장 작업 광경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윤 사장의 소신있는 경영은 이어진다. 당시에 미국을 비롯한 서양이 만든 원조 기관인 ICA에서 제약 업계 활성화를 위해 배당된 금액을 받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약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임이 분명했지만, 윤 사장은 외국 자본에 기대기보다 이윤을 재투자 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재건해 나가고자 했다.

활명수 등 기존에 생산하던 제품 외에도 1957년에는 감기약, 천식 치료제 등 11개 품목을 발해 제품 계열을 더욱 다양화한다. 이후 지속적으로 신제품 발매에 박차를 가한 결과 1962년까지 매출은 약 32.7배, 당기순이익은 약 18.6배 성장하며 경이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동화약품은 1961년 매출액 1억 환을 넘기며, 성장 가도를 달렸다. 1962년에는 사명을 동화약방에서 동화약품공업주식회사로 변경하며 새 시대 새로운 제약사의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다. 사명을 바꾸는 작업을 완료한 윤창식 사장은 그해 말 신병을 얻어 1963년 3월 13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윤창식 사장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동화를 인수한 후 일제 강점기, 광복, 6∙5 전쟁 등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도 회사를 성장의 반석 위에 올려놓는데 성공한다.

광복 후 공장 모습
‘좋은 약이 아니면 만들지 마라. 동화는 동화 식구 전체의 것이요. 또 겨레의 것이니 온 식구가 정성을 다해서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기업으로 이끌어라’는 경영철학을 실천해 동화에 제2의 생명을 불어넣었다.

직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던 윤 사장은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겼다.

초창기 그와 인연을 맺었던 대부분의 인사는 수십 년간 동화에 몸담으며 기업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점이 이를 반영한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철학과 소신은 오늘날까지 동화 정신으로 이어져 국내 최장수 제약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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