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전영철 보험위원장

흔히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쉽게 떠올리는 것은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는 의사다. 하지만 그들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 있다. 환자를 진찰할 때 사용하는 청진기부터 최첨단 로봇수술 기계까지, 의료기기와 의료물품이 없다면 현대의학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해왔던 의료기기업계가 고환율로 휘청거리고 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의료기기업계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이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그저 당장 피부에 닿지 않아서, 설마라는 생각에, 배부른 소리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의료기기업계는 속이 곪아 터지고 있다.


 


1달러당 1500원 대의 환율은 의료기기업계에는 사약이었다. 의료기기와 의료물품 수입을 중단한지 이미 오래다. 예전에는 1000원이면 살 수 있는 물건을 50%나 오른 1500원을 줘야 살 수 있기 때문에, 도무지 수입할 여력이 없다. 게다가 전 세계가 불황이기 때문에, 외국 회사들도 의료기기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그래도 IMF 때에는 결제 날짜를 미뤄주는 미덕을 보였던 그들이었지만, 이젠 무조건 빠른 시간 내에 물건

 


고환율에 숨 쉬기조차 어려운 의료기기업계의 속사정을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전영철 보험위원장을 통해 자세히 들어봤다.


 


환율 1500원의 의미


 


“환율이 1500원이라는 얘기는 아주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똑같은 물건을 살 때 백억 원을 송금했지만 이제는 백오십억 원을 송금해야 합니다. 규모가 큰 회사는 환차손으로 이미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소수의 직원들과 사장이 움직이는 회사는 조만간 간판

 


전 위원장에 따르면 이미 많은 업체가 의료기기와 의료물품 수입을 중단한 상태로, 현재 업체와 병원이 보유하고 있는 재고 물량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만약 재고 물량이 다 떨어진다면 의료 시스템이 마비될 가능성도 있다. 의사는 있지만 ‘환자 치료 도구’가 없어서 ‘의료 대공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예상이다.


 


“수입가가 100원이라고 가정하면 관세, 보험료 등 통관 관련비가 10원이 붙어요. 회사 내부에서 들어가는 비용과 병원의 간납도매상에 내는 돈이 각각 10원씩 더해지죠. 그럼 수입가에서 최소 30%를 더 받아야 본전이 됩니다. 특히 요즘처럼 환율이 급등하면 그만큼 수입 절차와 판매에 관련된 비용도 올라갑니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보험 재정의 한계 때문인지, 고환율에 따른 가격 인상을 안 해줍니다. 고환율

 


그는 “의료기기업계의 공급 중단이 고환율로 인한 송금액 마련이 어려워서 수입을 중단한 데 따른 것인데,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선 작은 대리점부터 망할 텐데”라는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고환율로 손해를 본 수입사가 대리점에 떨어지는 마진을 줄이거나 직접 병원과 거래에 나선다면, 대리점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재미 본 거 내놓으라고?


 


지난 1998년 IMF 때 정부가 고환율을 고려해 의료물품비를 올려줬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그때 이익 남은 걸로 지금 버틸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전영철 위원장은 “그 때 올려줬던 의료물품비는 환율 인하에 따라 8단계나 내렸다. 가격은 다 빠졌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정부가 의료물품비를 올려줄 당시 환율은 1달러에 1450원 수준. 3일 현재 환율은 1470원이다. 1450원일 때 의료기기업계 사정을 이해하고 의료물품비를 인상해줬는데 1470원일 때 아무런 조치가 없으니, 그도 답답할 노릇이다.


 


“과거 환율이 900원~1200원일 때, 정부에서 상대제품이 없는 의료물품은 수입가 대비 1.7배로 계산해준 것은 사실입니다. 반면 현재는 이때 수입한 물품들 중 상당수는 단종됐고, 그 때보다 환율이 올랐기 때문에 밑지고 들여오기도 합니다.”


 


이 때 이윤이 남았기 때문에, 고환율에 따른 손해를 감수하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특별한 호재가 없는 한 고환율은 계속 유지될 것 같다”면서 “의료기기와 의료물품 발전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고민 뿐”이라고 털어놨다.


 


“아침에 눈 뜨고 잠들기 전까지 오로지 환율은 얼마나 올랐나, 주가는 얼마나 휘청거렸냐만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몇 개월은 참을 수 있겠지만, 이건 정말 아닙니다. 비즈니즈는 이윤이 남아야 하는데 말이죠.”


 


그는 “정말 의료기기업계는 존폐 위기에 놓였다”며 정부의 현실적인 결단이 필요한 시점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