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억병 판매 기록…데뷔 48주년 기념 인터뷰

메디팜스투데이의 <이슈브랜드> 코너가 새롭게 변신합니다. 각 제약사별 대표 OTC 제품을 '의인화'하여 제품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편안하고도 자연스럽게 인터뷰 하는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편집자주]


올해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시간만 48년. 지금까지 판매된 병만 이어도 지구 47바퀴를 넘을 수 의약품이자 피곤할 때면 생각나는 자양강장제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름은?

기관총 발사 속도의 4배에 이르는 생산라인을 자랑하며 대한민국 자양강장제 대표 주자로 우뚝 선 박카스가 데뷔 48년을 기념해 <메디팜스투데이>와 인터뷰에 적격 응했다.

최근 불미스런 사고로 미디어와의 인터뷰를 꺼리던 그는 “유가족들께 아직도 죄송하고 송구스런 마음이 깊다”며 “대장정과 관련된 일정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표 자양강장제답게 인터뷰 내내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을 보이며 인기비결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답하는 ‘톱스타’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서면 질의로 지난 16일 1차 답변을 받은 뒤 17일 동아제약 홍보담당자와 대동한 2차 인터뷰로 이뤄졌다.

박카스는 48년의 경력을 자랑한다. 그 사이 그의 모습도 4번이나 바꿨다.
-꽤 오랜 시간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는데 인기 비결이 있다면?
과찬의 말씀이다(웃음). 나는 일반의약품인데 많은 분들이 드링크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오랜 시간동안 약국에서 판매 됐는데도 말이다. 피로가 몰려올 때 약국에 가서 “박카스 하나 주세요”하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

의약품이지만 의약품으로 생각되지 않는 제품 중 하나다.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약인데, 약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게(웃음). 굳이 인기비결을 찾으라면 그게 비결 중 하나인 것 같다.

오랫동안 현장에 있다 보니 대를 이어 나를 찾는 분들도 많다. 한 어머니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데, 피곤할 때마다 자녀에게 ‘박카스 심부름’을 시켰다고 한다. 나중에 그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 나를 찾더라. 아마도 오랜 시간동안 늘 곁에 있어서 익숙함으로 찾는 것 같다.

-같은 성분, 약효를 가진 후발주자들의 경쟁도 치열한데 어떻게 보나?
사실 타격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시간이 흐르는데 차기 주자가 없다면 그것도 싱겁지 않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기가 높다고 대중의 사랑이 지속될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이미지 향상에도 나름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회사에서도 나를 위해 많은 광고시안을 준비하고 지속적인 투자로 지원해 주고 있다. 내가 알기로 나에게만 연간 150억원에 이르는 광고비를 투자하고 있다고 하더라.

-이미지 변신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변신과정을 말해 달라.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원래 ‘알약’ 다시 말해 정제로 1961년에 데뷔했다. 사실 데뷔 초엔 국내에서 익숙하지 않은 ‘박카스’라는 이름 때문에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다른 제품들은 성분명을 이용해 이름을 정하곤 했는데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이름이 나오자 파격적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엠플로 다음 해에 복귀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피로회복을 풀면서 맛도 좋은 약’이란 회사의 기획이 적중했다. 덩달아 인기도 높아져 여기저기서 날 찾기 시작했다. 63년에 지금 이미지와 비슷한 ‘박카스디’로 이미지를 바꾸고 활동을 지속했다.

94년 당시 드링크제 발매 1년 만에 매출 1위를 차지한 것은 내가 유일했다. 인기가 높아지자 회사도 매출액 1위를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 했다. 연간 1억병을 생산할 수 있는 박카스 디 공장도 그때 설립됐다. 91년에 박카스 에프, 05년에 박카스 디카페 등을 연달아 선보이며 이미지 변신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박카스는 세계 40여 개국에 수출 중이다.
-해외시장 진출도 활발하게 하고 있는데?
해외 데뷔는 미국과 아랍에미레이트을 동시에 진출했는데 그게 1981년도였다. 지금은 4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는데 당시만 해도 국내 의약품이 해외 시장에 수출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정을 받지 않으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어려웠던 때이기도 했다.

