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을 나가게 되면 현지 관광 가이드나 현지인들로부터 한국 사람들은 '빨리 빨리'를 너무 찾는다며 저런 사람들이 어떻게 엄마 뱃속에서는 열달을 버티었는지 모르겠다는 우스개 소리를 곧잘 듣는다.

그런 그들이 미국인을 향해 '퀵, 퀵'이라고 하지 않는다. 또 일본인을 향해서도 '하야쿠'라고 외치지도 않는다.

몇해 전 공무원 해외 연수단과 함께 세계 장묘문화를 취재하기 위해 유럽을 갔을 때다. 어느 날인가 중국 식당을 간 적이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 관광버스에서 현지 가이드가 우리 일행에게 "'2시간 코스'로 주문했으니 빨리 빨리 찾지말고 천천히 드시며 말씀 나누세요"라고 안내의 말을 했지만 그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8가지가 나오는 코스 음식이라 다음 음식이 나올 때까지 천천히 먹으며 맛을 음미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식이 나오기 무섭게 게 눈 감추듯 후딱 먹어치운다.

더 더욱 가관인 것은 아직 나올 음식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먹은 것을 추가 주문하며 빨리 빨리를 외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다보니 종업원들도 정신없어 하고, 정식 코스가 나오는 과정에서 추가로 주문한 음식이 또 나오고 결국 정식 코스에 나오는 음식과 후식을 미처 먹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는 식당 밖에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담배들을 피운다.

주문한 음식이 아직 남았는데도 추가 주문을 하고 거기다 서둘러 식사를 하고 밖에 나가 서성대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는 종업원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식당을 이용하는 우리 음식문화이기에 그들의 식당문화를 쉽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시간에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결같이 '빨리 빨리'를 외치며 무엇이 그리 급한지 서둔다.

이날 역시 2시간짜리 식사인데 1시간도 채 못되어 대다수의 사람들이 식사를 끝내고 식당 밖에서 건성으로 잡담을 하며 1시간 이상을 소비했다.

2시간 코스로 정한 것은 그 만큼 여유있게 대화를 하며 맛을 음미하고 먹으라는 것인데 그런 문화에 생소한 우리는 그저 대화도 없이 '빨리, 빨리' 먹기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인가부터 즐기고 음미해야 할 식사시간마저 여유롭지 못하고 늘 쫓기는 것 같은 모습으로 식사를 급히 하는 민족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암튼 우리는 '너무 바쁘다',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자주 즐겨쓰며, 힘든 이 세상을 사는 것 같아 서글픈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매사 급하게 쫓기듯 살다보니 생각을 하며 살 겨를이 없나보다.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다보니 결국에 사람같이, 사람답게 살지를 못하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는 것이 동물같이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저 사람만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판단력과 함께 사랑이 결여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부모님의 삶에 대한 감사, 사춘기 딸의 입장을 생각하고, 아내가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또 직장에서 하루종일 일에 찌들리다 돌아온 남편을 반갑게 맞이하는 마음, 나 아닌 상대의 처지에 대한 깊은 이해, 이런 것들은 "생각하지 않고 빨리, 빨리를 외치는 사람들"에게는 늘 난제(難題)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라도 '빨리'를 외치며 서두르기보다는 좀 천천히 생각을 많이 하는 습관으로 바뀌는 우리 문화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어떤 식자(識者)가 말하기를 '사랑'이라는 말은 '사량(思量)', 즉 '생각하는 양'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했다.

그것이 언어학적으로 맞는지는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재밌는 말로 one two have yes(일 리가 있네)다.

그 식자의 말처럼 상대편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많이 해본다면 상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깨달음이 사랑을 실천하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생각을 많이 하면 사랑도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그런 사랑의 손길은 어디에서나 필요하다. 큰 사랑만이 아니다. 일견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손길에도 큰 의미가 담겨 있을 수 있다.

아울러 생각을 하다보면 그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어딘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참으로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할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사랑이 여기에까지 이른다면 이는 분명 득도(得道)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머지않아 우리는 귀에 낯설지 않은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종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교회보다 먼저 상가에서 울리는 캐롤송과 트리를 보게 될 것이다.

비록 상술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암튼 예수님의 탄신을 축하하고 기억하는 가운데 잠시라도 이 땅에 화목한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마음까지도 가난해진 거리의 사람들을 생각하다 문득 전직 대통령인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이 숨겨놓은 불법비자금만 모두 환수만 되어도 수백만의 그늘진 사람들에게 따뜻한 웃음을 선사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착잡해지며 기도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우리 인생이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도 물질에 탐닉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창가에 스며드는 햇빛을 보지 못하는 아침을 맞이하며 모든 것을 남겨두고 가는 길손이다.

이 세상 내가 갖고 있던 것은 잠시 맡고 있었을 뿐, 그 어느 한가지도 내 소유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래도 지금은 선한 사마리안인이 한 사람이라도 더 아쉽고 필요한 계절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시인.수필가.AIU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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