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제약업계 현주소…내일 망해도 강건너 불구경(?)

제약협회 ‘나홀로 위기’…정책 반영 의문

한국제약협회가 23일 발표한 ‘정부의 20% 약가인하 안에 대한 검토 의견서’는 나름대로 대한민국 제약산업의 절박함을 담고 있다.

오죽했으면 ‘생산포기’, ‘사업포기’라는 카드까지 구상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협회는 이날 의견서에서 대략 두 가지로 현 정부의 약가정책 오류를 요약했다.

첫째는 정부가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따라 약가를 20% 인하할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다.

제약사들의 매출감소, 연구투자비용 감소, 대량실업, 제약사업 포기 등을 우려하고 있다. 이로인해 국내 제약산업은 외국의 거대 다국적 기업에 의해 종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고가 외국약의 국내 시장 지배력이 높아져 의약품 주권을 상실하고 그것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 가중과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협회측의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시민단체 또는 과거에 김홍신 전 국회의원이 일관되게 주장했던 논리라서가 아니라, 수입약의 영향력이 커지면 약값이 오를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위치다.

그래서 비록 복제약을 생산하더라도 토종제약산업이 살아야하고, 성급한 한미FTA 협상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협회는 정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실은 약제비 삭감 방안)이 미래의 성장동력인 제약산업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그렇지 않아도 국제기준의 GMP(우수의약품품질관리기준) 및 소포장 의무화 도입 등으로 씀씀이가 커진 상황에서 더 이상의 약값인하는 성장동력의 주역인 국내 제약사들의 ROE(자기자본이익율)을 크게 낮추어 연구개발(R&D)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논리다.

구절구절이 옳은 소리다.

제약사 경영진들 반성해야

우리는 이 대목에서 한국제약협회(회장 김정수, 부회장 문경태),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제약업을 하겠다는 ‘욕심 많은’ 오너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상황을 막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느냐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이빨에 땀이 나도록’ R&D 투자의 중요성을 역설할 때 그들은 개량신약(또는 퍼스트 제네릭)도 아닌 복제약 생산에 주력했고(현재 진행형), 제약산업을 등에 업고 엉뚱한 부동산 투자나 외국약 수입판매에 심취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상당수 제약사의 CEO 또는 오너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R&D 투자는 자사 PR을 위한 언론 인터뷰용 멘트에 불과했으며, 제약산업의 존재 이유마저 외면해 왔다는 비난에 직면에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은 산업의 존폐가 달린 지금의 위기를 한때의 바람인양 생각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는 사실이다. 제약협회는 목이 마르도록 위기를 외치고 있지만, 업체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모양새다.

단적인 예로 지난 10일 한국제약협회에서 열린 제약업계 CEO 긴급 대책회의는 현 상황을 바라보는 국내 제약업계의 현주소다.

이날 회의는 정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포지티브 리스트)과 복제약의 생동성 시험자료 조작파문, 한미FTA 등 메가톤급 위기상황을 제약사 CEO들에게 알리기 위해 마련된 것. 당시 협회측은 “CEO나 실질적 결정권한을 가진 임원급 이상이 참석할 것”이라며 나름대로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 200여개 회원 제약사 중 CEO급 참석자는 20명을 넘지 못했다.

[CEO급 참석자 명단] 허일섭(녹십자), 이태로(제일약품), 정지석(한미약품), 허영(삼일제약), 설성화(일동제약), 이병석(경동제약), 안형준(이텍스), 차중근(유한양행), 김원배(동아제약), 최건혁(초당약품), 조용준(동구약품), 권성배(유유), 김긍림(환인제약), 정균성(먼디파마), 조홍구(유케이케미팜), 어진(안국약품), 윤성태(휴온스), 이상 17명(방명록 서명 기준)

오죽했으면 협회 김정수 회장은 “제주도 앞 까지 태풍이 불어닥쳤는데 바람 안 분다고 부산 사람들이 안심하는거나 마찬가지”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한때 똥약 취급까지 받았던 복제약의 경쟁이 심하다보니, 국내 제약업계는 장사 잘되는 남의 집을 은근히 시샘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말 그대로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으며 이해관계만 있을 뿐이다.

“이러니 정부가 제약업계의 말을 듣겠습니까.”

최근 한 술자리에서 만난 한 중소제약사 관계자는 “그래도 협회차원에서 최선을 다해야한다”면서도 뼈있는 말을 빼놓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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