96년 중국에 진출 이후 한인 교포시장 위주로 판매하던 데서 벗어나 필리핀,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거점지역에서 적극적인 마케팅을 전개, 현지시장 공략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앞으로 자양강장제 시장은 어떤 방향으로 갈 것 같나?
나는 피로회복제로 소비되는 제품이기에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현대인들의 스트레스와 과로는 이미 상식을 넘어서지 않았나. 현대인들의 필수품으로 주목받고 있어서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대중이 찾아 준다면 언제라도 곁에서 피로회복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다.

-장수제품인 만큼 기록도 많을 것 같다.
한둘이겠는가?(웃음) 지금까지 팔린 병만 2007년까지 159억 3000만병이다. 병을 이으면 지구 47바퀴를 돌 수 있다. 굉장하지 않은가. 그리고 나 하나의 매출액이 중견 제약사 총매출액과 비슷하다.

나 자신은 회사의 효자상품이라고 자부하는데, 회사는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웃음). 천안공장의 박카스 생산라인에서 나를 분당 2400개씩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속도는 보통 기관총 발사 속도의 4배라고 들었다. 굉장하지 않나. 요즘 애들 말로 ‘짱’먹고 있다.

-최근 들어 고민이 있다면?
시장은 성장하는 것 같은데 연간 매출액이 제자리 수준을 맴돌고 있어 걱정이다. 회사에서는 현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괜찮다고 하는데 나는 입장이 다르다. 많이 생산해서 많이 광고하고 많이 판매하는 게 내 마케팅 전략이다. 지금보다 한 단계 위의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부분은 회사와 이야기를 다시 해봐야 할 것 같다.

-요즘 이미지 광고만 하던데?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제로 피로회복제와 연관이 되는 이미지를 만들면서 피로회복이 필요한 상황을 공감하게 하는 광고를 찍고 있다. 박카스의 브랜드 이미지와 피로회복의 연관 관계를 자연스럽게 소비자에게 인식시키는 게 목표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의외로 좋다. 주변에서는 광고 이미지가 훨씬 부드러워 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청년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강화했던 때가 있었다. 이때 고수, 주진모, 한가인, 류승범 등이 출연해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렇게 내 광고가 ‘스타 등용문’인 적도 있었다.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이름을 걸고 ‘대학생 국토대장정’을 지난 1998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기업이 자체의 이익 못지않게 사회적 공익을 위해야 한다는 전제로 기획됐던 행사다. 국토대장정의 원조로 불리며 젊은이들의 열정과 도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 코드로 자리 잡았다.

올해엔 안타까운 사고가 있어 앞으로 계속 진행할 것인지를 회사와 논의 중이다. 유가족들께는 죄송스럽고 송구한 마음뿐이다. 여러 매체에서 국토대장정 계획을 자꾸 물으시는데, 아직 유가족들의 아픔도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하겠다, 안하겠다’라 말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이 부분은 이해해 달라. 이 기회를 빌어 다시한번 유가족들께 삼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자기 계발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앞으로의 계획도 같이 말해 달라.
30여 가지의 공정과 품질검사를 실시해 퀄리티를 유지하는 데 힘쓰고 있다. 변하지 않는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라인을 꼼꼼히 점검하는 등 기반시설에도 꾸준한 투자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노력해도 선택은 소비자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와 전통에 걸 맞는 품질로 다가가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조그만 욕심이 있다면 제약의 '역사'로 남고 싶다. 더 노력해서 국민들과 세계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제약계의 역사로 남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까지 해왔듯 꾸준히 매일매일 노력하는 게 내 계획이다. 고객 감동은 노력밖에 없는 것 같다. 과거에 그래왔듯 앞으로도 꾸준한 제품 관리로 고객에게 다가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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