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과 변화, 극단의 길에서 ‘역사’로 남은 활명수

 

메디팜스투데이의 <이슈브랜드> 코너가 새롭게 변신합니다. 각 제약사별 대표 OTC 제품을 '의인화'하여 제품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편안하고도 자연스럽게 인터뷰 하는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편집자주]

신화를 보면 영웅의 탄생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반드시 난세에 태어나며 독특한 성장과정과 시련을 맞게 되고, 그 과정에서 조력자를 만나 위기를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112년 동안 국민소화제로 사랑받은 활명수는 그 탄생에서부터 성장과정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화 속의 영웅탄생의 스토리와 일정 부분 닮은 부분이 있다.

역사로 남아있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지금까지 ‘신화’를 만들어낸 과정과 미래의 신화로 남기 위한 과제를 들어봤다.

-먼저 활명수 본인의 소개를 간략하게 부탁드립니다.

초창기 활명수옹의 모습
다들 아시겠지만 저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약이자 신약입니다. 112년 전인 1897년 선전관 민병호 선생이 궁중의 생약 비방에 양약의 장점을 더해 위장장애로 고생하는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하고자 저를 만들게 돼서 제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됐죠.

태어날 당시만 해도 식체, 급체 등은 흔한 병이었고, 급체, 토사곽란(위로는 토하고 아래로는 설사하면서 배가 아픈 병) 등으로 사망하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그 당시 약이라고는 달여 먹는 탕약만 존재해서 약을 구하기 힘든 사람들이 많이 고생했죠. 근데 내가 나오고 나니, 소화불량에 뛰어난 효과가 있고 복용도 쉽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저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더라구요. 당시 제 이름이 두 개 였는데 하나는 만병통치약이었고, 하나는 제품명 그대로 ‘활명수’라 불렸어요.

약으로 백성(그는 당시를 생각하며 당시 소비자 층을 ‘백성’으로 자주 불렀다)의 사랑을 받은 건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합니다. 당시로서는 요즘 말로 꽤나 센세이션을 일으켰지요.

궁중의 비방의 약효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외형적으로 내적으로 변화를 시도했지요. 현재는 아선약, 육계, 정향, 현호색, 육두구, 건강, 창출, 진피, 후박, 고추틴크, 엘멘톨의 11가지 순수생약성분으로 제조되고 있습니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기존 약효에 탄산가스를 첨가해 청량감을 보강해 1967년 ‘까스활명수’로 옷을 갈아입었고, 1991년에는 ‘까스활명수-큐’가 나와 브랜드를 확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100년이 넘게 사랑 받아온 비결이 있다면?

정말 넘칠 정도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있어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판매된 양으로만 따지면 무려 81억병에 이르며, 지구를 24바퀴나 돌 수 있는 수량이니 실로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최근에는 내 자서전(활명수 100년 성장의 비밀)도 나왔는데 거기에 내가 이야기를 좀 추려냈으니 기자님도 시간되시면 한번 읽어보세요.

물어봤으니 답하는데, 내가 사랑받는 이유는 아무래도 한국인의 체질에 가장 적합한 소화제이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의 체질에 적합함이 약효로 입증됐기 때문에 많이들 찾는 것 같습디다.

다른 이유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트렌드와 식습관, 체질변화 등에 맞춰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해 온 것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소비자 지향의 마케팅 활동을 한 것이 사랑받은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활명수 옹의 역사는 과히 변화의 역사라 불릴 만큼 내외적으로 많은 변신을 시도했다.
-이미지 변신도 참 많이 하셨습니다. 변신과정을 설명해 주세요.

아무래도 소비자의 가치관과 트렌드는 끊임없이 변화하니까 제품의 로고나 라벨 역시 그에 맞춰 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1897년 활명수, 1967년 까스활명수가 출시된 이후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 디자인과 컬러 측면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부채표를 통해 브랜드아이덴티티를 강조하는 작업은 일관성 있게 유지해 왔죠.

최근 리뉴얼한 CI 부채표를 밝은 배경의 중앙 상단에 위치시켜 가시성을 높이고, ‘까스’와 ‘활명수’를 분리시켜 ‘까스’는 작게 ‘활명수’는 크게 표기하여 활명수를 강조했습니다.

제품의 고유 컬러인 Green은 밝게 처리하여 청량감을 주었으며, 전체적인 톤을 산뜻하게 변경했죠. 변신하는 이유는 1등 브랜드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늘 노력하는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어서다. 노력하는 자 만이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늘 노력하는 모습 때문인지 동일한 성분과 효능을 가진 약들도 많은데 1위 자리를 고수하고 계십니다. 마케팅에서 경쟁력은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셨습니까? 

