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사회가 역사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가 어쩜 그 역사를 통해 과거의 실패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는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들어 각 방송매체가 앞다퉈 저녁 시간대에 '대조영', '연개소문', '주몽' 등 사극을 방영, 시청률을 높이고 있다.

늘 그래왔지만, 이 같은 사극을 보면서 거듭 느끼는 것은 드라마의 줄거리가 한결같이 권모술수와 밀실에서의 음모로 무자비하게 정적(政敵)을 쓰러뜨리고 정권을 탈취하는 등 한번 잡은 정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야기들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참으로 위험한 것은 멋진 남자와 예쁜 여자 탤런트들이 음모와 술수를 연기할 때 출중한 연기로 열연하다보니 이를 시청하는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예외없이 프랜시스 베이컨의 '극장의 우상' 속에 빠져들어 아름답게 미화된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소수의 정략적인 인물을 제외하고는 많은 선비들이 지조를 지닌 선비 정신으로 청렴결백하게 살아왔음을 느낄 수 있다.

문득 오늘 우리 사회의 정치와 권력투쟁 역시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 정란시대의 무정부상태를 연상케 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된다.

어찌하다보니 술수가 정도(正道)처럼 인식되고 개집 짓듯 '당' 만들기와 직권남용은 당연한 것으로 평가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다수의 정치인들이 자신의 작은 이득이나 명예를 위해서는 대의(大義)를 헌신짝 버리듯 쉽게 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역사는 그렇다치더라도 당장 사극을 보면서 최후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 수 있으련만 과거나 현실에서나 하나도 변하지 않고 답습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권모술수가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인 것 같다.

가깝게는 70년대, 멀리는 조선시대·고려 등에 이르기까지 정치인들이 보여준 정치 행태를 보면 지금도 권모술수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부패는 전보다도 더 심하게 재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은 조그만 죄를 지어도 엄벌에 처해지면서 몇 십배 더 큰 죄를 지었어도 끗발이 있거나 청와대 출신은 집행유예, 사면으로 만인이 평등한 법을 교묘히 피해가고 또 뻔뻔하게 거리를 활보한다.

그 모양이 되다보니 '억울하면 출세'를 하라는 피터지는 소리가 온 천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당리당략, 당파싸움으로 대부분의 날을 낭비하는 등 세비만 축내면서도 국민의 소리를 외면한 채 대립은 전혀 그칠 줄 모르고 '네 탓'만 찾으며 자신은 전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행태는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갈라논 것도 모자라 동서가 나뉘고 또 지역계층간에도 이간질로 분열을 조장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죽여야만 한다'는 그릇된 사고속에서 힘겨루기를 하면서 순박한 국민들을 이용, 이권만 챙기며 권력을 붙잡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무슨 일이든 자신과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면 동지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적으로 간주하고 즉시 정적 제거를 위해 안간힘을 쓴다.

먹고 자는 문제와 무관하게 같은 동종끼리 물고 뜯고 죽이는 싸움을 끊임없이 벌이는 존재는 어쩜 이 지구상에서는 인간뿐일지 모르겠다.

인간사회는 이런 행위를 '자유' '민주' '정의' '능력' 이라는 미명 아래 정당화시키고 끗발있는 자로서 자신만의 영화와 부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며 강남에 집을 사고 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행여 누군가 지적이라도 할라치면 갖가지 변명을 늘어놓으며 오리발을 내놓기 일쑤다.

인류의 시초인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 열매를 따먹음으로 인해 자신들의 벌거벗은 허물을 보며 부끄러움으로 어둠속에 숨어야만 했다.

또한 하나님의 질타속에서도 반성에 앞서 자신들이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며 변명을 하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의 후손들은 이 세상에서 서로가 아귀다툼으로 이간질하고 자신의 허물까지도 남의 탓으로 돌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게 된 것 같다.

결국 인간사회는 평화와 공존의 역사를 잃고 타락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나보다.

누군가 "사는 것이 숨바꼭질하는 것 같고, 그리고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런 게 인생"이라고 독백 비슷하게 넋두리 하는 것을 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막대한 예산만 낭비하는 市의원과 區의원을 모두 없앴으면 싶다. 그래서 지방 예산도 절감하고 아울러 시민·구민의 세금 부담도 그만큼 덜게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같이 작은 땅에서 당리당략에서 태어난 시·구의원 제도는 과다한 예산만 지출하고 지역간 분열만 조장시킬 뿐 국민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구 정치인들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그들을 추종하며 경거망동한 행동과 함께 상대 당을 비방하고 헐뜯는 따위의 정치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모두는 베풂과 사랑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일제하에서 해방된 지도 어언 60년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올바른 지도자나 정치인다운 정치인을 만나지 못한 우리 국민은 참으로 불행한 국민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손바닥 뒤집듯 막말을 여과없이 내뱉으며 네 탓만을 강조하는 최고 지도자의 작태에 허탈감을 느낄 정도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탓하기 전에 내 눈의 들보를 먼저 보고 고칠 줄 아는 그런 정치인이 단 한명이라도 나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시인.수필가.AIU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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