내가 처음 나올 때부터 늘 1위의 아성에 도전하는 제품들이 많았죠. 한 때는 60여 종의 유사제품의 난립하는 상황도 벌어져 말도 아니었습니다. 나의 역사는 유사품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위기는 있었죠. 그러나 브랜드 파워라는 것이 한번 구축되면 정말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부채표 캠페인’으로 브랜드 차별화에 나서며 소비자들의 신뢰를 강화함과 동시에 소화제의 대표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광고 카피인데 이 광고로 동화약품의 고유 브랜드인 부채표와 활명수에 대한 인지도 상승과 매출에서도 대성공을 거뒀다.

국내광고역사에도 성공캠페인으로 불리는 ‘부채표 캠페인’을 10년 넘게 진행해 오면서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 '활명수=부채표=오리지널'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혀 ‘소화제의 대명사’로 확고한 자리를 굳혔다고 봅니다.

-아까 말씀 중에 위기가 있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그는 아직도 최초상표등록증을 가지고 다녔다. 인터뷰 당시 그가 보여준 상표등록증 원본 들.
초대 사장인 민강 선생께서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옥고를 치르다 돌아가시면서 내 인생에 첫 시련이 왔다. 그 때는 정말 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당 윤창식 선생이 생명을 살리는 좋은 약을 만들어 민중에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나를 맡았죠. 윤 선생은 사규를 마련해 조직을 재정비하고, 해외진출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저를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셨죠.

잘 나가던 내가 두 번째 인생의 시련을 맞이한 건 아마도 6.25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기반시설이 다 무너진 상황에서 회사 존립마저 위태로운 순간이 있었죠. IMF 시기 역시 어려움의 시기였죠. 돌이켜 보면 참 평탄한 인생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웃음)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성장해 오다 보니 참 많은 일들을 겪었네요. 하지만 그런 시련들을 잘 극복하고 열심히 하다 보니 현재의 위치에 서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네요.

-지난해부터 TV광고를 통해 ‘민족성’ 혹은 ‘역사의식’을 강조하던데, 광고 컨셉을 그렇게 잡은 이유가 있으신지요?

광고컨셉 자체는 ‘민족성’, ‘역사의식’과는 거리가 좀 있어요. 기자님이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게 지금에서야 먹힐 리가 있나. 다만 활명수만의 ‘Originality'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예요. 

광고 캠페인을 통해 ‘112년 된 소화제’, ‘구한말 왕들이 마시던 소화제’, ‘독립운동 자금을 대던 소화제’라는 다른 회사나 브랜드가 흉내 낼 수 없는 활명수만의 브랜드 자산을 알림으로써 그 명성을 더욱 공고히 하고 다른 브랜드들과 차별화하려는 것입니다. 

그 동안의 효능, 효과 위주 광고에서 벗어나 묻혀있던 동화만의 핵심 가치를 재발견하여 소비자들로 하여금 강한 인상을 주고 싶었습니다. 지금 보니 목표는 얼추 달성한 듯 싶네요.

-아까 자서전을 내셨다고 하셨는데요, 형식은 경영서로 잡으셨네요?

내가 자서전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나의 성장기록만을 남기고 싶지는 않았어요. 100년 성장의 노하우를 주위에 같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지요. 일본에는 무려 창업 1000년이 넘는 기업이 8곳이나 있다지만 우리나라에는 100년이 넘는 기업이 동화약품과 두산 단 2곳 밖에 없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으로서 100년이 넘게 성장하고 지속해온 비결을 공유하고 싶었지요. 요즘 지속가능경영이 화두 아닙니까.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어봐 주길 바래요. 이건 나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 경영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기도 하니까요.

-회사는 활명수옹을 어떤 의미로 여기고 있는가요?

나는 동화약품의 대표제품이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자 사실이다. 창업 초기부터 해온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고 현재 동화약품이 있게 된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매우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끼고 있다.

좀 재미있는 것이 회사 실적이 좋으면 내 매출 비중이 낮아지고, 반대의 상황에서는 내 비중이 높아진다. 내 매출에는 부침이 없기 때문이다.

112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효자상품으로 회사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성장의 역사를 지속해 오셨는데 반면 고민 거리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왜 없겠습니까. 내가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해도 소화제 전체 시장은 작아지고 있어요. 이런 침체기 속에서 리딩브랜드로서 변화를 통해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시점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요즘은 나이를 먹다 보니 나랑 같이 자랐던 장수 브랜드들이 하나 둘 지고 있어요. 참 아쉽고 쓸쓸한 일이지요. 하지만 그 뭐냐 동아제약의 박카스나 파스제나 뭐 이런 아이들이 꽤나 잘 하고 있는 걸 보니 대견하지요.

나도 늘 젊은 감각으로 새로운 친구들과 같이 사랑받고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 100년의 역사를 접고 새로운 100년을 향해 더 열심히 뛰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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